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사의 최신형 휴대폰이지만, 전화는 대부분 광고와 대출이고, 문자는 안전 안내 문자입니다. 회사가 집에서 제법 멀어 몇 개의 구와 시를 통과하다 보니, 서울만 해도 4개의 구(區)와 경기도는 5개의 시(市)에서 문자가 스팸 수준으로 쏟아집니다.
문자 내용은 대게 엇비슷합니다. "어느 지역에서 OOO번 확진자가 발생했다.", "OO 사우나를 방문하신 분은 진단검사 바랍니다."
처음에는 확진자가 다녀간 곳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걱정도 했습니다. 그러다 작년 10월부터 선별진료소가 있는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선별 진료소에서 본 환자 결과를 다음날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일한 지 며칠이나 되었을까, 전날 본 사람 중에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혹시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같이 일하는 직원들과 동료들은 확진자가 나와도 무덤덤하기에 저도 마음을 편안히 가질 수 있었습니다. 11월 말부터 확진자가 폭발하고, 하루에도 선별진료소에서 수십 명의 환자를 보다 보니 이제는 검사 결과를 확인할 여유조차 없습니다.
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걱정도 많았지만, 오히려 선별진료소에서는 각종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방역 수칙을 지키기 때문에 더 안전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의정부 OO식당을 OO월 OO일부터 OO일까지 이용하신 분들은 진단검사 바랍니다."
라고 문자가 왔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잊어버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 선별진료 접수되었어요."
라고 직원이 알려줍니다. 보호복을 입고 내려가니, 접수 직원이 문진표를 보여줍니다. 김유진. 26세. 코로나 접촉력 X. 증상 X. 딱 보면 압니다. 그냥 검사를 하러 온 것이군요. 20대 젊은 남녀 커플이 있습니다. 둘 다 장난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제 예상이 맞습니다.
"김유진 씨, 오늘 어떻게 오셨어요?"
"아, 네. 회사에서 코로나 검사하고 오라고 그래서요."
"코로나 관련 접촉을 하거나, 현재 증상 없죠?"
"네."
"검사하시면, 예전에는 12시간 안에 나왔는데 지금은 검사가 많이 밀려서 내일 아침에 나올 거예요. 보건소에서 하시면 2~3일 걸리고요. 결과 나올 때까지는 격리하셔야 해요."
<의정부 선별 진료소에서 나눠주는 팸플릿>
"아, 진짜요? 그럼 괜히 왔다. 보건소에서 할 걸."
김유진씨는 아쉬워하며 웃습니다. 옆에 있던 남자 친구도 거듭니다.
"그러게. 그럼 2~3일 쉬는 건데."
"조희준 씨도 같이 온 거죠?"
"네, 저도 검사하러 왔어요."
그러면서 여자 친구를 뒤에서 안으며 볼을 비빕니다. 저는 살짝 화가 납니다. 그들의 젊음이 부러운 건지, 아니면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쉴 수 있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 환자 45세 박점자 씨는 '확진자 발생한 OO 식당에서 일함'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긴장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OO식당은 가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이름이 낯익습니다.
"박점자 씨 어떻게 오셨어요?"
"같이 일하는 식당 직원이 코로나 확진이 되어서요."
"네. 지금 증상 있나요?"
"아뇨, 없어요."'
"저희는 병원이라 검사만 할 겁니다. 격리 유무는 보건소에서 직원이 말해줄 겁니다."
그 후로도 OO 식당 방문자가 검사를 하러 왔습니다.
"신예숙 씨도 OO 식당 관련 접촉자인가요?"
56세 신예숙 씨는 키는 작고 좁은 어깨에 얼굴이 약간 긴 편입니다. 뒤로 모아 고무줄로 묶은 검은 머리에 마스크 위로 보이는 두 눈은 충혈되고 피곤해 보입니다. '음. 혹여나 코로나가 옮았을까 봐 걱정을 하는 건가?' 저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지금 증상 있나요?"
"아니요."
"저희는 병원이라 검사만 할 겁니다. 격리 유무는 보건소에서 직원이 나올 겁니다."
"이미 밀접 접촉자라 격리하래요."
"아, 그러세요?"
제가 식당을 하는데 직원이 확진되고, 저와 다른 직원 모두 격리해야 되어서 식당이 망할 판이에요. 문을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이 터져서... 코로나도 코로나인데 식당은 어떻게 해야 할지?
신예숙 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저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떠올랐습니다. 오늘 확진자가 나왔다고 문자를 받은 바로 그 식당이 신예숙씨가 운영하는 OO 식당이었습니다.
"아휴,,, 참......."
식당 사장님은 정말 눈 앞이 캄캄할 겁니다. 저도 코로나로 힘든 작년이었습니다. 3년 넘게 일한 병원에서 환자 급감으로 단축근무에 임급 삭감까지 되었고, 결국 버티다 못해 자의반 타의반 일을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예숙님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저로서는
"일단 몸이 우선이니까, 2주간 격리 잘하십시오."
따위의 말을 늘어놓는 게 전부였습니다.
"저 쪽으로 가서 검사받으세요."
라고 신예숙 님을 안내하는데, 아주머니의 움츠러든 어깨를 보니 착잡해집니다.
의정부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OO 식당 방문자는 진단검사받으세요."라고 문자가 갈 테니, 신예숙이 다행히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식당은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2주간 격리되는 직원들도 난리일 테고.... 당사자가 아닌 제 머리도 마음이 아픕니다.
누구에게 코로나로 웃으며 며칠 쉴 수 있는 휴식이 되고, 누구에게는 건강뿐만 아니라, 그동안 준비해왔던 모든 걸 잃어버리는 재앙이 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지금 이시간에도 수도 없이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다음날 신예숙 님 검사 결과를 확인해보니, 다행히 코로나는 음성이었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