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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Aug 03. 2020

지인이 수술 잘하는 의사를 추천해달라고 한다-하-

무조건 수술 많이 하는 병원으로.  

 "선생님, KT(kidney transplantation, 신장 이식) 수술 있으니까, 수술방으로 들어오세요. 일 년에 몇 건 없는 수술이라 꼭 참관하세요."

 갓 의사가 된 지, 1년도 안 되었을 때였다. 나는 지방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인턴으로 수련 중이었다.  나는 손 기술이 없는 곰손에 자극성 장증후군으로 시도 때도 없이 설사가 나와 이미 메스(외과)를 포기한 상태였다. 비뇨기과 레지던트 선생님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드리지만,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

 수술을 받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환자는 우리 대학병원이 일 년에 신장 이식을 겨우 10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수술받는 걸까?'

 '바로 근처에 지방 병원임에도 콩팥 이식 수술 건수로 전국에서 10위 안에 드는 병원이 있는데....'  


 가족, 친지, 지인들에게 가끔 수술 잘하는 병원을 추천해달라고 묻는다. 사실 잘 모른다. 난 외과계열도 아니고, 설령 외과계열이라고 해도 외과 계열도 워낙 다양해서 자기 분야 아니면 알지 못한다. 거기다 난 또 서울에 있으니. 서울에서 중국 집하는 사장님한테 "김해에 파스타 잘하는 집 아세요?"  같은 질문이다.  

 허리, 목, 디스크, 암 수술 잘하는 병원 사실 잘 모른다.


 수술은 누가 제일 잘할까?


 100미터 달리기를 가장 잘한 사람은 우사인 볼트다. 9.58초의 세계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현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은 존 존스이다. 그가 챔피언 벨트 보유 자니까.

 스포츠 경기에서 1등은 비교적 간단하다.

 그럼 폐암 수술은 누가 제일 잘할까? 음................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사실 특정 교수가 수술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교수 밑에서 같이 수술을 하는 퍼시트 어시스트(주로 전임의나, 레지던트)이다. 내가 A 대학병원 흉부외과 레지던트라면 A 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님 실력은 알지만, A 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님은 또 잘 모른다. B 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님은? 소문이나 풍문, 강연 등으로 알 수도 있지만 그렇게 정확하지 못하다.

 A 대학병원 흉부외과 의사한테, A 대학병원 흉부외과 의사 중에서 누가 폐암 수술을 제일 잘하냐? 고 물으면 거의 100% 정확하게 이야기해준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나름 자기 분야니까, 특정 교수님들을 추천해주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흉부외과 의사한테, 머리 수술을 담당하는 신경외과 의사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흉부외과 의사는 신경외과 동기에게 물어보게 된다. 신경외과 동기도 자기 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잘 알지만,  또 다른 병원 신경외과는 잘 모른다.  


 의사마다 수술 실력 차이가 나는가?


  의사라면 알겠지만, 수술 실력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주로 약을 쓰는 내과에 비해, 수술하는 외과는 정말 차이가 크다.  내과 치료가 객관식이나 단답형 주관식이라면, 외과 치료는 정답이 정해져 있는 서술형 주관식이다. 내과는 진단만 내려지면 치료는 전 세계가 거의 다 비슷하다. 내과 치료는 약과 물이다. 독감 치료제는 타미플루고, 폐동맥 색전증에서는 t-PA라는 혈전 용해제를 쓴다. 이건 의대생도 아는 족보다. 내과 의사의 성실함에 따라 차이는 나지만 기본적인 치료는 똑같다.

 외과 치료는 수술이다. 조직을 자르고, 때 내고, 연결하고, 붙인다. 손으로 하는 미술 그중에서도 조각에 가깝다. 똑같이 암 조직을 때 내야 하지만 접근법, 메스를 다루는 솜씨, 조직에 접근하는 방법, 지혈하는 테크닉, 각종 기구를 다루는 능숙함, 수술방 내에서의 팀워크 각각 다르다.

 아니다.

     외과 의사는 범인를 잡는 형사와 같다.

 어떤 형사는 단 번에 업어치기 한판으로 깔끔하게 범인을 잡는다. 어떤 형사는 범인을 추적하다 주위 기물을 다 부수는 것으로 모자라, 격렬한 자동차 추격전을 벌여 교통을 마비시키고 멀쩡한 사람이 다치기도 한다. 범인(암)을 잡는 건(도려내는 건) 똑같지만 얼마나 깔끔하게, 주위에 피해 없이 잡아내는지는 천차만별이다.


 교수 중에 RBC(적혈구)라는 별명의 교수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출혈이 있으면 수술 진행을 멈추고, 출혈 부위를 모두 지졌다. 농담 삼아 눈에 보이지 않는 적혈구마저 지져댄다고 별명이 RBC(적혈구)였다. 외과 의사 답지 않게 소심해서 똑같은 수술이라도 다른 교수에 비해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일단 적혈구 교수가 수술하면 같이 수술을 하는 마취과 의사, 퍼스트 어시스트인 레지던트 모두 진이 빠졌다. 옆에서 보기에 참 갑갑했다.

 나는 산부인과 의사는 아니지만 10년간, 의대와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으면서 제왕절개만 100건 넘게 참관하고 또 가끔 어시스트를 했다.  산모가 출산을 할 때 제왕 절개를 하면, 배 안에 태아 모니터링이 어렵기에 최대한 아이를 빨리 꺼내는 게 산모와 아이 모두 안전하다.

 한 번은 마취를 하고 산모 배에 메스를 대는 순간부터 아이를 꺼내는 순간까지 나는 시간을 잰 적이 있었다.


 J 병원 L 과장은 1분 30초였고, Y병원 P 교수님은 무려 10분이 넘게 걸렸다.

 P 교수님은 아주 사소한 출혈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지혈을 했기에 수술 시간이 너무 길었다. 같이 수술방에 들어간 레지던트는 P 교수님과 수술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수술 실력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럼 어떤 외과 의사를 추천하는가?


 모든 교수님들 수술방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건 불가능하다. 지인들이 연락이 오면 내가 수련받은 P대학병원이나, S 대학병원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교수님들 실력을 아니까, 쉽다.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교수님이 없으면 최대한 아는 의사 친구를 동원해서 알아봐 준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의사 전용 사이트에 들어가서 찾아본다. <메 OOOOO>라는 이 사이트는 의사면허 번호를 입력해야 해서, 일반인은 들어올 수 없다.

 대학교수들이 점심때 밥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 90%가 의학 이야기가 아니고, 정치인 욕, 연금 문제, 재테크, 자식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로 이 의사 전용 사이트도  90%는 쓸데없는 글들이지만 이럴 때는 도움이 된다. 자기들 잘난 맛에 사는 의사(나 포함)이기에 절대로 남 맞다고 하는 경우 지극히 적은데, 의사 두 명의 의견이 같으면 그건 그냥 진리다.

 그리고 잘 모를 때는 수술을 많이 하는 의사를 추천한다. 희귀하고, 어려운 수술일수록 난이도가 높다. 그럴 경우는 무조건 수술을 많이 해 본 의사가 제일 잘한다. 언론에서 명의라고 하는 교수들 모두 특ㅇ정한 암이나 희귀 질환 전문가이다. 당연히 지방은 환자가 적고, 서울에는 환자가 많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 있는 교수님들이 더 많은 수술을 하게 된다. 그 결과 내가 추천하는 의사들은 대부분 서울에 있는 교수님이다.

 갑상선암으로 굳이 명의를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고 사망률이 지극히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술 시간만 8시간 가까이 걸리는 췌장암이라면? 나는 무조건 수술을 많이 한 의사를 추천할 것이다.  


 항상 경기에 나오는 선수가 더 축구를 잘한다. 가끔 출전하는 선수는 잘 못한다. 컨디션 조절도 어렵고, 경기감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의사도 축구 선수와 같다. 항상 같은 수술을 하는 의사가 수술을 잘한다.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일 년에 신장 이식을 10건도 안 하는 병원이라면 나는 그 병원에서 수술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한 번은 20년 지기 친구, 숙희에게 전화가 왔다. 10대와 20대에는 매우 친했지만 서로 결혼하고, 나는 서울로 숙희는 지방에 살다 보니 일 년에 몇 번 정도 연락하는 사이였다. 가장 친한 친구 아버지가 폐암에 걸렸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정확하게는  서울에 가야 할지, 지방에 가야 할지를 물었다.

 일단 폐암이면, 1. 조직검사를 해서 유래한 세포를 알아야 하고, 2. 침범 정도를 파악해야 한다. 대학병원 급이면 폐암을 위한 검사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병원이든 검사는 거의 똑같다.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일단 세포를 얻어야 하니까 위치에 따라 조직 검사를 하고, 다른 장기에 전이된 곳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PEC-CT, brain MRI(폐암은 뇌로 전이가 흔하다), bone scan(뼈 전이 확인 위해) 등의 검사를 한다.

 일단 나는 가까운 지방 대학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해서, 수술이 필요한지 아닌지 여부를 먼저 파악하라고 조언했다. 폐암의 경우, 진단 및 병기 설정은 호흡기 내과에서 주로 하고,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흉부외과에서 하기 때문에 나는 폐암 수술을 잘하는 교수님을 찾아봐주기로 했다.

 그리고 수술이 필요하다고 지방 호흡기 내과에서 결정 내리면, 각종 검사 결과 기록지를 들고 서울에서 수술받으라고 했다. 그리고 수술 후, 항암 치료가 필요하면 근처 지방 대학병원에서 조언했다. (항암 치료는 전 세계적으로 가이드라인이 있어, 표준화되어 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폐암 수술을 잘하는 교수, 일명 명의를 찾아야 했다.  일단 흉부외과 친구가 있으면 좋으련만 연락하는 흉부외과 동기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의사 사이트를 뒤졌다. 폐암으로 검색해보니, 특정 대학병원과 특정 교수님 이름이 계속해서 나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자기만 잘난 줄 아는 의사 두 명의 의견이 같으면 그건 그냥 진리다.

 나는 친구에게 혹시나 수술 필요하면 OO병원 최 OO, 조 OO 교수님 추천했다. 그리고 지방에 있는 호흡기 내과 교수님으로는 이 OO, 임 OO 교수님을 추천하였다. 여기까지가 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행히 지방 대학병원에서 수술 가능한 단계라고 판정받았고, OO 병원 최 OO 교수님께 수술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빈다. 의사나 병원 추천이 의사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게, 폐암일 경우 결과가 안 좋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잘되면 고맙다는 말을 듣겠지만, 결과가 나쁘면 '괜히.....'라는 생각에 원망을 받을 수 있다. 아내는 '괜히 나보고 나서는 게 아니냐'라고 하는데,,,,,,,, 그게 또 이 오지랖 넓은 성격 탓에...................................




브런치에서 썼던 글의 일부가 <의사의 생각>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구독자분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몇몇 분들이 브런치의 글들이 사라졌다고 물어보시는데, 책이 발간됨에 따라, 책에 실린 글들은 브런치에서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해부탁드립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82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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