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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 Nov 28. 2019

윤희에게 (滿月, 2019)

사랑하는 한국 영화

(영화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 요소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함께 들을 음악 : 김해원, 임주연 - 보고 싶은 날



윤희(김희애)는 인호(유재명)와 이혼하고 새봄(김소혜)을 혼자 키우고 있다. 그래도 어느새 새봄은 어느 정도 자신의 앞 가름 정도는 할 나이가 되었다. 고3 새봄이는 엄마의 친구로부터 온 편지를 몰래 읽고 숨기게 된다. 하지만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엄마를 캐묻지만 엄마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편 편지의 발신자 쥰은 눈이 많이 오는 오타루에 살고 있다. 그녀는 수의사로 한국인인 어머니를 따라 고등학교 시절 잠시 한국에 살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사실 쥰이 보낸 편지는 부치지 못한 편지였다. 하지만 쥰의 고모가 그 편지를 한국으로 보내게 된다. 어쩌면 쥰의 고모가 발신자인 셈이다. 그사이 편지를 받은 새봄의 계획에 엄마와 오타루로 여행을 떠난다. 편지의 행방에 대해 고모는 모르는척하지만 일은 벌어졌다.


영화 <윤희에게>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폐막작이다.

(만월(滿月)은 한중일에서 길한 징조를 뜻한다고 한다. 만월, 보름달이라고 하는 이 '달'은 '달이 태양빛을 완전히 받아 앞면의 모든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현상'으로 그림자가 선명해질 정도로 밝다고 한다.)


1. 사진기를 든다는 것 새봄은 '아름다운 것'만 찍는단다.

삼촌의 사진관에서 필름을 인쇄하면서 왜 인물사진이 없냐는 삼촌의 물음에 대한 답이다.

새봄은 늘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인물사진을 제외한 풍경, 혹은 사소한 사물들을 담는데 그 카메라는 사실 엄마 윤희의 것이다. 윤희가 대학을 가지 못한 값으로 받은 것이었는데 윤희는 더 이상 카메라를 손에 쥐지 않는다.

오타루로 떠난 윤희와 새봄. 자신을 찍어달라는 새봄의 말에 윤희는 어색하고 더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셔터 몇 번에 금세 카메라를 손에 감싸고 자세를 잡는다. 여행을 오기 전 새봄은 엄마의 등 뒤에 누워 생각지도 못한 고백을 내뱉었다. 엄마가 더 외로워 보여서 이혼을 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엄마를 선택한 거라고. 새봄은 사진기를 든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에 한 마디 거들어 본다.

'오- 엄마. 폼 좀 나는데?'


2. 담배 딱히 유명한 관광지를 가보지는 않지만 여행이라는 게 원래 새로움을 주기도 한다.

오타루로 간 엄마와 딸은 온통 흰 눈밭과 동화 같은 집들 속에 이리저리 구경 중이다. 엄마 몰래 담배를 피우던 딸은, 엄마에 대한 또 다른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엄마 담배 피워?"

새봄의 작전을 같이 꾸민 경수도 오타루에 함께 왔다. 늘 유일하게 숨기지 않고 담배를 필 수 있었던 경수 앞에서 새봄은 경수의 '나도 펴볼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너가 좋아하니까 나도 피려고 한다는 새봄의 남자친구 경수(성유빈)의 말은 한마디로 '너가 좋으면 나도 좋다'는 것이다.


영화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사랑하는 것을 함께 하려고 한다. 이 사람과 같아지려는 용기가 준비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 또 담배를 피우는 한 사람이 있다. 쥰은 고등학교 때 담배를 배웠다고 한다. 아마도 쥰도 윤희와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다.

3. 내리는 눈과  (눈이 많이 오는 곳과 안 오는 ) 오타루는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다.

쥰의 고모는 눈이 도대체 언제 그치나 하는 말이 말버릇이다. 하지만 왜 겨울인데도 눈이 안 오냐는 새봄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오타루와 한국은 참 많이 다른 곳이다. 쥰과 윤희는 서로의 많은 부분이 다름을 알고 있었다. 다름을 알고도 용기를 냈던 둘의 이야기는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우리는 '가끔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잖아'라는 쥰의 말에서. 그리고 만월에 만난 둘의 인사에서 그들이 얼마나 용기를 냈었고 또 그 용기를 얼마나 감추며 살았는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름에도 같고자 하는 건 사랑이다.


그리고 함께 우는 눈물 이 영화는 유독 '함께' 운다.

쥰의 고모는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쥰에게 먼저 자신의 품을 내어준다. 윤희는 인호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주고, 참을 수 없었던 그리움들을 억누르고 살았던 그들은 밝은 달 밑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함께 느껴준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로를 받고, 서로의 마음이 같아지는 순간만으로도 우리는 안도를 느낀다.

 <윤희에게>는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을 말해주는 영화이다. 며칠 전 서점에 갔을 때 베스트셀러의 대부분은 '괜찮아.' 혹은 '그 정도면 됐어'라는 위로의 메시지인 것을 보고 마음 한켠이 먹먹해졌다. 우리는 이 한마디를 얼마나 못 듣고 살았기에 책의 글자 속에서 안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정말로 한 마디의 위로가 필요한 시간에 살고 있다.


1. 사진기를 든다는 것 나중에야 말하는 윤희의 고백 속에는 그녀가 기억하기 힘든 기억과 상처가 있었다.

가족의 압박과 시선, 판단을 기억하기가 버거웠던 윤희는 도망쳤다. 자신의 기억에서부터, 그리고 자신의 세계로부터. 사진기를 들고, 아름다운 것을 찍어, 인화하여 보관한다는 것은 사실 기억할 용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시간을 기억하고 추억할 용기는 상처의 아묾에서 비롯된다.

오타루에 온 윤희는 이제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누군가는 퀴어영화라고 누군가는 지루한 영화라고 너무나 쉬운 정의를 내려버리지만 이 영화는 우리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가령, 휴가를 낸다고 하자 그 자리를 장담하지 못한다는 영양사의 이야기를 듣는 윤희. 그리고 윤희의 고등학생 시절 느낀 사랑이라는 것에 '미쳤구나'라며 정신병원에 보내버린 가족들의 편견과 판단. 그로 인해 평생을 강압과 판단 속에 갇혀 살던 윤희. 윤희는 사실 누구나를 대변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 무시를 받는 누군가, 그리고 본인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며 질타를 받는 누군가, 그리고 평생을 편견과 선입견 속에 갇혀 사는 누군가.

남편에게서 '사람을 외롭게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들을 정도의 윤희는 얼마나 마음의 벽을 치고 살았던 것일까, 겨우 한 걸음 해방된 윤희의 인생이. 우리의 앞날이 따뜻하기를.


올해 한국영화의 새로운 바람이었던  <벌새>, <메기>에 이어 <윤희에게>가 겨울을 맡아 그 흐름을 이어갔으면,

p.s. *바로 오늘, 11월 28일 오늘부터 서울독립영화제가 열립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윤희에게> 포토 스틸컷

                  KMDB <윤희에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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