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 44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 Jun 15. 2020

14 김치찌개 장사할까?

식구는 밥상에서 같이 앉아 있는 것이라고,

매번 귀찮게 하는 도어록을 누르며 짜증을 삭힌다.

도어록 건전지도 갈았는데 왜 매번 2번 3번씩 누르게 하는지.
사회초년생은 3년째 회사가 힘들다.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서 가방부터 내려놓으면 메시지가 온다.

[김치찌개 있어..]

이젠 엄마 김치찌개를 먹으려고 퇴근을 하나보다.
김치찌개 하나로 대동 단결되는 엄마와 내 마음을 이젠 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엄마 말에 대답을 하던 내가 먼저 대화거리를 꺼낸다.
"엄마, 찌개 진짜 맛있네-"
엄마는 또 기가 막히게 대답을 한다
“김치찌개 장사할까?”

그러면, 아빠는 이내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식구는 밥을 같이 먹는다는 의미라고, 밥상에서 같이 앉아 있는 것이 식구라고.

이 이야기는 오늘로써 50번도 더 된 것 같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아빠를 보고 엄마는
당신도 늙었다며 아빠가 싫어하던 할아버지의 버릇을 닮았단다.


아빠는 시골에서 할아버지에게 혼날 때면 논으로 줄행랑을 쳤다.

도망 가있다가 고모가 아빠에게 집으로 와도 된다는 전보를 알려주면 그때서야 집으로 돌아와 도망가느라 못 먹었던 저녁을 먹었다.

밥을 절반쯤 먹고 나면 할아버지가 들어오셔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를 시작으로 아빠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이야기를 하셨다고 했다.

그러면 아빠는 할아버지의 늘 같은 이야기에

할아버지가 안 먹고 아빠 밥그릇에 넣어둔 삶은 달걀을 먹는데만 집중했다.



어느 날은 도어록의 짜증이 가시기도 전에 전에 했던 아빠의 이야기에
“알았다고. 나 피곤해”

공허하게 거실에 울리는 내 목소리가 이내 아빠의 마음에 꽂힌다.

집 거실이 그리 넓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늦게 돌아오는지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나서야 내가 소리친 메아리가 돌아온다.

아빠는 직업 특성상 강단에 매주 서신다.
한 번은 아빠는 강단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6살 아들이 퍼붓는 질문세례에 아빠는 끊임없이 같은 대답을 해준다
아빠 공룡은 왜 발톱이 커?
-응~ 공룡은 몸집이 크잖아. 그러니까 발톱도 같이 커졌지~
공룡발톱은 다 같은 색깔이야?
-응~ 이 공룡은 무슨 색이지? 저 공룡은 무슨 색이지~?
왜 공룡은 말을 못 해?
-응~ 우리 아들이 나중에 똑똑한 사람이 되겠네~? 맞아 공룡은 말을 못 하지~?

시간이 지나 아버지와 아들은 입장이 바뀐다.

60살이 넘은 아버지의 같은 이야기에 아들은 그만 좀 하라며.


줄곧 싫증을 냈다.’


왜 이런 이야기도 이제야 다시금 생각이 나는지.



문을 열기도 전부터 계단에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

김치냄새와 진한 국물으로 가늠되는 우리집 단골 메뉴 김치찌개다.

바쁜 엄마의 일상에 익숙한 손길과 정성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안다.

같은 음식, 같은 이야기.
늘 먹어도, 들어도 좋다.

나는 엄마에게  잘 지나갔던 일이지만 회사 이야기도 꺼낸다.

“엄마, 오늘 그 사람이 나한테 이런 말을 하더라. 진짜 어이없지.”

“헐 ~ 꼰대네 꼰대~”


이번에는 엄마가 식구의 의미를 말한다.
“할머니가 그랬어, 식구는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게 가족이라고.”

그리곤 엄마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에게는 늘 여보세요 는 생략이다.

“밥 먹었어 엄마?"



이리저리 방을 돌아다니며 할머니와 전화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작게 들린다.

해외에는 식구라는 단어가 있을까,

그냥,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더 진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식구들이 앉은 자리에선 밥상을 함께 한다는 무슨 일이길래 자꾸만 마음 속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걱정은 끼치기 싫어 농담이 섞인 가벼운 이야기를 내뱉는다.




오늘은 웬일인지 한번 만에 성공한 도어록을 지나 안방 문부터 열었다.
"아빠 밥 먹었어?"
"아니, 너 오면 먹으려고 기다렸지. 엄마 이제 온대"


우리 세 식구는 다시 식탁에 앉았다.
오늘은 삼겹살.

식탁을 가로질러 아빠는 상추를 건네며  "도어록 이제 잘 되지?"
아빠가 고쳐놓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빠를 보며 '엄마 삼겹살 장사해도 되겠다 그렇지 아빠-'
엄마는 이제 안 속는다며 웃는다. 아빠랑 내가 단합하고 엄마를 이용한다면서-



나는 몇 년의 자취와 함께 대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돌아와

엄마 아빠와 대화한 지가 언젠지 기억이 안 날 때쯤

엄마에게 음식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아빠에게 엄마 음식이 맛있다는 이야기에 눈짓을 보냈다.
아빠는 그쯤 식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고

우리 집은 거실 식탁에서 가장 시끌벅적해졌다.


남들 이야기만 같았던 아빠 손에 주름이 보이고

엄마의 피곤한 어깨를 보고 안아줄 용기가 없는 것을 알았을 때쯤

언젠간 반드시 이런 날이 왔으면 했다.


우리 집 식탁에 올려진 미역국은 어색한 무반주 생일 축하노래를 부르게 하고

엄마의 단골 메뉴 김치찌개는 늘 식구의 의미를 듣게 한다.


엄마의 김치찌개 안에는 사고뭉치 아빠의 이야기와 동네에 소문난 고집불통 엄마의 이야기가 있다.


사실 나는 김치찌개를 핑계로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이다.


조금 더 잘 키울 수 있었는데 자신이 부족했다는 죄책감을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아무에게도 말도 탓도 못하는 그 짐을 내려놓으라는 재촉을 한다.


그리고 언젠가 엄마에게 이 글을 보여주면서 낯부끄러운 말 대신

다시 김치찌개를 앞에 두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엄마, 김치찌개 진짜 맛있네. 장사해도 되겠어?"




매거진의 이전글 13 대화는 하나의 세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