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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기 44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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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 Jul 01. 2020

16 짐

버스에서 본 그녀는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버스에 탔다.

어머니를 부축해주느라 우산을 둘 곳이 없어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끼어있던 우산의 꼬투리는
여러 사람의 눈살을 찌푸렸다. 나도 마찬가지다.

버스에 자리가 나도 그녀는 어머니 앞을 떠나지 않고
여전히 우산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양 손잡이를 꾹 잡은 채 서있었다.

나는 버스에 타는 지친 얼굴들과 눈을 마주쳤다.
자신의 가방 하나를 들고 앞 좌석에 앉아 편하게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
가방 스트랩을 어깨에 툭 매고 벨을 누르고 일어나는 사람.
이제 막 버스를 타면서 축축이 적은 우산을 개며 앉는 사람.


.

.
계속된 장마 기간이었다.
그녀의 팔 사이에 껴있던 우산은 축축이 젖은 채로 다시 펼쳐졌다.


축축이 젖은 그녀의 우산과 팔 사이가 아닌 내리기 직전 그녀의 눈이 마주쳤지만

그녀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보지 못했다.




그녀에게 버스 손잡이를 잡기에 방해되는 짐은 없었다.

버스 의자 손잡이를 꽉 잡은 양 손에 어쩌지 못한 그녀의 우산 꼬투리는

그녀의 짐이 아닌 우리의 짐이었다.


때로는 언어로는 정리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른바 찰나와 순간들.


단순한 눈 맞춤을 넘는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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