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있다. 그는 오로지 축구만 사랑했다.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 실력이 뛰어났기에 그는 열 살 때 스페인으로 축구 유학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 그에게 외국에서 축구를 배운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에게는 축구가 전부였고 오로지 실력으로 인종, 국적, 왜소한 몸, 외로움까지 극복해야 했다. 수많은 유망주들이 소리 없이 사라져 가는 가운데, 그는 축구만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냈다.
그에게 조국인 한국은 어떤 의미일까? 10살 때부터 사춘기 시절을 포함한 젊은 시절을 스페인에서 보낸 그에게 한국보다 스페인이 그에게 더욱 친숙할지도 모른다. 거기다 축구 선수에게 한국은 플러스가 아니라 심각한 마이너스이다. 같은 축구 선수라도 유럽이나 남미 출신이면 플러스가 되지만 축구로서는 2류에 불과한 한국 출신은 저평가받는다. 거기다 축구 선수로 전성기인 20대에 무려 18개월을 군복무로 희생해야 한다. 다행히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서, 군면제를 받았다.
그러니 이강인에게 한국은 조국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사람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10대를 스페인에서 보냈고, 축구가 전부인 그에게 한국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게 이강인은 특별했다. 특히 축구를 좋아하는 한국 국민에게 손흥민 다음은 이강인이었다. 손흥민이 속도를 살려 수비를 뚫는다면, 이강인은 드리블로 수비를 농락하는 모습은 이전의 한국 선수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능력이었다. 공을 잡으면, 백패스하기 바쁜 한국 선수들과 달리 그의 볼키핑과 탈압박 능력은 정말 최고다.
그리고 2023년 AFC 카타르 아시안컵이 열렸다. 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는 국민들은 국가 대표팀 경기가 열리자, 갑자기 극성팬을 넘어서 축구 전문가가 되었다. 하지만 이미 세계 5대 리그 중 하나인 프랑스 리그에 최고의 클럽인 파리 생제르맹에서 뛰고 있는 이강인에게는 달갑지 않은 대회였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월드컵과 달리 아시안컵은 축구 변방의 나라들끼리 하는 시답지 않은 대회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런 경기인 것이다. 그 대회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기회는 오지 않는다. 또한 병역 혜택도 없다. 심지어 클럽팀 경기를 포기하고 뛰어야 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허정무는 마라도나를 공격하며, '태권 축구'라는 비난을 받았다>
아시아에서 한국은 일본과 함께 최강의 팀이다. 반대로 중동 및 다른 나라는 상대적으로 약팀이다. 거기다 이번 경기는 중동인 카타르에서 열린다. 일방적으로 한국에 불리하다. 과거 허정무가 마라도나를 축구가 아니라 육탄전으로 붙은 것은 다들 알 것이다. 마찬가지다. 약팀은 강팀을 상대할 때, 거친 압박이나 심한 태클로 수비하는 경우가 많아, 부상의 위험이 높다. 이미 세계적인 축구 선수인 손흥민과 이강인에게는 상대 수비의 어마어마한 압박과 거친 몸싸움이 가해진다. 거기다 아무래도 같은 팀의 선수 레벨이 낮다 보니, 클럽팀에서와 같은 활약을 펼치기 어렵다.
이강인 입장에 이번 아시안컵은
1. 부상의 위험이 매우 높다.
2. 극심한 체력 소모를 가져온다.
3. 왜 클럽팀에서는 잘하면서 국가대표팀에서는 못하냐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즉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가 된다.
얻을 것은 하나도 없지만, 잃을 것만 가득한 대회에서 이강인은 풀타임 출장하며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것도 연장전만 2번이나 가는 사투를 벌이면서. 결과는 좋지 않았다. 수많은 비난이 대표님에게 쏟아졌다. 감독과 축구 협회에 비난이 가해지던 중, 손흥민의 손가락 부상과 관련하여 영국 신문 The Sun에서 손흥민 이강인 불화설이 불거졌다. 축구 협회는 얼씨구 나하고 선수간의 불화설을 인정하며 비난의 화살을 오로지 이강인에게 돌렸다.
언론과 국민의 비난은 모두 이강인 개인에게로 향했다. 극심한 체력 소모와 부상의 위험, 클럽에서의 입지 약화 등 모든 것을 감수하고 단지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 아시안컵에 뛰었던 이강인은 이런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난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었는데, 내가 왜 이런 비난을 받아야 할까?’
‘도대체 조국이 나한테 해준 게 뭘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번 이강인 사태를 보는 다른 젊은 축구 선수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조국을 위해 열심히 뛰어야지.’ 대신
‘내가 군대 면제만 되면, 절대 국가 대표팀 경기에 안 뛰어야지.’
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 아닐까?
나이나 선후배대신 오로지 실력만 따지며 10대부터 스페인에서 외국인들과 경쟁하며 살아온 이강인이었다. 그랬기에 지금의 그가 있었고, 축구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그에게 선후배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는 낯설다. 그런 그에게 단지 한국인, 한국대표팀이라는 것만으로 한국 문화를 강요하기는 어렵다. 시대는 바뀐지 오래다.오히려 한국은 이강인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대신 더 넓은 마음으로 이강인을 품어줘야 했다.
축구 협회는 어른으로 “혈기 왕성한 젊은 선수들끼리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일이었다. 경기 결과가 나쁜 건, 오로지 우리가 준비를 잘못한 탓이었다.”라고 덮어줬으면 어땠을까?
선배들은 “강인아, 미안하다. 우리가 음바베, 뎀벨레, 마르키뇨스(이강인 소속 클럽팀의 최고의 선수들)처럼 잘못한다. 우리가 더 열심히 할게. 좀 잘 봐도.”라며 웃으며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갈등은 언제, 어디서나 있을 수 있다. 그걸 해결하는 게 진정한 능력이다. 천재를 품으려면 그보다 뛰어난 실력이 있거나, 더 훌륭한 인성이 있어야 한다. 인성이 부족하다고 욕을 들어야 하는 건 이미 충분히 비난 받은 이강인이 아니라, 그 이강인을 품어야 하는 한국과 축구협회, 선배, 그리고 국민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