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인물이 된 두 번째 직장,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재밌으세요?

by 글을쓰주

첫 직장을 그만두고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나는 두 번째 직장을 금방 구했다. 3개월 만에 구했는데 사실 합격하게 될 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내가 지원했던 직무는 특수한 업무를 하는 사무직 업종이었는데 이미 경력직도 있었기에 괜히 면접을 보러 왔나 싶었다. 그리고 다른 병원 입사 면접에서 이미 두어 번 떨어진 터라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면접을 보고 이틀 뒤 운명처럼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았고 이번에는 정말 잘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내 생각보다 병원에 오래 있지 않았기에 ‘실패자’라는 낙인을 스스로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 부담감을 주면서 출근한 두 번째 직장은 정말 좋은 곳이었다. 업무 강도가 병동보다는 낮아서 그런지 선생님들이 다들 여유가 있었다. 이 정도라면 버텨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점심 산책 시간이었는데, 처음에는 이런 세상도 있구나 싶었다. 이전 직장에서는 산책은커녕 밥 생각은 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사무직이라 일도 금방 배웠고 의외로 적성에 맞는 듯했다. 최대한 오래 다녀보자는 다짐으로 열심히 근무했고 지금은 현재 9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9년 동안 한 병원에 근무하게 되면 다양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특히 새로 입사하는 후배들에게는 나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열의와 적극성이 보인다. 이제는 고인물이 되어버린 나는 신입의 그런 열정이 너무나도 부럽다. 처음 입사했을 때의 다짐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옅어졌고 매일 재미없는 하루를 견디고 있는 중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다시 열심히 해보기 위해 다양한 시도도 해보고 노력도 해봤지만 결론은 한 가지로 귀결되었다. ‘회사 안에서 전처럼 해보고 싶은 일은 없다.’라고 말이다. 나라는 인간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갑갑한 직장 안에서만 이렇게 돼버리는 걸까 궁금했던 나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 학원도 다시 가보고, 한참 어벤저스에 빠져 있을 때라 ost를 바이올린으로 켜보고 싶다는 생각에 배워보고, 어딜 가나 기타로 노래 반주를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생각에 기타 학원도 다녀봤다.
그런데... 다 너무 재미있었다! 숙제도 열심히 해오고 선생님께 다음에는 이런 곡을 해보고 싶다고 요청도 했다. 매일 유튜브를 보며 목표를 세웠으며 실력도 차츰 향상되어 갔다. 이렇게 되니 또 외면했던 현실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정말 회사가 재미가 없구나.’ 하고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직장이 싫은 건 아니다. 일은 매우 소중하다. 매일 하는 일 없이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면 내 삶이 얼마나 황폐해질까. 게다가 매달 통장에 꼬박꼬박 찍히는 월급이 제일 중요했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식/주를 채워줘야만 다음 꿈을 실현할 힘이 생기니까 말이다.
물가는 끝을 모르고 해마다 치솟고 있다. 그러나 내 월급은 물가 상승률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로 야금야금 올랐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내가 필요로 하는 생활비와 실제로 쓸 수 있는 액수의 차이가 벌어져갔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국민연금공단이 ‘23년 1월에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1인 적정 노후 자금은 한 달에 178만 원쯤 되었다. 그런데 내가 회사와 개인적으로 드는 보험은 은퇴 후 한 달에 100만 원 초반만 나올 금액이었다. 그렇다면 대략 70만 원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 기준에서는 집을 사기 위해 따로 대출도 갚아야 하고 게다가 한 달에 노후를 위해 70만 원의 저축도 따로 해야만 했다. 살다 보면 어떤 비상사태가 발생할지 모르니 최소한의 비상금으로 30만 원도 따로 모아야 하고 보험금은 매달 40만 원이 나간다. 대략적으로 한 달에 적어도 250만 원은 저축해야 나는 무리 없이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될지도 모를 미래를 위해 지금의 나는 한 달에 백만 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데... 사회생활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에게 그게 가능한 일일까?
회사는 재미없고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취미생활도 영위해야 하는데 월급은 턱없이 부족해질 것이고 그마저도 방법이 없기에 억지로 20년 이상은 더 다녀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업무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 자신이 가장 무서운 줄 알았더니 가장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근속 년수를 합치면 어느덧 근로자 생활 10년 차!
회사 수입만으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첫 직장을 그만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