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리의사 Jul 30. 2021

왜 안 오셨어요?

어떤 대답을 한 들,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눈앞에는 환자가 9개월 전에 찍은 사진과 오늘 찍은 사진이 동시에 떠 있었다. 내 검지 손가락은 아무 의미 없이 애꿎은 마우스 버튼만 반복적으로 눌러대고 있었고, 입 안에서는 계속 말이 맴돌았다.


 '도대체 왜 병원에 안 오셨어요?'


 동네 의원에 오는 환자 중, 대다수는 저절로 낫는다. 감기는 약을 먹으면 7일 안에 좋아지고, 안 먹으면 일주일 만에 낫는다. 대학병원의 주된 역할이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라면, 동네 병원은 주로 사람을 안심시킨다. 그러다 가끔 심각한 환자가 온다. 암이나 중풍 같은. 그럴 때마다 겁이 많은 나는 병을 진단했다고 어깨를 으쓱하기보다는 놓치지 않아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선별 진료소도 다를 바가 없다. 검사를 하러 온 100명 중, 한 두 명만 코로나로 확진되고, 1~2명은 입원 치료가 필요한 폐렴이나 다른 발열 질환일 뿐 나머지 95명은 그냥 불안해서 온다.

<에어컨을 최대한 틀어도 30도>

 폭염이 지속되는 어느 날이었다. 신발 밑창이 녹아 달라붙은 것 같은 끈적끈적한 검은 아스팔트 위에서 한 남자가 한기로 작은 몸을 벌벌 떨었다. 68세 김상석 씨였다. 당뇨와 고지혈증 외에 특별한 과거력은 없었다. 딱 딸만한 키에 제법 다부진 몸으로 고집이 있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일주일째 기침을 하는데 열이 난다고?'

 다른 병원에서 감기약을 먹고 있었으나 며칠 전부터 열까지 난다고 했다. 코로나도 코로나이지만, 경험상 폐렴일 가능성이 높았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기로 했다.

 선별 진료소에 환자는 많았다. 나는 김상석 씨가 검사를 하는 동안에도 부지런히 줄 선 사람들을 진료해야 했다. 나는 처방을 내고, 다른 환자를 보느라 그를 잊었다.

 "선생님, 김상석 씨 엑스레이 촬영하였습니다."

 "아, 네."

 방사선 기사가 잊고 있던 김상석 씨를 소환했다.

 그의 사진을 클릭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검게 보여야 할 좌측 폐 중간에 계란 크기만 한 혹이 보였다. 단순 폐렴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혹이라는 점에 신경이 쓰였다. 폐암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이전 기록을 뒤졌다. 9개월 전에 촬영한 엑스레이가 있었다.


 과거 사진은 매우 중요하다.

 이전에 없었는데, 새로 생겼으면 염증일 가능성이
 이전에도 있었는데, 커졌으면 암일 가능성이 높았다.  
  

 '제발, 제발 아무것도 없어라.'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 기대는 어긋나고 말았다. 계란만 한 혹이 있는 자리에 정확히 메추리알 크기의 혹이 있었다. 판독마저 <좌중 폐야 2.3cm 종괴 의심. 외래 진료 요함>라고 적혀 있었다. 환자는 건강 검진을 위해 작년 10월에 엑스레이를 촬영하였고, 검사 결과가 이상 했으나 그것이 전부였다.

 환자에게는 혹이 있는데, 폐렴일 수도 있으니 폐 CT를 찍자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방호복을 벗고 건강검진실로 갔다. 환자에게 검사 결과가 정확하게 통보되었는지 확인을 해야 했다. 검사 결과가 이상한데 정상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건강검진 결과에도 분명히 <좌중 폐야 2.3cm 종괴 의심. 외래 진료 요함>이라고 쓰여 있었고, 환자에게도  우편으로 통보되었다고 담당자가 말했다. 하지만 환자는 우리 병원뿐만 아니라 다른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환자는 내과로 입원하고 CT를 찍었다. 폐암이었다. 엑스레이에서 보이던 계란 크기의 암 덩이 말고도, 기관지 주위로 50원 동전만 한 암 덩어리가 하나 더 있었고, 폐 주위 림프절이란 림프절은 모조리 커져있었다.

 나는 김상석 씨에게 묻고 싶었다.

 '그때 왜 안 오셨어요?'

 그 당시 그는 바빴을 수도 있고, 아픈 곳이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수도 있다. 가슴이 아프거나, 가래가 끓거나 가래에서 피가 나왔다면 바로 병원에 왔겠지만, 별 다른 증상이 없었기에 한 줄짜리 <좌중 폐야 2.3cm 종괴 의심. 외래 진료 요함> 검사 결과는 그냥 좀 찝찝하지만 넘어가도 될 문제였을 지도 모른다. 그에게 우선순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는 동안, 메추리알만 했던 은 조용히 덩치를 키우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결국 그가 기침을 하고 가래가 끓어 열까지 나서 나를 만났을 때에는 이미 걷잡을 수 없었다.

 그는 곧바로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갔다. 대학병원에서도 해 줄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을 것이었다. 너무 늦다. 후순위로 밀려 있던 건강은 이제 그에게 모든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것을 잃을 예정이었다.

 '왜 그 때 내가 병원에 가지 않았을까?'

 '그 때 병원에 갔으면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김상석 씨는 하얀 병실 침대에 누워서 끝없이 후회할지도 몰랐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건강검진 결과를 단순히 우편으로 발송하게 한 국가?

이상 결과가 나왔으나, 그저 우편으로 통지한 병원?

건강검진을 하고서 의사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환자?


  한 사람의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는 가운데 나는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 했나 고민해 본다.

 나는 그에게  "왜 안 오셨어요?"라고 묻지 않았다. 환자가 그 질문에 대해서 어떤 답을 한들 바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건 상대의 대답을 바라는 질문이 아니라, 나 혼자만의 탄식이었을 뿐이었다.



브런치에서 썼던 글의 일부가 <의사의 생각>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구독자분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몇몇 분들이 브런치의 글들이 사라졌다고 물어보시는데, 책이 발간됨에 따라, 책에 실린 글들은 브런치에서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해부탁드립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822170


매거진의 이전글 네이버가 이럴 줄은 몰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