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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Jun 11. 2024

"여보,
나 작은 일에 소심한 거 알지?"

의사의 병원 여행기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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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sssfriend/838 


목요일 오후 입원에서 금요일 수술받고, 일요일이나 월요일 퇴원 예정이었다. 짧으면 3박 4일, 길면 4박 5일이었다. 병원에 병가를 썼다. 병원 아니 회사에서는 병가는 유급이 아니었기에 연차를 쓰라고 했다. 원래는 무급이 원칙이다. 마음이 조금 상했다. 

 문제는 상한 마음이 아니었다. 몸이었다. 계속 오른쪽 눈이 아팠지만, 진통제를 먹으며 환자를 봤다. 그것도 목요일 오후, 금요일 오전과 금요일 오후, 토요일 오전까지 잡혀 있던 외래를 모두 당겨서 보고 가야 했다. 입원하는 주에 평소보다 2배로 일을 했다. 입원하는 오전까지도 환자를 보고, 또 봤다. 입원하기 전에 일을 하다 탈이 날 지경이었다. 아니 일은 몰아서 다 하고 가는데, 연차까지 써야 한다니. 억울했다. 


아내와 나는 종종 아침에 각자 회사로 가면서 통화를 한다. 입원 당일, 전화 통화를 하던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보, 내가 작은 일에 소심한 거 알지?


 코 안, 즉 부비강 수술은 비교적 안전하고 쉬운 수술에 속한다. 다만 혹 위로는 뇌가 있고, 옆으로는 눈이 있다. 수술하다 뇌와 경계를 이루는 뼈를 부수면 뇌척수액이 흘러나올 수도 있고, 눈과 경계를 이루는 뼈를 부수면 눈의 움직임이 이상해질 수도 있다. 거기다 점액낭종(mucocele)은 악성 암이 아니라, 양성 혹이지만 100%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악성 종양일 수도 있었다. 

 수술 부작용과 암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나도 의사인 아내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둘 다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내가 괜히 불안해할까 봐,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꾹 참고 있었다. 

 혹시나 아내가 걱정하면, 나는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아내를 달랠 생각이었다. 그게 남자니까. 


 "알지, 여보. 자기 소심한 거."

 "있잖아, 자기야. 내가 어제 본 그 등 아픈 환자가 뭘까 계속 생각하고 있어......."



 

 여보, 나 삐졌어.
소심하다면서, 자기는 오늘 수술받는 자기 남편은 걱정 안 하고,
자기 환자를 걱정하고.
나 말 안 해.
 

누가 의사 아니랄까 봐. 병원도 아내도 실망이다. 




 오전 외래를 간신히 마치고, 입원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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