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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May 07. 2024

"저는 테니스를 안 치는데요."

때로는 진단과 치료보다 어려운 것

진단은 아주 쉬웠다. 의사가 아니라, 의대생이라도 알 수 있는 질환이었다.


 60대 초반의 남자 환자였다. 땅의 흙과 햇볕에 탄 숯을 절반 즈음 섞은 피부에서 땀과 흙냄새가 났다. 그것만으로 그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환자의 직업은 질병을 진단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건설업을 하는 그가 왼손으로 아픈 부위인 오른쪽 팔꿈치를 짚자마자, 바로 진단이 나왔다.




외측 상과염(lateral epicondylitis) 쉬운 말로 테니스 선수들이 잘 생겨 테니스 엘보라는 질환이었다. 손목을 위쪽으로 많이 들어올리면 잘 생기는 질환으로, 반대로 손목을 아래쪽으로 굽히면 잘 생기는 내측 상과 (median epicondylitis)골퍼 엘보우라고 한다.


나는 환자가 아프다고 호소한 팔꿈치 바깥쪽 힘줄을 딘번에 짚으며 이곳이 맞나요?라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예, 맞아요."

 이렇게 쉽게 내려지는 진단은 극히 드물다.

나는 어느때보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테니스 엘보에요."

"다른 곳에서도 그렇게 똑같이 말하더라구요."

확신에 찬 내 말투와 반대로 환자는 오히려 뭔가 못마짱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테니스를 안 치는데 왜 테니스 엘보라고 해요?

아....... 의사는 당연히 알거라고 생각한 사실을 환자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컴퓨터 화면에 팔꿈치의 해부 사진을 보여 주며 긴 설명을 했다. 손가락을 위로 움직이는 근육과 힘줄이 팔꿈치의 바깥쪽에 붙는데, 팔목을 위로 들어 올리는 동작을 하는 사람에게서 많이 걸리는 질환으로 망치질 등이나 수건 등을 짜는 동작으로 생기며, 주로 테니스 선수들이 많이 발생해 테니스 엘보라고 한다고. 물론 환자분은 테니스 대신 망치질을 하시겠지만 똑같은 질환이라고.



"아, 그렇군요."

그제야 환자는 얼굴이 밝아졌다.


 이런 일은 자주 발생한다.

"백혈구 수가 상승했어요."라는 말은 의사에게는 "오늘은 더워요."라는 말과 같다. 하지만 환자에게 이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백혈구는 우리 몸에 군대와 같습니다. 백혈구가 증가했다는 말은 어딘가 적군이 침입해서 군인 수가 증가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어딘가 염증이 생겼다는 뜻이죠. 반대로 백혈구 수가 급격히 감소하면 군대가 없으니까, 적의 공격에 취약하거나 적의 공격으로 우리 몸의 군대가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자는 말입니다."

 진단과 치료는 물론 가장 간단한 질환이나 검사에 대한 설명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그래도 오늘은 의사인 나와 환자 모두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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