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날 아침이었다. 어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서울 외곽고속도로를 가고 있는데, 사고가 있었는지 심하게 찌르러 진 차 3대가 갓 길에 정차를 하고 있었다. 차가 심하게 파손된 것으로 봐서는 사람도 다쳤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엠뷸런스는 보이지 않았고, 그 대신 사고 현장에는 어떻게 알고 왔는지 견인자동차, 일명 렉카가 무려 5대나 와 있었다. 견인할 차보다 견인하는 차가 더 많이 온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 응급실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며 씁쓸했다.
몇 년 전 서울 근교의 작은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였다.
외상과 특정 부위 출혈을 제외하고, 내과적으로 가장 응급한 질환은 딱 두 가지이다. 심장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히는 심근경색과 뇌에 혈류는 공급하는 뇌동맥이 막히는 뇌경색, 일명 중풍이다.
밤 10시경 응급실 문 밖에서 빨간 불이 깜빡이며, 요란한 엠뷸런스 소리가 들렸다. 119였다. 119는 경증 환자이면, 빨간색 불만 켜고 중증 환자를 싣고 올 때면 멀리서도 정신이 번쩍 들도록 사이렌을 울린다.
"위잉, 위잉."
대번에 심각한 환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응급실 문이 활짝 열렸다.
"63세 남자 환자, 삼십 분 전부터 의식이 저하되며 좌측 팔다리에 힘이 빠졌습니다."
의식 저하와 좌측 팔다리 근력 저하.
무조건 머리 문제로 둘 중 하나다. 머리에 피가 차는 뇌출혈 아니면 머리의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 뇌출혈이면 신경외과에서 수술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것이고, 뇌경색이면 신경과에서 막힌 혈관을 뚫는 약물 치료를 한다. 뇌경색이냐 뇌출혈이냐에 따라 치료가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일단 막힌 혈관은 한 시간 안에 뚫어줘야 한다. 한 시간이 넘어가면, 그동안 피를 공급받지 못한 뇌세포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기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영원히 한쪽 팔다리가 마비된 채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30분 전이라고요? 일단 한 시간 안 되었네요. 보호자분 일단 빨리 접수부터 해주세요. 접수되자마자 CT 실로 갑니다."
뇌출혈은 CT가, 뇌경색은 MRI가 더 정확하다. 다만 CT는 5분, MRI는 최소 10분에서 최장 한 시간 가량 걸린다. 그래서 뇌경색이나 뇌출혈이 의심되는 환자는 일단 CT를 찍어서 뇌출혈부터 감별하는 게 먼저다.
환자 이름이 컴퓨터에 뜨자마자, 나는 brain CT(non contrast)를 입력하고 즉시 환자 카트를 끌고 CT 실로 향했다. 그 당시 내가 일하던 병원에는 신경과가 있어, 뇌경색은 치료할 수 있었지만, 신경외과는 없어 뇌출혈일 경우 즉시 전원을 보내야 했다.
환자를 CT실로 데려가서는 환자는 다시 촬영 침대로 눕혔다. 그러고 나서 결과를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1분이라도 줄이려고 응급실로 가지 않고 아예 CT실 영상의학과 기사님 옆에 서서 초초하게 화면만을 주시했다.
'제발, 제발, 제발...'
'아.....................'
사진이 뜨기 시작했다. 환자의 회색 뇌 우측에 하얀 삶은 달걀 같은 게 보였다. 뇌출혈이었다. 크기는 꽤 컸고, 출혈 때문에 뇌가 한쪽으로 일부 밀렸다.
'바로 쏴야겠네.'
"선생님, CT 다 나오는 데로 바로 CD 복사해주세요."
나는 영상 기사님께 부탁을 하고, CT가 다 찍히기도 전에 나는 응급실로 달려갔다.
이제 뇌출혈 진단과 치료보다 더 중요하고 어려운 '신경외과 중환자 전원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병원은 서울 S 병원 부속 병원이어서 그래도 S병원 핫라인이 있었다. 즉시 신경외과 핫라인으로 전화를 했다.
"OO 병원, 의사 양성관입니다. 환자 전원 위해 전화드렸습니다. 63세 남자 환자, 고혈압 외 기저 질환 없는 분으로 내원 30분 전 좌측 편마비 있어, 촬영한 brain CT상 우측 5X7 cm 크기의 ICH(intracranial hemorraghe) 소견 보여, 신경외과 진료 필요할 것으로 사료되어 진료 의뢰드립니다. GCS score(의식 상태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신경학적 평가 점수)는 10점입니다. 바이탈(신체 징후)은 120/80(혈압)-36.5(체온)-20(호흡수)-80(심박수)으로 특이 소견 없습니다."
"아, 네, 선생님, 저희 병원 신경외과 중환자실 자리가 없어서요, 전원을 못 받습니다."
"아, 그렇군요. 어쩔 수 없네요." 핫 라인은 말만 핫하지, 언제나 쿨했다.
병원에서 병원으로 이송할 때는 119를 부를 순 없고, 사설 엠뷸런스를 불러야 한다. 사설 엠뷸런스가 우리 병원까지 오는 시간이 대략 20분. 나는 어떻게든 20분 안에 신경외과 중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아내야 한다. 아무 병원에 연락 없이 보냈다가, 그 병원에서 못 받아준다고 하면 환자가 말 그대로 엠뷸런스를 타고 병원을 찾아 뱅뱅 도는 사태가 벌어진다.
저번에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어서 A 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했다. "알아보고 전화드릴게요. 병원 이름하고 전화번호 가르쳐주세요." 하길래 전화 끊고 기다렸다가, 20분 지나서 전화 와서는 "자리 없습니다." 해서 바보가 된 적이 있다.
이번에는 나는 아예 전략을 바꿨다.
일명 문어발식 전략
근처 신경외과가 있는 큰 병원에 모두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A병원, B 병원, C 병원, D 병원, E 병원까지 쉬지 않고 전원 요청을 했다.
"네, 알아보고 전화드릴게요."
"신경외과 연락 후, 수용 여부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잠시 후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각기 다른 병원에서 비슷한 대답이 이어졌다. 전원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사설 엠뷸런스를 불렀다.
"보호자 있나요?"
"네."
"전원 갈 병원 있나요?"
없다고 하면, 안 올 수도 있으니
"예. A 병원요."
라고 거짓말을 했다.
"15분 후에 도착합니다."
의식 저하 환자를 후송하려면 또 의사나 간호사가 반드시 동승해야 한다. 응급실을 맡는 의사인 내가 응급실을 비울 순 없으니까, 인턴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선생님, 뇌출혈 환자가 있어 전원 다녀오셔야 합니다. 15분 후에 출발입니다."
나는 또 환자 차트와 진료의뢰서를 부지런히 쓰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가장 먼저 B 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원래는 응급실 전화를 의사가 받는 경우가 없으나, 보나 마나 전원 문의 전화이기에 내가 직접 받았다.
"선생님, 저희 병원 신경외과에서 지금 응급 수술 중이라 전원을 받을 수 없답니다."
'하아, 그래도 4곳이 남았으니.'
"네, 알겠습니다."
다시 열심히 차팅을 하는 중에, 또 전화가 왔다.
"네, OO 병원 응급실 의사 양성관입니다."
"A병원 응급실인데요, 저희 병원 신경외과 중환자실 자리가 없어서 환자를 받을 수 없습니다."
슬슬 불안해진다. '아무 곳에서도 환자 안 받아 주는데, 혹시나 환자가 죽거나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지?' 뇌경색은 치료를 하지 않아도 죽는 경우는 드물지만, 뇌출혈은 적절한 치료를 받아도 죽거나 더 나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다고 신경외과 의사가 아닌 나는 뇌출혈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사설 엠뷸런스가 오기로 한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았을 때였다.
응급실 전화가 울렸다.
"D 병원인데요, 전원 주신 환자 저희 병원이 받겠습니다."
'예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바로 보내겠습니다. 30분 안에 도착합니다."
때마침, 사설 엠뷸런스도 도착했다. 나는 기사님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원래 A병원에 가기로 했는데, D병원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사설 앰뷸런스는 어차피 거리로 돈을 받기에 가까이 있는 A 병원보다 멀리 있는 D 병원이 더 나았다.
나는 인턴 선생님을 불러 진료의뢰서와 뇌 CT 사진을 복사한 CD를 손에 쥐어 보냈다.
"아, 살았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환자 해결했네요."
"그러게요, 선생님. 다행이네요."
옆에서 초조해하던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응급실 김정희 간호사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정훈 씨를 사설 엠뷸런스에 태워 보내고 10분 지나 C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네, 선생님. 뇌출혈 환자 보내셔도 됩니다."
"아, 네. 환자분이 D 병원 가시겠다고 해서요. 그쪽으로 갔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네."
김정훈 씨가 D 병원으로 떠난 지 20분 즈음 지났을 때 마지막으로 뒤늦게 E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희 병원 신경외과 중환자실이 없어서...."
"아,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어떻게 어떻게 위기를 모면했다. 거짓말과 치사한 수법을 섞어서 말이다.
견인차, 일명 렉카는 사고 차량을 견인해주고 비용을 받는다. 때로 자동차 사고라는 갑작스러운 사건에 놀란 사람을 상대로 엄청난 비용을 청구하기도 해서 뉴스에 나기도 한다. 또 특정 수리점으로 사고차를 안내해서 전체 수리비의 얼마를 받는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돈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렉카가 엠뷸런스나 경찰차보다 사건 현장에 더 빨리 도착한다.
반대로 '중환자' 같은 경우, 병원에서 진료를 하면 할수록 손해다.
그래서 병원은 중환자실을 최소한으로 유지한다. 또한 자기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아니라면 어떻게든 중환자를 받지 않으려 한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 터지고 나서,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이 텅 비어 버렸다. 그러자 오히려 중환자실 적자가 줄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렸다.
만약 중환자가 돈이 되었다면 내가 전원을 위해 5 곳의 병원에 동시에 전화를 했을까? 처음으로 전화한 A병원에서 아예 엠뷸런스를 우리 병원으로 보내서 환자를 모셔가지 않았을까? 사고차량보다 더 많은 렉카가 자동차 사고 현장에 몰려든 것처럼, 병원 앞에 중환자를 서로 모셔가려고 엠뷸런스가 대기하는 날이 오기를 꿈꿔본다.
그나저나 가는데 30분, 오는데 30분 동안 미친 듯이 질주하는 엠뷸런스를 타고 환자를 전원시 키고 온 인턴 선생님은 국가나 환자, 병원으로부터 땡전 한 푼 받지 못했다. 역시나 중환자는 아예 안 보는 게 답이다. 바이탈(생명을 살리는)과를 하면, 자신의 바이탈이 흔들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