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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Dec 03. 2020

코로나 선별 진료소 현황 -2편-

산적한 문제와 진정한 영웅 

  "선생님, 저분은 따님이 확진자로 자가 격리 중인데, 열나고 기침 나세요. 조심하세요."

 선별 진료소 접수 및 안내 직원이 보호복을 입고 나가는 저를 잠시 붙잡더니 귓속말을 합니다. 

 "아, 네."

 다음날 확인해보니, 역시나 코로나 양성, 즉 확진자였습니다. 직원이 저보다 더 많은 환자를 접하니, 딱하고 촉이 온 겁니다. 


  안심병원이라, 열이 나거나,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은 아예 병원에 들어갈 수 없고 무조건 응급실 앞에 천막과 컨테이너 박스로 임시로 마련된 선별 진료소로 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합니다. 


  <87세, 정애순 할머니. 발열.>

 "할머니, 어디가 아프세요?"

 "어제 넘어져서 허리를 다친 이후 못 일어나서 병원 왔는데, 열난다고 여기로 오라네."

 '아, 망했네.'

 "예전엔 잘 걸으셨어요?"

 "어제 넘어지기 전까진 멀쩡했어."

 열 나는 원인은 수 십, 수백, 수천 가지입니다. 작년 같았으면 일단 내과나 정형외과로 입원시킨 이후 내과에서 열나는 원인을 찾고 정형외과에서 허리 문제를 맡으면 됩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코로나 검사를 해서, 코로나가 아닌 것을 확인해야만 입원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코로나 의심 환자 격리실'에서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음성인 것을 확인하고 입원하면 됩니다.

 문제는 열이 나면서(즉 코로나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 당장 정밀 검사를 해야 하는 사람에 비해 격리실이 적다는 것입니다. 정애순 할머니는 허리 및 골반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병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병원에 이동 가능한 엑스레이 기계가 있으나, 일단 코로나 의심환자를 촬영하고 나서 소독 및 관리 문제가 있어서 못 씁니다.  당장 급해서 건강 검진할 때 쓰는 버스 안에 엑스레이 기계가 있으나 고정식이라 설 수 있는 사람, 가슴 사진 촬영밖에 안됩니다. 

 "병원에 격리실 자리 있어요? 이 환자분 집에 못 갈 것 같은데."

 "없어요. 이미 다 찼어요."

 직원이 대답합니다. 

 저는 보호자를 불러서, 설명을 합니다. 

 "이대로 집에 못 가실 것 같고, 허리 쪽은  검사하셔야 할 것 같아요. 코로나 아닌 것 확인하기 전까지는 병원 안에 못 들어가시고 격리실에서 대기해야 하는데, 저희 병원 격리실 자리가 없어요. 다른 병원 안내해드릴 테니까, 잠시 계세요."

 다행히 옆에 있는 대학병원 격리실에 자리가 있어 그쪽으로 전원하였습니다. 


 지금 현재 가장 큰 피해를 받는 환자가 이런 경우입니다. 당장 응급으로 입원해서 진료가 필요한 경우(심근 경색이나 심한 폐렴, 고열 등등)이나 열이 나거나 호흡기 증상이 있어 코로나 가능성을 배해 할 수 없는 환자. 

 제일 좋은 건 격리실에서 각종 검사와 조치를 받으며, 코로나 검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하지만 이제 격리실도 포화상태입니다. 격리실이 없으면 코로나 검사만 하고, 결과 나올 때까지 집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동안 상태가 나빠지면요???????????????????????????????????? 

 ......................................................


 두 번째는 '생활치료센터' 부족입니다. 코로나가 확진되면 무증상이거나 경증인 사람은 '생활치료센터'라는 시설에서 2주간 관찰 및 격리를 합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상태가 안 좋아지면 병원으로 이송되고, 별일 없으면 격리 해제가 됩니다. 문제는 이제 '생활치료센터'도 포화상태라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럼 확진자 중에서 무증상이거나 비교적 증상이 가벼운 사람은 집에 있어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972206.html

 정부는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는데 사실 말이 안 됩니다. 당장 저만해도 8살짜리 딸과 아내가 있는데 아무리 잘한다고 할지라도 가족 내에서 코로나가 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혼자 산다고 하더라도 2주 동안 집에서만 있을까요? '생활치료센터'에서야 거의 반강제이지만, 집에 혼자 있게 되면 사실상 100%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거기다 생활치료센터에는 의사가 있어, 상태가 안 좋아지면 즉시 조치가 가능하지만 집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결국 자가치료는 방역을 포기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셋째는 코로나 중환자를 수용할 시설 및 인력 부족입니다. 애초부터 중환자실이 적자여서 병원들이 최소한으로 중환자실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가 발생했습니다. 피를 걸러주는 콩팥이 안 좋으면 인공 투석을 하고, 폐가 스스로 산소를 못 받아들이면 기관삽관을 해서 기계호흡을 합니다. 그런데 이 기계 호흡이란 게 참으로 어렵습니다. 일단 수천만 원하는 성인 키만 한 컴퓨터 크기의 인공호흡기 기계가 있어야 하고, 호흡기 격리실도 필요합니다. 거기다 인공호흡기를 다룰 줄 아는 전문 인력(의사 및 간호사)도 필요합니다. '당장 급하니까, 한 달 만에 기계 다 만들고, 건물 짓고, 인력 양성해.'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https://www.news1.kr/articles/?4136315


  간신히 버텨온 둑이 한순간에 무너질까 조마조마한 나날입니다. 몸조심하십시오. 



 그동안 K-방역에서 가장 고생을 한 사람은 의료진도 의료진이지만, 현장에 있는 공무원입니다. 일일이 격리자와 확진자의 동선을 CCTV와 휴대폰, 설문조사를 통해 일일이 조사하고, 확진자가 다녀간 곳을 뒤쫓아다니며 방역하고, 자영업자들에게 욕을 얻어먹어가며 영업정지 명령을 내리는 현장에서 발로 뛰는 공무원이 K-방역의 진정한 주인공이자, 영웅이라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땀을 흘리며 욕을 얻어먹고 있을 이름 없는 그분들을 응원합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court_law/2020/12/02/2UZ2ZHHO5VD3NGJLJU33UCJ2GQ/

 신내림 받은 공무원 너 말고. 

 

 


  브런치에서 썼던 글의 일부가 <의사의 생각>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구독자분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몇몇 분들이 브런치의 글들이 사라졌다고 물어보시는데, 책이 발간됨에 따라, 책에 실린 글들은 브런치에서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82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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