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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형희 May 19. 2024

오월 십구일 일요일

나는 어제 나름 재밌게 보냈다. 하루의 끝에서 잠드는 그 순간까지 좋은 감정으로 잠들 수 있다는 것은 복이고 행복이다. 어떤 때는 심심할 때도 있겠지. 외로울 때도 있고. 마음이 뚝 떨어지는 날도 있겠지만.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다 하는 기분이 들 때는 행복한 하루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어제 P가 대회에 출전한다기에 집 앞 운동장으로 나가 보았다. 그래도 아는 사이에 집 앞에서 하는 경기를 모른체 하자니 그것도 머쓱하여 마실 것과 먹을걸 조금 사서 가 보았다. 걸어서 오분거리인지라ㅎ 가보니 거기가 아니란다..ㅋㅋㅋ 뒤늦게 톡방을 확인해보니 여기는 동배만 경기하는 곳이었다. 아. 정말 나는 칠칠치 못해. 이 정도면 문맹이 아닌 것도 신기하다. 제대로 읽지를 않아서 몰랐지ㅎ 나는 P는 못봤지만 L클럽의 총무님을 우연히 만났다. 허..ㅋㅋ 별 데서 다 만나. 그러고보면 총무님은 종종 우연히 만나는 일이 있다. 예전에 학원에서 하는 대회를 마치고 간 선술집에서도 우연히 만났었고. 코트장을 나가면 또 거기에도 있고..ㅋ 돌아다니는 동선이 되게 잘 겹치네ㅋ 같은 운동을 하다보니 그런거겠지만.


우연히 본 김에 얼굴도 보고 얘기도 나누고 구경도 좀 하고 잠깐 앉아 있다가 나왔다. 남자들이라 파워가 있긴 하지만 내가 눈이 너무 높아진 탓인지 그냥 저냥 쏘쏘였다. 좀 구경을 하다가 이번엔 P가 있다는 운동장으로 가 보았다. 갔더니 없었다ㅋ 예선에서 탈락했단다. 하기사 좀 구경을 해 보니 엄청 잘하긴 하더라. 다들 너무 잘해. 나는 거기서 M코치님 경기를 잠깐 볼 수 있었다. 내가 늦게 간 탓에 M코치님 경기를 풀로 볼 수 있던건 아니었지만 역시 뭔가 다르긴 달랐다. 근데 도대체 언제 M코치님의 경기를 풀로 볼 수 있는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타이밍이 안맞기도 어렵지 않나 ㅋㅋ 일전에 M코치님이 지역 클럽에 와서 연습을 할 때도 나는 그 시간에 일본에 있던 탓에 보질 못했다. 이번에도 내가 장소를 착각해서 이전 경기는 보지도 못했고. 시간관계상 마지막 경기 8분 정도를 보고 L클럽으로 가야했다. 와.. 근데 나는 딱 2점까지만 보고 나온건데.. 너무 잘해. M코치님이야 선수출신이니까 잘하는게 당연하겠지만. 상대편 선수들이 너무 잘해서!! 나는 좀 충격받은 점도 있다. 나중에 듣자하니 그 분들 중에 한 분은 초등학교 때부터 테니스를 했다고 했다. 선수를 한건 아니지만 아직 젊은 M코치님에 비하자면 구력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선수 짬밥을 보자면 M코치님이 잘할거라 생각은 하지만. M코치님이 서브를 못받았다는게 너무 놀라웠다. M코치님의 파트너분도 잘하시기야 하겠지만 와우.. 그분들 서브는 못받을게 당연할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났으니까. 그 분이 서브를 못받았다. 두번째 서브는 M코치님이 받긴 했는데 경기 중에 실점했다. 파트너분은 서브를 다 놓쳤다. 못받았다. 그리고 나서 나는 M코치님이 서브를 당연히 받을거라 생각했는데. 와우.. 공이 하늘 높이 떴다. 워낙 빠르고 쎄고 묵직하고. 나는 공을 보지도 못했다..ㅋㅋ 너무 빨라서. 눈으로 팔로우가 되는 공인가요..?ㅋㅋㅋ 첫 서브는 M코치님이었고. 두번째 서브는 상대편이었고. 나는 딱 두 번의 서브게임을 보고 L클럽으로 향했다. L클럽이 문제가 아닌거 같은데. 빅매치를 놓쳤지만 그래도 L클럽과의 시간약속도 있는거니까. 아쉬운 마음을 품고 출발했다.


가는 내내 그 여운이 얼마나 오래 가던지 ㅋㅋ 나는 H와 계속 그 서브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내가 서브를 받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두근두근대고 긴장되었다. 와.. 참 테니스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ㅋㅋ 그러니 전국적으로는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거고. 세계적인 선수들은 또 얼마나 잘할까. 나는 정말 죽기 전에 티켓 한 번 끊어서 세계 대회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을 위해서 적금이라도 들어야하낰ㅋㅋ 운동을 정말 모르던 때와는 다른 내 모습이다. 그걸 보러 가겠다는 생각이 들다니ㅎ 근데 너무 궁금하다. 세계 탑들은 도대체 어떻게 플레이를 할까. 그 사람들은 얼마나 잘할까. 지구상에 있는 인간 개체들 중 가장 테니스를 잘한다는건 어떤건지 궁금하다. 이왕 가면 간 김에 여행도 하고 구경도 하고 관람도 하고 맛난것도 먹고 쇼핑도 해야겠다는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ㅋㅋ 


그리고 난 L클럽에 갔다. 난 요즘 슬럼프라 게임을 하는게 자신이 없었다. 자신감이 뚝 떨어진 상태라ㅎ 공이 올 때면 내가 이걸 쳐도 되는건지 안되는건지 망설이게 된다. 내가 괜히 안쳐도 될 공을 치는건가 싶기도 하고. 쳐도 미스가 너무 많이 나고. 서브도 더블폴트가 너무 많다. 게다가 첫 게임은 늘상 더워서 표정관리가 잘 안되기도 하고ㅎ 5월이 이렇게 더우면 한여름엔 어떨지 모르겠다. 아직도 피부가 따꼼따꼼하네. 타는 것도 타는거지만 햇살 때문에 피부가 따가워서 어째야될지 모르겠다만. 더워가지고 뭐. 다 벗고 칠 수도 없고. 그래도 같은 테린이들끼리 치고 나니까 바닥을 치던 자신감이 조금은 채워졌다..ㅎ 나한테는 이런게 필요한 것 같다. 비슷한 실력의 사람들. 하.. 정말..ㅋㅋ 금배분들하고 치는게 주눅이 들기도 하고. 뭐라고 하면 신경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되게 신경이 쓰이네. 쩝ㅋ 게다가 테린이 티가 너무 많이 나니까 가르쳐주겠다는 사람도 너무 많고. 그분들 딴에야 나름 신경써서 얘기해주는거지만. 나도 알아여.. 돈내고 레슨을 지금 몇년째받는데 모르겠습니까. 몸이 안따라줘서 그런거지. 워낙 남이 뭐라고 하는걸 싫어하는 편이라 어른이고 뭐고 귀찮다ㅋ 오죽하면 내가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게 되게 귀찮네. H는 그렇게 얘기해주고 그러는게 되게 고맙고 감사하다고 한다. 그런걸 보면 난 참 H가 착한거 같다. 난 좀 귀찮더만ㅎ


그러고보면 H는 다른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알려주고 얘기해주는걸 참 좋아하는 편이라서 J코치님이 본인을 유령취급하는게 불편하다고 했다. 나는 뭐.. 글쎄.. 학원에 다닐 때 J코치님이 한마디씩 해줬던거 같긴 한데 그게 바로바로 적용이 안되니까 크게 와닿은건 없긴 했다. 내가 아는데 몸이 안따라주니까 옆에서 얘길 해줘도 적용이 안돼 ㅋㅋ 게임도 해야하고 얘기도 들어야되고 - 동시에 두개가 잘 안되는. 멀티가 잘 안되는 편이다보니까 잘 안들리기도 하고ㅎ 


그리고 뭐.. 내가 얘기를 하자면 잔소리할게 있긴 한데.. 뭐.. 내 동생도 아니고. 친한 것도 아니고. 그 나이즈음 먹었으면 스스로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을거고. 아직도 배울게 많고만ㅎ 이 시기에 잡아둬야할게 있는데.. 뭐 알아서 하겠쬬. 내가 뭐 상사도 아니고. 내 사람도 아니고. 어디까지 참견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좀 미안한 것도 있고ㅎ 나는 코치님을 어제 볼 줄은 몰랐다. 워낙 참여인원도 많은데다 게스트까지 넘쳐서 안올 줄 알았기에..ㅋㅋ 한 두달 즈음 뒤에나 보려나 생각하고 있던 참이어서 생각보다 빨리 만난 것이긴 하다. 그래도 2년이나 본 사람인데 내가 SNS를 단번에 끊어버려서 좀 미안한 감도 있다. 내가 코치님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겉으로야 투박하게 대하긴 하지만 잔정이 많은 사람이다. 본인도 친근하게 대했다가 상대방이 이런식으로 단번에 끊어버리고 그러면 상처받는게 분명 있을거다. 미안하긴 한데.. 어쩔 수가 없네. 난 이제 그냥 내가 마음이 편한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사실 나한테도 어떤 챌린지이긴 하다. 2년이나 주에 2회 정도를 한 사람을 봐 왔다는 것도 놀라운 것이지만 그 사람하고의 교류가 서로에게 도움이 안되겠다는 판단 하에 끊기로 했지만 어찌저찌 또 보게 되는 이런 뭔가 끈질긴(?) 인연이라는게..ㅎ 나는 이런 관계성 속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떻게 행동을 해야하는건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하는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말 그대로 챌린지니까. 글쎄. 어떻게 되려나ㅎ 


하지만 코치님은 레슨 때가 아니면 딱히 나한테 친근하게 대하진 않으므로 뭔일이야 있겠나 싶다. 잘 쳐다보지도 않드만ㅋㅋ 나도 사실 쳐다보기가 좀 불편하기도 하다..ㅋㅋ 물론 다양한 친구들이 있는 만큼 좀 친해진다고 해서 뭔 대수겠나. 내 마음이 불편한거지. 내가 호감이 있었다는 사실과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것과 그 뒤로 이런저런 일들이 있긴 했지만 하여간 다시 호감이 생겼던 일들. 이런 거슬리는 감정들이 불편해서 코치님 보기가 불편한거다. 하기사 이런저런 일들이 있던게 나만 불편하진 않겠지. 본인이라고 마음이 편하고 즐겁기만 하겠나. 사람이 다 똑같지. 마음이라는게ㅋ 이 정도 거리감이 마음은 편하다. 나는 SNS를 끊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좀 불편한 감이 있는 사람과의 거리감이 조절이 되어서 마음이 좀 더 편해졌다. 그런 복잡한 관계들 속에 있고 싶지가 않다는 마음이었는데 누군가의 사생활을 알 수 없고 멀어진 게 마음이 편해서ㅎ 그래. 나는 편안한 상태이고 싶다. 복잡한 것도 싫고 거슬리는 감정도 싫고 즐거운게 좋다. 맘 편한게. 하여튼 뭔가 미안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근데 또.. 멀어진 만큼 편해지긴 했다. 


그런 상상도 해봤다. 내가 어떤 누군가 좋은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애도 결혼을 하고 L클럽의 다른 기혼자들의 아이들이 자라고. 늘 결혼하고 싶어하는 총무님도 누군가 만나 가정을 또 꾸리고. C는 여전히 활발할 것이며. 커플들은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그리고 인생의 큰 파도들을 겪고. 희노애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늙어가면서 서로를 지켜본다면 그것도 또한 좋은 우정이지 않을까. 그래. 내가 예전에 그애를 알게 되었을 때. 그애를 좋게 봤을 때 했던. 그런 상상을 또 해봤다. 


최근에는 연애나 사랑도 중요하지만 이런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뭔가 더 넓어진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랑에 몰두했었지만. 이 나이 즈음 되고 보니 사랑도 애정도 중요하지만 우정도 중요하고 좋은 것이라는 마음이 든다. 사실이 그렇고.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고 가정을 꾸려도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이고 가까운 존재에게서 받는 것과 이렇게 조금 먼 사이들에게서 받는 것과 그저 차 한잔 마시면서 수다나 떠는 사이에서 받는 것들이 다 다르다. 내가 사랑을 해도 외로웠던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깊지 않은 감정들로 이뤄진 사이에서. 말하자면, 서로를 아끼되 사랑은 아닌 우정들 속에서 내가 편안할 수 있는 관계들도 있는 법이니까. 그런 오래도록 볼 수 있는 관계들에 대해서 풍족함을 느끼고 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는 사귐들에 대해서.


이런 우정 속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편안함들과 즐거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어렸을 땐ㅎ 내가 워낙 관계를 자주 끊었던 탓에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못보는 사이에 사귀거나 안사귀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않나 했던 생각들이 있긴 했지. 그건 늘 나를 충동질하는 기본적인 마인드였지만..ㅎ


좋은 우정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사랑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많긴 하지만. 사랑도 필요하지. 성적인 것도 필요하고. 내가 연애를 안한지가 몇년인가..ㅋㅋ 사실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던 것도 거의 10년이다. 아마도 내가 힘든 시기를 보냈던 탓이겠다. 인연의 끊음과 지독했던 스토킹과 사랑을 하는 것의 부침과 내 일과 내 개인사들. 가족문제들 등등. 


내 개인적인 치유의 시간들 속에서 전혀 생각이 없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뭐 사람이 숨이 붙어서 살아가고 있는데 없이 살 순 없겠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살아가는 것만큼 자연스러운거니까. 


힘든 시간들이 지나가고 나니까 또 살아가게 된다. 


한 인간으로서.


좋은 만남이 내게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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