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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Jul 20. 2023

매년 똑같은 민원이 들어온다

한 젊은 교사를 추모하며 


 “선생님, 참 시원시원하시네요.”  


 의사인 내가 “친절하다”는 말과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10명 중에 9명은 내 진료나 상담에 특별한 말씀을 남기시지는 않지만, 10명 중 1명은 진료가 끝날 때 즈음 “친절하시다.”와 함께  “시원하시다.”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건넨다. 20대 초반 앞머리가 울창한 숲의 나무에서 점점 머리카락이 가늘어져서 초원의 풀이되더니, 결국 모공까지 사라져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이 되었다. 열대 우림이 사라지고 지구가 사막화되듯, 내 머리의 사막이 점점 넓어지자 나는 점점 줄어드는 숲마저 완전히 밀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타의 반 자의 반 빛나리 의사가 되었는데, 환자들은 의사인 나를 칭찬을 할 때도 외모와 연관시킨다. 


 나는 칭찬에는 익숙하지만, 민원은 낯설다. 그런 나에게 초등학교 1학년 학생 검진을 한 학부모에게서 칭찬으로 시작하는 민원이 들어왔다.


선생님은 참 친절한데,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기 전에 아파서 병원에 못 가도 수십 번은 갔을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무려 8번의 <영유아 검진>까지 한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1학년 학생 검진을 할 때, 내가 다른 의사들이 잡아내지 못한 병을 발견하여 명의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자체 제작한 비만 교육 자료

 초등학교 1학년 <학생 검진>에서 내가 주로 상담? 하는 것은 키와 성장, 몸무게, 성조숙증이다. 코로나 이후 비만이 더 많아져서, 아이 5명 중 1 명이 비만으로 제일 많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설명해 준다. 비만만 대략 5~10분에 걸쳐 쓱(SSG[Slow:천천히 먹기, Small:적게 먹기, Good:좋은 음식 먹기])과 같은 주문을 만들어  20번 씹기, 좋은 음식 먹기, 골고루 먹기 등을 교육한다. 그런데 칭찬으로 시작한 민원이 들어온 것이다. 


 “선생님은 참 친절하신데, 아이에게 비만이라고 직접 이야기해서 아이가 상처를 받았습니다. 아이에게 말하지 말고, 저에게만 말하면 되는데 왜 아이에게 말해서 상처를 주는 건가요? 아이가 상처를 받아 침울해하고, 밥도 안 먹겠다고 합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간단히 기록지에 ‘비만’이라고 체크하면 끝이다. 그러면 결과지에 한 줄로 


<‘비만’입니다. 음식 및 운동으로 체중 관리 요함.> 


 이렇게 나가는 것이 전부이다. 이 한 줄은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그냥 형식상의 서류일 뿐이다. 국가에서 안내 문자를 국민에게 하루에도 몇 통씩 보내봤자 그 어떤 사고를 막을 수 없듯이, 어른도 힘든 체중 조절을 하얀 종이 위에 쓰인 검은 몇 자의 글이 할 수는 없다. 거기다 의사인 내가 시간을 들여가며 쓱(SSG)이라는 주문도 말하며, 열심히 100명을 교육해도 변화하는 경우는 2~3명이 될까 말까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걸친 게 하얀 가운이라 나름 최선을 다해한다고 했는데, 민원이 들어왔다. 비만인 자기 아이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라는 것이었다. 작년에도 거의 비슷한 민원이 제기되었는데, 그때는 마음의 상처가 아니라, “충격을 받았다.”였다. 


 매년 똑같은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의사인 나는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록지에 간단히 ‘비만’이라고 체크를 하고 말 까라는 유혹이 든다. 굳이 자체 제작한 프린트물까지 주면서 길게 설명을 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면 의사인 나도 상처를 받을 필요 없고, 아이도 충격을 받을 필요 없고, 속상한 부모도 귀찮게 민원을 제기할 필요도 없다. 물론 비만인 아이가 성인병에 걸릴 가능성은 높아지고, 비만으로 인해 뇌혈관질환의 사망률이 올라가 아이의 미래 수명이 줄어들 뿐이다. 


 시대가 변했다. 예전에는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부모들이 아이들을 설득했는데, 이제 의사가 쓴 약을 주면, 부모가 쓴 약을 주는 의사를 뭐라고 한다. 그래도 같은 민원이 일 년에 한 차례에 그쳐 다행이라고, 거기다 소송이 아니라 민원이 어디냐고 위안 삼는다. 잘되면 본전, 못되면 멱살은 물론이고 소송에 시달리며 바이탈과를 하는 동료 의사들, 그중에서도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소아과 선생님과 여전히 학생들에게 희망을 품고 쓴소리를 계속하시는 선생님들을 언제나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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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 글을 쓰고, 글을 다듬는 가운데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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