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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Dec 03. 2019

반복되는 실수, 고쳐지지 않는 문제

그리고 모두가 피해자

 한 환자가 2016년 병원에서 발목 염좌로 진통 소염제의 일종인 '디클로페낙' 주사를 맞고, 약에 대한 과민 반응인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사망하였습니다. 먼저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1666

 

 환자는 예전부터 '디클로페낙'에 대한 과민 반응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고, 이에 쪽지를 들고 다녔다고 하였고, 병원에서는 들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법정에서 서로의 주장이 엇갈렸습니다.


 보호자: 환자가 '디클로페낙'에 대한 부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병원: 환자가 복용하던 약과 과거력에 대해 질문했으나 환자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디클로페낙 부작용을 환자가 알렸는지 안 알렸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는 못하고, 병원 측에 책임이 85%, 즉 2억 3432만원 배상하는 것으로 판결이 났습니다.


 디클로페낙은 의사라면 모두 알고 있는 주사제입니다. 10년 전에, 공중 보건의를 할 때였습니다. 물놀이를 하다가 귀에 물이 들어갔는데, 조금 불편했습니다. 몇 분 있으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안가 귀에 누군가 드릴을 박는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가 제 엉덩이에 직접 주사를 놓았습니다. 정말 5분도 안 되어서, 씻은 듯이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왜 의료진들 사이에서 일명 '디클로-뽕'이라는 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그 주사제의 신봉자가 되었습니다. 보건지소에서 무릎이 아프거나, 감기 몸살로 오는 환자들에게 디클로페낙을 주었습니다. 한 달에 거의 100회 이상 처방하였습니다.

 디클로페낙은 진통, 소염, 해열제입니다. 통증을 줄이고, 염증을 줄이며, 열을 떨어뜨립니다. 사람들은 두통약, 허리 통증약, 무릎 통증약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진통제는 위치를 가리지 않습니다. 머리 아플 때도, 허리 아플 때도, 무릎이 아플 때도 다 효과가 있습니다. 디클로페낙은 진통 효과도 효과이지만, 특히 열이 나는 소아에게서 많이 처방합니다. 열나면서 동시에 토하여 해열제를 먹일 수 없는 소아에게 디클로페낙만 한 주사가 없습니다. 해열제 주사 대부분이 소아에게서 금기라서 소아에서 사실 쓸 수 있는 유일한 주사제가 디클로페낙입니다. 응급실에서 해열제라고 소아에게 놓는 주사가 대부분 이 디클로페낙입니다.

 

 그렇게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주사제이지만, 개인적으로는 4년 전에 정형외과 병원에서 일할 때, 디클로페낙을 맞은 할머니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이후 성인에게서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심한 감기 몸살로 온 여학생에게 디클로페낙을 놓았다가 병원 엘리베이터 앞에서 쓰러진 후, 그다음부터는 아예 안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전까지 제가 처방한 경우 및 처방을 목격한 경우를 포함하면 거의 수 백에서 천명까지 될 겁니다.  


 저는 신환이 오면, 일단

 "어떻게 오셨습니까?"

 로 대화를 시작하고, 중간에

 "저희 병원 처음이라 그런데, 평소에 앓고 있는 질환, 먹고 있는 약, 수술하거나 입원한 적, 약에 대한 부작용 있나요?"

 라고 꼭 묻습니다. 예방접종을 하던, 몸이 아프던, 기존에 다른 병원에서 타 먹고 있는 약을 그대로 처방받으러 오셨던지 간에요. 그리고 약에 대한 부작용이 있으면, 특이 증상란에 OO 알레르기 하고 빨간색으로 표시를 해둡니다. 저에게도 일어날지 모르는 위 신문 기사 같은 사건을 예방하려고 말입니다.


 하루는 25세 남자 박홍석 환자가 진료실을 나갔다가 얼마 안 되어서 다시 헐레벌떡 처방전을 들고 진료실로 들어왔습니다.

 "선생님, 이 약 세파클러 아닌가요?"

 세파클러는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항생제의 성분명입니다. 그 성분을 가지고 만든 약 이름이 무려 183개입니다.( 왜 이렇게 같은 성분으로 만든 약이 많은 지는 이전 글 https://brunch.co.kr/@sssfriend/100을 참조해주십시오.)

 박홍석 환자는 발에 작은 염증이 있어서 왔습니다. 당연히 약은 항생제, 진통제였습니다. 제가 처방한 항생제는 OO세프로, 세파클러 성분이었습니다. 물론 OO세프가 세파클러 성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 네."

 "선생님, 제가 세파클러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아....."

 맞습니다. 환자가 세파클러에 대한 부작용이 있다고 몇 분 전에 분명히 말했습니다.  기억이 납니다. 차트에도 특이 사항란에

<박홍석 씨 차트>

 라고 분명히 제가 적어 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하다니,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환자가 밀려 있어서 제가 일에 쫓기거나 그런 상태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저는 정중하게 제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박홍석 씨가 유심히 처방전을 살피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할 일이 벌어졌을 수 있습니다.   

 항상 주의를 한다고 해왔는데. 심지어 약 알레르기까지 확인하고, 저렇게 빨간색으로 강조까지 해 놨는데 실수를 한 것이죠. 벌써 4년 전 일인데,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꼽씹어 봐도 제가 왜 저런 실수를 했는지 여전히 의문입니다.


 의사가 더 꼼꼼하면 같은 실수를 줄 일 수 있을까요?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의사나 병원에게 아무리 배상 책임을 더 올려서 의사가 아무리 경각심을 가져도 같은 실수는 되풀이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런 실수를 막을 수 있었을까요?


 병원에 처음 온 환자라도 [특례], [중증] 등의 환자 정보가 자동적으로 뜹니다. 뿐만 아닙니다. 약을 처방하면 보면,

<A약을 3일 전 7일 치 처방하였습니다. 중복 처방하시겠습니까?>

라고 뜹니다. 국가는 이미 그 환자에 대한 정보, 어떤 질환을 앓고 있고 어떤 약을 먹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보가 가장 필요한 의사는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딸 내 집 전화번호도 잘 외우지 못하는 80대 할머니에게 자기가 먹는 약인 일양클로피도그렐정 75mg, 한국콜마올메사탄정 20mg, 로수젯 10/5m을 외우게 할 수도 없습니다.  


 특정 약물에 의한 부작용이 생겼을 때, 의사가 환자 정보란에 약에 대한 부작용을 입력하여, 다른 병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도록하고 필요하고, 아예 그 환자에게 그  약을 처방할 수 없도록 차단시키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누군가(국가)는 하지 않습니다.


 법원은 병원이 환자의 알레르기를 걸러주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은 병원이 85%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의료 정보를 통제하면서 사람의 실수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은 국가는 책임이 없을까요? 사회와 국가는 실수한 개인에게 막중한 책임을 씌운 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문제를 덮습니다. 한 사람이 죽었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만, 결국 환자, 보호자, 그리고 의사만 법정에서 기나긴 다툼 끝에 지쳐갈 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말입니다. 그건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수를 시스템으로 막아야 하는데, 사람으로 막으려고 하면 실수가 반복됩니다.


<도미노 이론>

 박홍석 씨는 다시 저희 병원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박홍석 씨는 저의 실수로 인해, 저에 대한 신뢰뿐만 아니라,  의사 전체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저는 실수를 반성하고 더욱 더 주의를 기울이지만, 똑같은 실수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뒷이야기:

 아, 참.  메르스와 지카 바이러스가 유행했을 때는 환자를 열심히 진료하고 나서 처방 창을 딱 누르니,

<메르스(지카) 감염증 발생국가를 방문한 이력이 있습니다. 진료 시 참고하시며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 유사 증상이 있을 경우 환자 본인과 관할 보건소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뒷북을 칩니다. 이미 접수 직원, 안내 직원, 대기실에 앉아 있던 다른 환자를 포함하여 저까지 10명이 넘는 사람들과 접촉을 한 이후에 말입니다. 접수를 할 때 바로 경고 창이 떠야 하는데, 이미 노출이 다 되고 나서야 경고 창이 뜹니다. 메르스에 그 난리를 치고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참, 대단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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