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중환자실
정신과에는 중환자실이 없다. 하지만 사실상 중환자실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중증 정신질환의 급성기 치료>이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피해 망상’이나 세상의 많은 현상이 자신과 관계되어 있다는 ‘관계망상’이 나타나는 조현병이나 약물 중독 급성기나 자살 초기가 정신과 중환자에 속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1988년 밤 9시 MBC 뉴스데스크 생방송에 침입해 “내귀에 도청기가 있다”고 소리친 사건이다. 이런 경우, 대게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이를 병식이 없다고 한다) 환자가 자의로 치료를 받거나, 입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족등의 보호자나 이상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강제입원을 하게 된다.
입원해서 치료도 쉽지 않다. 정신과 환자의 특성상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약 등을 거부한다. 또한 피해망상과 관계 망상으로 의료진은 물론이고 지나가는 행인조차도 자신을 괴롭히거나 죽이려하는 악당이나 괴물로 보이기에 심한 불안과 함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 급성기에 전문적인 치료를 받고, 정신과 의사의 진료만 계속 잘 받으면 잘 지낼 수 있다.
강제 입원의 경우, 극소수의 경우, 재산 등을 노리고 가족이 멀쩡한 사람을 정신질환자로 몰아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를 영화화한 것이 바로 2016년 4월에 개봉한 “날, 보러와요.”였다.
수만명의 정신과 입원 환자 중에 한 두 명 있을까 말까한 경우를 기자들이 신이 나서 보도했고, 정신과 환자를 잘 모르는 국민들은 분노했고, 이에 현실은 전혀 알지 못하면서 정의로운 척하는 정치인들이 나서서 법을 만들었다. ‘‘인권을 더 두텁게, 사회안전을 더 빈틈없이 지키는 법’이라며, 2017년 5월 약칭 <정신건강복지법>이 신설되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1 .강제 입원시 보호자 1명의 동의에서 보호자 2명 이상으로
2. 계속 입원이 필요할 경우 서로 다른 기관에 소속된 정신과의사 두 명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했다.
이에 정신과 의사들은
1. 조현병 등의 정신과 환자의 경우, 사실상 가족이 와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즉시 보호자 2명을 찾기가 어렵고
2. 서로 다른 기관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정신과 의사 두 명의 일치된 소견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을 들어 반대했다. 물론 현장에서 직접 정신과 환자를 보는 의료진과 정신과 환자 가족들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중증 환자를 이송하고 치료하는 와중에 복잡한 가족 관계 서류와 동의서를 챙겨야 했다.” 의사는 “치료보다 서류에 더 신경”써야 했고, 나중에 나타난 다른 보호자의 반대는 물론이고 환자의 이의제기에 법적 책임도 져야 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24/2019102403489.html
원래부터 정신과 입원환자는 수가가 낮아, 대학병원에서는 정신과 입원 병동은 눈치밥을 먹고 있었는데, 각종 행정적, 법적 문제에 처하자 병원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환자”를 기피하게 되었다.
2023년 <응급실 뺑뺑이 사태> 이전부터, <정신과 입원환자 뺑뺑이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더 많은 지원을 해도 부족한 판에, 정부는 아예 의료진의 두손과 두발을 묶어 버린 것이다.
거기다 2020년 초 <청도대남병원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그러자 정부는 정신병원에게 또 다시 명령했다.
“기존 다인실의 1인당 면적을 4.3m2에서 6.3m2으로 늘리고,
침대간 간격을 1m에서 1.5m로 벌려라.”
이 법안으로 환자 1인당 면적은 1.5배로 늘어났다. 그렇다고 수가를 올려준 것도 아니었다. 병원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병상수를 줄일 수 밖에 없었다.
https://www.medicaltimes.com/Main/News/NewsView.html?ID=1153562
결국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2021년 3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오히려 정신과 입원은 어려워지고 거기다 병상마저 줄었다. 정신질환자는 느는데, 병상수는 감소하게 된 것이다. 정신과 환자, 그중에서도 정신과적 응급에 해당하는 급성 중증 정신과 환자가 치료 받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홍수로 인한 인명사고가 나자, 신난 언론은 “예견된 참사”라며, 희생양 찾기에 바빠졌고, 정치인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쁘다. 의사인 나는 홍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정신과 입원 환자 뺑뺑이 사태>는 예견된 참사가 아니라, 정부가 만든 참사이다. 의사들이 사명감으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둑을, 정부가 직접 나서서 무너뜨린 것이었다.
환자의 진정한 인권과 복지는 치료다.
덧붙이는 말: 현재 응급실도 유사한 상황인데, 정부는 <주취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일명 주취자 응급실 법안)> 에 이어 <응급환자 강 배정> 두 개의 법안으로, 경증 환자와 주취자 통제를 해도 모자랄 판에 아예 의료진의 희생으로 간신히 지켜온 둑마저 완전히 허물고 거대한 홍수를 일으키려 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예견된 인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