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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May 26. 2024

"그래서 오전에 가야 해!"

의사의 병원 여행기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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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진료 시간은 목요일 오후 4시 30분이었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내가 근무한 병원만 해도, 1345병상의 부산대학교 병원, 824병상의 강남세브란스, 그 외에도 용인세브란스, 의정부 백병원, 파주의료원 등이었다. 거기다 학회 및 진료 등으로 신촌세브란스, 아산병원, 서울 성모병원, 삼성의료원, 서울대학교 병원 등 빅 5 또한 모두 가봤다. 병원에서 날만 해도 족히 백일은 된다. 하지만 ㄷ 병원은 처음이었다.

 '이비인후과 외래는 어디지?'

 600 병상으로 비교적 작은 ㄷ 병원이었지만, 처음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천장에 붙어 있는 표지판에는 작은 글씨로 수십 개의 과가 빼곡히 적혀 있어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2층에 있는 이비인후과 외래를 찾아 도착했다. 접수는 사람이 아니라, 키오스크로 해야 했다. 예약당시 받은 환자등록번호로 입력하자, 번호표가 나왔다.

 원래는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려야 했으나, 병원을 비교적 잘 아는 나는 데스크에 바로 물었다.

 "CD 등록 어디서 해요?"

 MRI를 복사한 CD를 먼저 다른 병원 컴퓨터에 등록해야, 나를 진료할 의사가 진료를 하는 동시에 내 MRI를 볼 수 있다.

 "예. 1층 의무기록팀 앞에 있는 CD 등록기에 미리 등록하세요."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서 CD 등록기를 찾아 또 방황했다. 거기다 복도마저 H자 구조로 어디가 어딘지 헷갈렸다. 겨우 안내데스크에 물어 CD 등록기를 발견하고는 내 이름과 환자 등록번호를 입력하고 CD를 등록했다.

이건 젊은 사람들이나 하지, 어른들이 오면 도저히 못하겠는데.

 MRI라 그런지 5분 정도 걸렸다.

 의사를 보기도 전에 이미 키오스크만 두 번째였다.  

  '이비인후과 외래가 어디더라?'

  나는 왔던 길을 한 번에 돌아가지 못했다. 다시 헤맨 끝에 도착하니 4시 20분이었다. 30분 일찍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는 비교적 적었다. 전공의들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내 앞에는 3명이 더 있었다. 4시 30분에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어요?"

 "일주일 전 좌측 눈 통증으로 안과에서는 이상 없었고, 신경과에서 촬영한 MRI상 좌측 ethmoidal sinus(사골동)에 2cm 크기의 mucocele(점액낭종) 있어서 왔습니다. CD는 미리 등록했습니다. 아, 선생님,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나이가 꽤 있는 남자 교수님은 인터넷의 사진보다 흰머리가 많았고, 조금 지쳐 보였다. 얼굴보다, 컴퓨터를 보는 시간이 많았다.

 "크기가 꽤 크네요. 수술해야겠네요."

 "네, 수술하러 왔습니다."

 "MRI가 컷이 커서, CT를 찍을게요. CT 찍고 다시 오세요."

 (사진 당 간격이 넓어서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교수님과 의사이자 환자인 나와의 대화 사이에 위로나 걱정 따위는 전혀 없었다. 지극히 의학적이고 간결했다.  

 나는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외래 직원이 따라 나와 안내를 해줬다.

 "이 종이 들고, 아까 접수한 키오스크에서 CT 비용 결제하시고, 혹시나 안 되면, 돌아 나가면 있는 키오스크에서 결제하고, 1층에 있는 영상의학과 CT실에 종이 보여주고 CT 찍고 다시 오세요."


 A4 용지 종이에는 오른쪽 위에 바코드와 함께 검사 비용이 적혀 있었다. 앞서 외래 번호표를 받았던 키오스크에 바코드를 찍었으나, 안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외래를 돌아나가자마자 있는 키오스크에 바코드를 찍고 카드 결제를 했다. 벌써 키오스크만 네 번째였다. 이제 영상의학과를 찾아가야 했다.   


 CT실은 1층이었고, 또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영상의학과를 찾아 헤매었다. 영상의학과를 찾는 것은 쉬웠다. 1층 전체의 1/4이 영상의학과였기 때문이다. 영상의학과 안에는 여러 개의 엑스레이실, CT실, MRI실, 초음파실, 혈관조영실까지 있어 또 그 안에서 잠시 헤매야 했다. 또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외래 마칠 시간이 다 되어서 그런지 대기는 없었고 즉시 CT를 촬영할 수 있었다. 다시 2층 이비인후과 외래로 가서 기다렸다. 환자 2명이 들어갔다 나오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 보면, 혹이 점액 배출을 막아서 frontal sinus(전두동)까지 점액이 찬 것으로 보이고, 안 와도 붙어 있는 것 같네요. 일단 mucocele(점액종) 조심히 제거하고, 전두동에 있는 점액이 저절로 빠지면 좋고, 안 빠지면 frontal sinus(전두동)까지 들어가야 할 것 같네요. 안와와 붙어 있어서 알겠지만, 안와벽이 얇고 약해서 잘못하면 안와벽이 부서질 수 있으니 꼼꼼하게 수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언제가 괜찮아요?"

"최대한 빨리 해주십시오."

"5월 10일로 하죠."

"네,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은 수술 전 검사 하고 가시죠. 나머지는 간호사가 설명해 줄 겁니다."

"교수님, 눈이 아파서 그러는데, 약도 같이 주십시오."

"뭐, 굳이 안 먹어도 될 것 같은데, 2주 치 드릴게요."

이번에도 종이가 나왔다.

 "자, 먼저 수납하시고, 지금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2층 심장기능 검사실에서 심전도부터 찍으세요. 심전도 실은 5시까지 거든요. 그리고 2층 채혈실에서 혈액검사하고, 소변검사 하고, 1층 영상의학과에서 엑스레이 찍고, 1층 32번에서 입원 수속하시면 됩니다."

 

 4시 50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심전도, 혈액 및 소변 검사, 가슴 엑스레이 촬영을 5시 30분 안에 마쳐야 했다. 마음이 급했다. 다섯 번째로 키오스크에서 결제를 하고(오늘 벌써 결제만 두 번했다), 심전도 실을 찾아 또 헤맸다. 번호표를 뽑았는데, 다행히 끝날 때가 다 되었는지 환자가 없어 바로 찍었다. 휴우. 심전도를 찍는 것은 수백 번도 했지만, 내가 찍은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직원이 시키기도 전에 알아서 소매와 바지단을 걷고, 옷을 벗었다.  

 오케이. 이번에는 같은 2층에 있는 채혈실. 마찬가지로 번호표를 뽑고, 즉시 채혈실로 들어갔다. 피를 뽑고, 소변을 받아서 제출하고, 이번에는 1층 영상의학과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CT가 아니라, x-ray였다. 다시 번호표를 뽑고, 5번 방에서 엑스레이를 촬영했다. 그리고 1층 32번 창구를 찾아야 했다. 이번에도 물어물어 찾았다. 또다시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5월 9일 오후 3시 30분까지 오라고 설명을 들었다.

 입원 예약까지 마치자, 5시 20분이었다. 4시에 도착했으니, 한 시간 20분 만에 진료 및 각종 검사, 그리고 입원 예약까지 끝났다.


운이 좋았다.

일단 대학병원 치고는 비교적 작은 규모인 데다, 전공의 사직 등으로 환자가 적었고, 마칠 시간에 다 되어서 온 데다, 그나마 병원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데다 발에 땀이 나도록 뛰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입원 전 검사로 병원을 다시 한번 더 와야 했다.


 힘들었다. 키오스크만 외래 접수 시 한 번, MRI 등록 시 한 번, CT 비용 결제 한 번, 입원 전 검사 결제로 한 번, 주자 결제, 총 5번을 사용했다. 번호표는 CT 촬영할 때 한 장, 심전도실 한 장, 채혈실 한 장, 영상의학과 한 장, 입원예약에 한 장, 총 5장을 뽑았다.

 

1. 2층 외래 접수(키오스크 이용) 

2. 1층 CD 등록(키오스크 이용)

3. 2층 진료

4. 2층 수납(키오스크)

5. 1층 CT 촬영(번호표)

6. 2층 진료

7. 2층 수납 및 처방전 발급 (키오스크)

8. 2층 심장기능검사실-심전도(번호표)

9. 2층 채혈실, 혈액 및 소변 검사(번호표)

10. 1층 영상의학과 x-ray 촬영(번호표)  

11. 1층 32번 창구, 입원 예약(번호표)

12. 주차 결제(키오스크)

 

<한 시간 반 만에 들러야 했던 곳>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도 할머니가 아파서 보호자로 대학병원에 같이 간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학병원은 항상 오전에 젊은 보호자와 같이 가는 거라고 했다.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병원에 오면,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서 병원 길 안내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리 젊은 보호자가 따라온다고 해도, 길을 헤매고, 방황하고, 당황스러울 것이다. 가뜩이나 몸까지 아픈데, 머리까지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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