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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기는 손이라네요

가끔은 맹신해도 괜찮아

by 글을쓰주 Jul 17. 2024

 2023년.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이별을 맛보고 모든 의욕이 사라진 여름이었다. 유치하고 부끄러운 얘기지만 사랑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전 남자친구에게 헌신하다 헌신짝이 되었던 터라 가장 힘든 헤어짐을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2주일 만에 살이 3kg나 빠져 있었고 잠 못 드는 밤이 길어져 눈 밑은 항상 퀭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언니가 이런 위로를 해 주었다.

“걔 인생에서 너 같은 애를 만난 게 기적이었는데. 지 발로 지 복을 차버린 거지. 난 네가 왜 걔를 만나주나 했다. 이제라도 잘 헤어졌어.”

 그 말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정신이 들었다. ‘그래! 잘난 내가 왜 걔 때문에 힘들어하지?’라는 생각에서였냐고? 아니. ‘나를 이렇게 소중히 대해주는 친구들이 많은데 정작 나만이 나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구나.’ 여서였다. 밤 10시가 되어야만 불이 밝혀지는 평소의 내 방과 달리 집에 붙어만 있느라 저녁 내내 불이 켜져 있는 건 나답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평소의 생활을 되찾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악기도 열심히 배우고, 클라이밍과 헬스장도 출근도장을 찍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살도 빼려고 마음을 먹었다. 어쨌든 헤어짐의 끝에서 이 전의 나보다 나은 점이 한 가지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살았다.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느라 한 달 월급을 모조리 다 써버렸던 때였다. 생각 외로 통장 잔고를 보니 정신이 빨리 돌아왔다. ‘예전처럼 다시 돈을 모아야지.’ 결심을 하니 이전부터 해왔던 생각이 다시 빼꼼 고개를 들었다.

‘겨우 한 달 논다고 이렇게 잔고가 빨리 사라지다니. 앞으로 일탈하고 싶을 때 무슨 돈으로 해야 할까?’

 그것도 쳇바퀴 굴러가듯 돌아가는 회사를 계속 다닌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정말 의도치 않게 나는 ‘K-직장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투잡의 길로 발걸음을 돌리기로 결심했다.
 독자 여러분들은 힘든 일이 있으면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가? 부모님, 친구, 애인, 종교 등 다양할 수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점’이었다. 물론 맹신하는 편은 아니다. 그저 좋은 소리는 자존감을 올리는 데 사용하고 나쁜 소리는 살면서 조심해야겠다는 재미로만 점을 보러 다녔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연락해 용하다는 점집을 수소문했다. 고향에 사는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추천해 준 사주를 보러 소중한 연차를 쓰고 바로 기차를 탔다. 역과는 제법 떨어져 있어 뚜벅이인 내가 찾아가는 데 매우 험난한 길이었지만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려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사장님의 안내를 받고 생년월일을 말씀드리니 우선 본인이 먼저 말을 다하고 궁금한 것은 질문해 주면 된다고 하셨다. 사장님의 말에 따르자면 나는 ‘이루는 것은 뭐든지 다 해내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와,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감탄도 잠시. 그저 현실적인 목표를 잘 세우기 때문에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하셨다. 대단히 김이 새 버리는 멘트였다.

“직장은 너무 안정적이고, 지금 본인이 다른 거에 자꾸 눈이 가는 것 같은데 맞나요?”

 허를 찌르는 말씀에 나는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사장님은 다시 알 수 없는 한자가 쓰인 책을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본인의 무기는 손이네요. 그래서 직업도 간호사잖아.”

손으로 하는 모든 것. 주사를 놓는 간호사(물론 간호사의 업무가 주사를 놓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로 진로를 정말 잘 찾아가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추천을 해주자면 나는 글을 써야 한다고 하셨다.

“손으로 창작하는 모든 활동도 좋지만 글을 쓰셔야 합니다. 글의 종류는 뭐든 상관없어요. 소설, 시, 심지어 작사도 할 수 있겠네요.”

“혹시 그럼 그림이나 악기는요?”

“아주 좋죠. 본인은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돈 버는 것엔 관심 없어요. 남한테 인정받는 걸 아주 큰 덕목으로 삼는 사람이네요. 본인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뭐든 도전해 보세요. 다 할 수 있습니다. 대신 손으로 하는 활동으로요.”

 그날 처음 보시는 분이지만 어떻게 나를 이렇게 정확히 알고 계신 건가 했다. 좋게 말하면 ‘끼를 뽐내는 사람’ 이요, 나쁘게 말하면 ‘관종’인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내 이름 세 글자는 남기고 가야 한다는 남다른 포부가 있었다.
 글, 악기, 그림. 평소에 내가 하던 것들하고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 사장님이 상담해 주신 내용을 소중히 품에 안고 위로 올라왔다. 맹신은 경계해야 하지만 어쨌든 밑져야 본전이지. 일단 한번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내 자아를 지배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손이 무기네요.’라고 적힌 종이를 매일 지나치는 냉장고 앞에다가 절대 떨어지지 않도록 붙여 놓았다. 그리고 어디에 뒀는지 까먹어서 한참 찾아야 했던 다이어리를 펼치고 현재 내가 가장 잘하는 것과 연습이 좀 더 필요한 것으로 나누어 계획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또 지나치게 현실적인 목표를 잘 세운다고 하셨지 않는가. 우선적으로 도전해 볼 만한 것을 쓰고 마치 당장이라도 성공한 사람처럼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빼곡하게 적은 목록만 봐도 배가 불러 그날은 행복하게 잠이 들었다.
 사장님! 현실은 녹록지 않았지만 어쨌든 손으로 하는 창작으로 제가 투잡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의도야 어떻게 되었든 투잡의 길을 결심하게 해 준 전 남자친구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쯤 되면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내가 제일 먼저 도전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시면 계속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어떤 순서대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는지 추리해 보시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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