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 수천 번, 수만 번 마주하는 질문이었다. 한국의 사망원인 1위인 암과 2위인 심혈관계 질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담배나 비만, 운동부족이 아니라 나이, 즉 노화이다.
<가장 절대적인 요인, 나이 그러니까 노화> 몸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낸다. 뼈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매년 전체 뼈의 1/5이 새로 교체된다. 뼈는 5년마다 완전히 새로 태어난다. 세포 복제(세포 분열)를 통해서이다. 나이가 들면서 세포 분열 횟수가 늘다 보면, 제대로 복제되지 않은 돌연변이가 등장할 확률이 높아지고, 거기다 오류를 고치는 능력 또한 떨어져 암이 발생한다.
<사망원인 1위 암, 2위 심혈관 질환> 오래된 파이프는 녹이 슬어 터지거나, 안쪽으로 슬러지(찌꺼기)가 쌓여 막힐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 몸의 혈관 또한 오래될수록 터지거나(뇌출혈) 막힐 확률(뇌경색, 심근경색)이 높아진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한다고 하여 몸 관리를 잘한다고 한들, 확률을 낮출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에게 질문을 한 사람은 7살 서연이었기 때문이다. 몸이 약간 통통하며, 머리를 양갈래로 닿은 귀여운 서연이는 평소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힘들었다. 뛰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폐동맥 고혈압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폐동맥 고혈압은 심장에서 폐로 가는 혈관인 폐동맥이 좁아져서, 폐로 피를 보내야 하는 심장의 부담이 증가하는 질환이다. 심장에 무리가 가서 숨이 차고, 피로하고, 몸에 힘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5,000명 정도밖에 없는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원인이 뚜렷하지 않다.
<폐동맥이 좁아져, 우심실이 커지는 질환>
꿈과 희망을 안고, 의대에 진학한 나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을 좌절시킨 두 단어가 있었다.
Congenital(선천적) and Idiopathic(특발성)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Congenital(선천적)이라고 하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을 Idiopathic(특발성)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는 원인을 바꿀 수가 없어 치료는 물론이고 예방도 어려웠다. 서연이의 폐동맥 고혈압은 선천적이며 동시에 특발성이었다.
전형적인 심부전의 증상을 겪고 있는 서연이는 이미 대학병원에서 주기적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워낙 특수분야였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대신 나는 서연이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했다.
"세상에는 머리가 많은 사람도 있고, 선생님처럼 머리가 없는 사람도 있어. 키가 큰 친구도 있고, 작은 친구도 있지. 서연이가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엄마 아빠가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냐. 그냥 그래."
서연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만족할만한 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친구들은 다 잘 뛰어노는데 나는 뛰어놀 수 없는 게 억울할 것이다. 또한 나를 낳아준 부모가 때로는 원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나쁜 일이 생기면,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혹시나 원인을 알면, 결과를 바꿀 확률이 높아지고, 적어도 같은 일을 두 번 겪는 것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인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설령 이유를 찾아냈다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땐 그저 살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