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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Dec 17. 2020

"엄마가 집에 오지 말래요."

한파가 몰아치는 코로나 선별 진료소에서 

 어제는 서울 영하 10도, 제가 일하는 서울 북부는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날이었습니다. 일요일에 내린 눈이 얼음으로 바뀐 후, 녹지 않아 군데군데 남아있어 발걸음마저 조심스럽습니다. 

 병원 안은 한가한데, 병원 밖은 선별 진료소는 시장통입니다. 지난주까지는 괜찮았는데, 이번 주에 국가에서 무증상도 검사를 무료로 시행하라고 하자 사람들이 한 번에 10명씩 옵니다. 10명 중에 9명은 걱정되어서, 궁금해서 옵니다. 

 "회사에 목이 아픈 사람이 있어서, 혹시나 몰라서 단체로 검사하러 왔어요."

 "제가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라."

 "그냥 걱정이 되어서."

 

 제가 이곳에 일한 지는 2달이 조금 넘어갑니다. 코로나가 터지고 난 후, 일을 하다 보니 직원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저는 동료 얼굴을 잘 모릅니다. 얼굴을 몰라도 옷만 보면 병원 직원임을 알 수 있어서 인사를 부지런히 하는데, 퇴근할 때가 문제입니다. 병원 직원들은 제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저를 다 압니다. (머리가 완전히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퇴근할 때는 사복을 입기에 직원인지 일반인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항상 먼저 인사를 받습니다. 끙. 

 한 번은 모자를 쓰고 출근을 했더니, 입구에서 체온을 재고 QR 코드를 작성하는 직원이 묻더군요. 

 "병원에 어떻게 오셨어요?"

 저는 말 대신 살며시 모자를 벗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아, 선생님이셨구나."

 저의 변신술은 아주 쉽고 간단합니다. 모자만 쓰면 됩니다. 한 번은 하늘과 같은 의국 선배가 제가 가발을 쓰고 출근하니까 갑자기 존댓말을 쓰며 말을 버벅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선별 진료소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거 빼고는 괜찮습니다. 그것도 밖에 계속 있는 게 아니고, 병원 안 진료실에 있다가 환자가 오면 나가고 실제로 밖에서 일하는 시간은 2~3시간 남짓합니다. 


 선별 진료소에 온 환자는 첫째로 접수를 하고, 둘째로 의사인 저를 만나 간단한 질문 및 진찰을 받고, 셋째 코로나 검사를 한 후, 넷째 수납을 하게 됩니다. 


 안내 직원 2명이 각종 안내,  의사인 저는 문진 및 진찰,  임상 병리사가 코와 입을 면봉으로 후비는 검사 채취

그리고 데스크 직원이 접수와 수납을 합니다. 요즘 환자가 너무 많아서, 접수와 수납에 한 명 더 보충되었습니다만, 동선 구분해야 하고 일일이 문진 종이를 작성하고 또 그걸 안으로 직원분이 전달해야 해서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안내 직원과 접수와 수납을 동시에 해야하는 직원이 가장 바쁘고, 10명 중에 9명은 단순 검사를 위해 오기에 의사인 제가 제일 편합니다.

 "정성훈 씨, 선별 진료소에 오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검사하러 왔어요."

 "네, 저 파란 선생님한테 가셔서 검사받으시면 됩니다."

 이렇게 한 번에 5명을 보고 컴퓨터로 가서 

 <검사 위해 내원, 무증상>을 복사, 붙여 넣기로 차팅 하고 마우스 클릭 몇 번 하면 끝입니다. 문진 및 처방, 차트 기록까지 포함해서 환자 한 명당 1분도 안 걸립니다. 접수와 수납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환자도 기다리지만, 의사인 저도 검사 체취를 하는 임상 병리사도 직접 뭔가를 하는 시간보다 환자가 접수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저는 방호복 안에 후리스를 껴입은 데다 방호복이 바람을 막아주는 윈드스탑퍼 기능에 패딩잠바 마냥 두툼하게 공기를 품어주기에 그리 춥지 않습니다. 문제는 손입니다. 방호복에는 호주머니가 없어서 그대로 영하 10도에 노출됩니다. 얇은 고무장갑을 껴서 거의 맨손이나 다름없습니다. 거기다 알코올 소독제라도 한 번 썼다가는 손이 분쇄기에 들어간 것 같은 고통이 밀려옵니다. 

 어쩔 수 없이 선별 진료소 앞에 있는 사람 키 높이에 양팔 벌린 크기의 히터 앞에서 손을 녹입니다. 그 앞에는 파란색 가운을 입은 저희 병원 임상병리사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면봉으로 사람들 코와 입을 쑤셔야 하는 수작업을 하기에 저보다 더 손이 시릴 겁니다. 


 몇 번 마주치기는 했으나, 맨얼굴을 본 적이 없는 데다가 마스크에 페이스 실드까지 끼어 낯섭니다. 새하얀 피부에 커다란 눈에 약간 통통한 얼굴입니다. 서양미인보다는 한국형 미인에 가깝습니다. 틈새로 보이는 앳된 얼굴이 20대 초중반 같습니다. 제 막내 여동생 뻘입니다. 히터 앞에서 쭈뼛하게 서 있기 어색해서 제가 먼저 말을 건넵니다. 

 "저희 어머니가 걱정이 많으셔가지고, 저는 집에다 선별 진료한다고 말도 못 했어요. 제가 이러고 있다는 거 알면 날마다 전화 올게 분명하거든요. 선생님 어머니께서는 선별진료소 일하시는 거 아세요?"

 저희 엄마는 제가 선별 진료소에 일하는 거 아시고, 아예 집에 오지 말래요. 혼자 여기 사는데, 집에 못 간지 몇 달은 됐어요.

임상병리사 선생님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제가 괜한 말을 꺼냈나 봅니다. 뭐라 할 말이 없어, 더 어색해집니다. 

 

 선별 진료소에서 일한다고 많은 분들이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십니다. 사실 의사는 거의 직접 접촉을 안 하기에 안전합니다. 제일 위험에 노출되는 분은 실제로 사람들의 코와 입에서 바이러스 채취를 위하여 검사를 담당하는 분들(임상 병리사)입니다. 가뜩이나 감염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도 걱정일텐데, 집에서 마저도 오지 말라고 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막내 여동생 뻘, 동료에게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진정한 숨은 영웅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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