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가 느려지고, 환자가 골든아워를 놓치게 된 까닭
KTX를 처음 탄 사람은 다들 한 번씩은 놀라거나 의문을 가지게 된다. 300km/h가 넘는 속도, 창밖으로 마치 선처럼 보이는 풍경,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 역이름이다. ‘오송역’ 다들 그 이름을 처음 들으면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라고 고개를 기웃거린다.
KTX는 원래 서울과 부산을 1시간 40분, 즉 100분 안에 통과하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 역이 늘고, 정차 횟수가 많아졌다. 거기다 굳이 정차하지 않더라도 역을 지날 때 안전상의 이유로 속도를 늦추기에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처음 계획과 달리 2시간 이내는 꿈도 못 꾸고 점점 시간이 늘어졌다. 2023년 6월 5일 기준 이제는 최소 2시간 24분에서 최장 3시간 21분이나 걸린다. 2시간은커녕 이제는 평균 3시간 가까이 걸린다. 고속열차는 그렇게 역이 늘수록 점점 고속의 의미가 퇴색해져 갔다.
이렇게 역들이 늘어나게 된 이유는 다들 알 것이다. 지역 주민들이 일제히 자기 지역에 역을 세워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방자치단체장과 정치인이 발 벗고 나선 결과였다. 결국 지역 주민들은 이익일지 몰라도, KTX는 고속열차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점점 느려지고 있다. 심지어 동대구-밀양-구포-부산 선에는 물금역까지 생길 계획이라 더 느려질 예정이다. 소수는 이득을 얻었지는 모르지만, 다수가 손해를 입게 되는 상황에 처했다.
역이 많이 생기면, 점점 기차의 속도는 느려질 뿐 사람들이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국에 <권역외상센터>가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 마냥 좋기만 한 걸까?
이국종 교수는 이전 2005년 <중증 외상센터 설립 방안>이라는 논문에서,
1. 최소 4곳의 대수술실과 2개소의 소수술실,
2. 40 병상의 중환자실, 120병상의 일반 전용 병상
3. 최소 7명 이상의 외상외과 전문의와, 외상외과 전문의 1인당 연간 35명의 입원 환자
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그는 예전부터 “중증외상센터를 운영하려면 최대한 환자와 의료진을 센터에 집중 배치하여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한다”라고 주장했으나, 정작 ‘이국종법’은 이국종 교수의 의도는 다르게 흘러갔다. 이국종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소규모로 분산된 외상센터는 환자를 집중 수용하기에 너무 작”다고 반대했지만,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권역외상센터>는 전문가의 견해가 아니라,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 전국에 16개에
1. 최소 2곳의 대수술실
2. 20 병상의 중환자실, 40병상의 일반 전용 병상
3. 외상 외과 전담으로 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및 신경외과 각 1명 이상, 겸임이 가능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1명 이상, 마취과, 영상의학과 1명 이상 총 7명
으로 규모나 인력 면에서 대폭 축소되었다.
‘이국종법’에는 ‘이국종’이 없었고, 권역외상센터 설립에는 전문가의 견해 대신 정치인의 이권만 가득했다. 선한 의도로 노력해도 성공할지 미지수인데, 욕심에 눈이 먼 자들이 이익을 따지니 실패할 것이 분명했다. 역시나 <권역외상센터>에는 문제가 생겼다.
인지도가 높은 아주대학교 권역외상센터는 환자들이 넘쳐났지만. 인력이 모자랐다. 반대로 지방에 있는 일부 <권역외상센터>는 환자가 부족했다. <권역외상센터>는 우리나라 진료수가가 매우 낮았기에 환자가 많아도 적자, 환자가 없어도 적자였다. 환자가 많은 병원은 그럴 수 없었지만, 외상 환자가 적은 병원 측은 <권역외상센터> 전담 의사들에게 다른 환자를 보도록 시켰고, <권역외상센터> 전담 의사들이 이에 반발하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그 결과가 2020년 원광대 외상전문의 7명이 집단 사표를 내게 되었다.
2023년 6월 현재 원광대 <권역외상센터> 전담 의사는 외상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응급의학과 4명이다. 소규모의 문제는 또 발생한다. 이국종 교수의 뜻과는 달리, 최소 7명 이상의 외상 외과 의사가 아니라, 외상 외과 의사가 달랑 1명뿐이라 혼자서 365일, 24시간 복부 외상 환자를 담당해야 한다. 이는 혼자뿐인 신경외과, 정형외과 의사 등이 다른 과 의사 또한 마찬가지다. 각 파트 의사가 한 명뿐이기에 담당 의사가 병가, 휴가, 학회 등의 이유로 진료를 할 수 없으면 환자를 볼 수가 없다. 거기다 복부 외상 환자가 한 명만 있어도, 외상 외과 의사가 한 명뿐이라 다른 복부 외상 환자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수학적으로는 3을 3으로 나누면 1이 되어야 하지만, 의료 현실에서는 0.5가 되었다.
그렇게 잘못된 설계로 인한 규모의 문제로 365일, 24시간 진료는 어려웠다.
또한 365일, 24시간 혼자서 진료를 해야 하는 의사 입장으로는 미칠 지경이다. 365일, 24시간 당직을 서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항상 대기해야 한다. 백업이나 커버도 전혀 안 된다. 누적 피로도는 말할 수도 없다. 버틸 수가 없다. 이국종 교수가 말한 대로 7명 이상이 아니더라도 최소 같은 파트 의사가 4명은 최소 365일, 24시간 진료와 수술이 가능하다. 또한 의사로서 실력이 녹슬지 않으려면 일정 수 이상의 환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의사는 달랑 혼자뿐이었다.
거기다 병원 입장에서는 365일, 24시간 병원 문을 열어 놓았는데 환자는 적고, 적자는 쌓여간다. 적자를 줄이기 위해, 외상 전담 의사에게 일반 진료를 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의사로서는 365일, 24시간 대기하는 데다 거기다 일반 진료까지 하라니 그만둘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저수가, 각종 소송 등으로 인한 고위험에 더해 처음부터 잘못된 설계된 시스템. 그 결과가 ‘응급실 뺑뺑이’다. 좁은 국토에 <권역외상센터>가 현재 무려 17개(그 사이 또 늘었다)나 있음에도, 70대 교통사고를 당한 노인이 병원을 찾다 엠뷸런스 안에서 사망하고, 4층 높이에서 떨어진 10대 여학생이 병원을 전전긍긍하다 죽는 일이 발생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17개의 <권역외상센터>가 환자를 받지 않는 ‘수용 거부’가 아니라,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수용 불가’ 상황이 발생했다.
KTX가 정치적 논리로 역이 많아지자, 고속열차가 느려졌다. 마찬가지로 <권역외상센터>가 정치적 논리로 많아지자, 골든아워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고속 열차가 늦어져도 열차 승객은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골든아워를 지킬 수 없게 된 환자는 살 수가 없게 되었다.
‘응급실 뺑뺑이’에 대한 비난은 현장의 의료진이 아니라, 저수가와 고위험 의료환경을 만든 것으로 부족해, <권역외상센터>조차 전문가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들만의 정치적인 논리로 전국에 17개나 지은 자들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글을 쓸 때 최대한 특정 병원을 언급하는 것을 피하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잘못된 부분 지적해 주시면, 틀린 부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수정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