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리의사 May 28. 2021

"선생님, 사실은....."

의사는 그냥 의사다.

 진료실로 들어온 그가 쭈뼛쭈뼛거렸다. 20대 초반에 키는 170 초반으로, 안경은 끼지 않았다. 몸이 마른 편이었는데, 평소 자신감이 없는지 아니면 긴장해서 위축되어 실제보다 더 왜소하게 보였다. 정장 차림이 아니었으니 직장인은 아니었고 대학생 같았다. 손에는 하얀 A4 용지가 들려 있었다. 건강검진 종이는 하늘색이니, 그는 채용 검진일 가능성이 높았다.

 "채용 검진하러 오셨네요. 이쪽으로 앉으시고 종이 주세요."

 "아, 네."

 내가 먼저 최대한 상량하게 말을 건네고 손을 뻗었지만, 그의 움츠러든 어깨는 여전히 펴지지 않았다. 나는 오늘도 채용검진과 건강 검진하러 온 사람을 수십 명째 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환자였지만, 나는 그에게 일 년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한 낯선 의사였기에 경직된 거라고 처음에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서 채용 검진 서류를 건네 받았다. 키나 몸무게는 나와 거의 비슷했고, 시력은 1.2/1.0으로 나보다 눈이 좋았다. 나이는 내 나이의 반이었다.

 "평소에 앓고 있는 질환, 먹고 있는 약, 살아오면서 수술하거나 입원한 적 있어요?"

 "아니요."

 "지금 어디 아픈데 있어요?"

 "아니요."

 나는 빈칸을 정상으로 채우고,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하고, 내 면허번호를 적었다. 이제 남은 건 가슴 사진, 혈액과 소변 검사만 남았다.  

 채용 검진을 할 때, 환자와 의사는 같은 곳을 본다. 평가를 받는 그와 평가를 하는 나, 모두 '정상'과 '합격'만을 기대한다. 내가 최종적으로 '합격'이라고 적힌 서류를 건네주면, 그와 나 모두 '혹시나'하는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우리 둘 다 '역시'하고 웃으면서 헤어질 것이다. 그러다 '비정상'이 나오면, 이제 그와 나는 서로 다른 곳을 본다. 그는 혹시나 이 채용 검진 결과 때문에 원하는 곳에 들어가지 못할까 걱정을 하고, 나는 혹시나 나중에 각종 소송이나 법적 문제에 얽힐까 두렵다. 그는 문제를 숨기려 하고, 나는 문제를 드러내려 한다.

 "자, 채용 검사는 여기까지 하고 혹시나 살면서 어디가 아프거나, 의학적으로 궁금한 거 있어요?"

 나는 만년필을 내려놓고, 그에게 두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물었다. 병원과 진료실, 거기에 머리가 없는 대머리 의사인 내가 아직도 어색한 지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선생님, 사실은


 의사로서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이때까지 내가 들었던 "사실은" 뒤에 이어지는 말은 대충 이랬다.

 "제가 보험을 들어둔 게 있어서............."

 "전에 왔을 때 넘어져서 다친 게 아니라, 남편에게 맞아서........."

 "제가 잠을 못 잔 게, 전에 말씀드린 교대 근무 때문이 아니라 어떤 남자에게 심한 욕설을 들은 이후부터 무섭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예전에 다른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었는데........." 

 대화 끝에 나오는 "사실은"이라는 말은, 지금부터가 "진실"이며 이전까지 했던 말은 "거짓"이라는 뜻이다. 그가 나를 지금까지 믿지 않았거나 의심했다는 말인 동시에 그가 또 다른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사실은"이라고 말한 뒤에 이어지는 내용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나는 이제 의사가 아니라, 형사가 된다. 그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구별해야 한다. 그 말에서 허점을 찾아내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제 하얀 진료실이 검은 취재실로 변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눈에 문제가 있어서 수술을 했거든요."

 "무슨 수술이었어요?"

 나는 놓았던 만년필을 다시 집어 들었다.

 "선천성이라고 했는데, 정확하게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가 의경을 가려고 지금 검사를 하는 거거든요. 의경은 병원에서 신체검사 해오면 된다고 그랬고요."

 의외로 간단했다.

 "아, 네. 지금은 시력에 문제가 없으니 괜찮아요."

 내가 추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나? 끝까지 수술하고 아팠던 적 없다고 거짓말을 하려다 양심에 가책을 느껴 말하는 착하고 소심한 젊은이를 괜히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나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다시 만년필을 손에서 놓았다. 지만 끝이 아니었다. 그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저 혹시나 눈 때문에 군대 면제를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사실은..."에 이어 "그런데 저....."로 이어지는 시간차 공격이 이어졌다.   

 그랬다. 그는 눈 때문에 의경에 떨어질까 걱정인 동시에, 혹시나 눈 때문에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을까 기대를 품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가 진료실에 들어올 때부터 쭈뼛쭈뼛 거린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군 면제. 대한민국 남자라면 모두 다 대입만큼 아니면 그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하는 문제. 대학은 어떻게든 가겠다고 발버둥 치지만, 군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그가 뒤늦게서야 진실을 털어놓은 이유는 양심이 아니라, 욕망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속았다는 생각과 함께 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전 잘 모르니까, 안과 가보세요.'

 딱 잘라 말해야 했다. 하지만 이 땅에 태어난 그 남자가 불쌍했다. 나는 피 끓는 20대에 지리산 아래 산청에서 3년을 보냈다. 육지에 떠 있는 섬이었다. 산청군 전화번호부를 읽으며, 교회 수와 절 수를 세던 외롭고 쓸쓸했던 시간이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4939081

에게 같은 대한민국 남자로서 연민이 느껴졌다. 안과는 잘 모르지만, 병원 시스템이나 절차는 잘 알기에 그를 도와주기로 했다.


 나는 다시 한번 내려놓은 만년필을 들고, 새하얀 종이 한 장 꺼냈다.

 "어디서 수술받으셨어요?"

 "서울대 병원요. 그런데 저를 수술하신 교수님이 이미 은퇴하셨더라고요."

 그는 신생아 때 자신을 수술한 교수가 퇴직한 것을 확인할 정도로 이미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왔다. 그러면서 내가 한 가장 첫 질문인 "평소에 앓고 있는 질환, 먹고 있는 약, 살아오면서 수술하거나 입원한 적 있어요?"에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화가 났지만 이왕 그의 편이 되기로 한 것 끝까지 돕기로 했다. 생각은 많고 소심한 그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대학교 병원 안과.  나는 종이에 썼다.

 "상관없어요. 기록이 있을 테니까. 병명은 모르죠?"

 "네. 희귀병이라고만 했어요."

  희귀병. 만년필을 끄적였다.

 "그러면 일단 서울대학교 병원 안과에 진료를 잡으세요. 기록은 그때 그대로 남아 있을 테고, 의사가 바뀐다고 병명은 바뀌지 않으니까 상관없어요. 병역 면제 기준이 있기 때문에 먼저 진단명 하고 받은 수술 확인하세요. 서울대 병원에서 병무용 진단서도 받을 수 있으니까, 굳이 다른 병원 갈 필요도 없겠네요. 가서 처음부터 사실대로 군대 면제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왔다고 말하면 될 겁니다."

 "네, 안 그래도 병무청 지정병원도 알아봤거든요. 근데 마땅히 물어볼 때가 없어서."

 '길만 가도 널린 게 병원이고 의원인데, 물어볼 때가 없다니.'

 속으로 안타까워하며 나는 종이에 또 몇 글자를 적었다.

 진단명. 수술. 병무용 진단서.

 "병역 검사 아직 안 받으셨죠?"

 "네."

 20년 전, 창원에 있던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가 떠올랐다.

 "병무청 가면 의사 몇 명 앉아있고, 이상 없죠? 네. 하면 끝이에요. 뭔가 문제가 있으면, 미리 소견서 받아놔야 해요. 아무도 안 챙겨줘요. 스스로 준비해야 돼요. 신체검사할 때 어디 이상 있어요, 어디 아파요 해 봤자, 서류 없으면 그냥 통과예요."

 쭈뼛쭈뼛하던 그가 이제 나에게 조금 몸을 기울인다.

 "지금 시력 괜찮으니까, 의경 가는 건 문제없어요. 마찬가지로 군대 면제될 가능성은 낮지만, 그래도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한 번 확인해 봐야죠. 며칠 고생해서 1년 6개월 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는 쭈뼛거리던 이전과는 다르게 몸에 잔뜩 힘을 주고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예약할 때, 꼭 젊은 남자 의사 찾아가세요. 의사들은 군대 싫어하니까, 이해해줄 거예요."

 "아, 네."

 젊은 남자 의사.

 "아시겠죠? 이런 건 본인이 직접 챙기셔야 해요. 아무도 안 챙겨줘요."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그가 거푸 고개를 숙이며 절을 한다.

 나는 모두 정상이라고 적힌 <채용 신체 검사서>를 그에게 건넸다. 

 "선생님, 그 적으신 것도 주십시오."

 그가 내가 설명하기 위해 끄적인 하얀 종이를 향해 손을 내민다.

 "아, 네."

 나는 서울대학교 병원 안과, 희귀병, 진단명, 수술, 병무용 진단서, 젊은 남자 의사가 질서 없이 적힌 종이를 그에게 주었다.

 "선생님 정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가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한다. 츠러들었던 그의 어깨가 비로소 활짝 펴졌다. 환자는 거짓말을 하지만, 의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설령 환자가 거짓말을 한들, 의사는 항상 환자 편이다. 의사는 그냥 의사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