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아프지도 않은 아이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진료실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얼굴뿐 아니라 몸 자체에 짜증이 가득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준원이는 문제가 많았다. 140cm에 몸무게는 59kg로 고도 비만이었고, 손톱을 뜯어 손톱깎기를 쓸 일이 없었다. 피부는 검었고, 목에는 비만 특유의 흑색극세포종으로 검은 줄무늬까지 있었다. 몸에서는 땀 냄새에 옷도 꾀죄죄했다. 거기다 과식과 편식에 더해 야식으로 몸도 몸이지만, 생활마저 무너져 있었다.
대부분 병원에는 엄마, 또는 아빠와 온다. 하지만 준원이를 데리고 온 건 할머니였다. 부모를 대신해 할머니와 함께 올 수는 있다. 하지만 할머니는 조그마한 체구에 몸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얼굴마저 어두웠다. 아이와 할머니의 표정, 옷차림에 준원이의 불우한 가정환경이 그려졌다.
손자가 안타까운 할머니는 옆에서 끊임없이 준원이에게 잔소리를 퍼부었고, 잔소리가 듣기 싫은 준원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를 온몸에 세운 채 귀를 닫고 있었다.
아이마다 느낌이 있다. 마냥 해맑게 웃는 판다 같은 아이,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아이, 눈치 빠른 여우 같은 아이도 있다. 가끔 이를 들어내며 으르렁 거리며 적대감을 드러내는 늑대 같은 아이도 있지만, 제일 안타까운 아이는 고슴도치 같은 아이다. 세상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날카로운 가시를 세워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준원이에게 편식, 야식, 간식, 폭식과 같은 나쁜 습관을 하지 말라고 나에게 당부했지만, 나는 나쁜 습관보다 좋은 습관을 더 좋아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쁜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라, 좋은 토끼를 떠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준원아, 먹는 거 말고 좋아하는 게 뭐야?”
“축구요.”
“오, 누구 좋아해, 손흥민?”
(아이들이 좋아하는 축구 선수는 손흥민 아니면 이강인이다)
“네, 손흥민 좋아해요.”
“그래, 준원아. 좋은 걸 좋아하고, 좋아하는 걸 잘하면 돼. 그러면 주위에서 막 대단해, 칭찬해 주고, 그러면 신이 나서 더 열심히 해서 잘하게 되지. 그게 굳이 공부가 아니더라도 돼. 축구도 좋아. 대신 나쁜 게 아니라 좋은 걸로. 그래야 나중에 준원이가 1년 후, 5년 후, 10년 후에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 알겠지? 좋은 걸 좋아하고, 좋아하는 걸 잘하자. 파이팅!”
할머니는 눈물을 훌쩍였고, 준원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꼰대다. 사람이 말만으로 바뀌지 않는 것을 잘 안다. 실제로 금연을 시도한 사람 100명 중에 의지로 성공하는 사람은 겨우 4명에 불과하다. 의사가 권고하면 8명이 성공한다. 4명이 더 성공하는 것이다. 4%. 25명 중에 한 명, 그것이 내가 사람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