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십이일날

1027_마드리드 삼일차

by Simba

십이일째. 게으름을 조금 피웠다. 전날 술도 먹었겠다. 오늘은 방에서 뒹굴까 생각도 했다. 밥은 먹어야 하니 씻고 나갈 채비를 했다. 감바스는 먹어봐야 한다. 시내 쪽으로 갈수록 신용카드 사용은 불가하다. 엄밀히 말해서 JCB카드 사용이 힘들다. 숙소 근처 식당들은 대부분 사용할 수 있다.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갔다. 뷔페가 있고, 요리를 시킬수도 있었다. 감바스가 있냐는 물음에 lingostinos를 추천해줬다. 거의 같은 음식이랜다. 뷔페를 주문했다 다시 바꿨다. 우유부단함. 바꿔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결정을 하고 번복을 하는 경향이 생겼다. 주문을 바꾸거나 약속을 바꾸거나 취소하고, 사소한 결정들에 지나치게 고민을 많이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스트레스 받는 일이 줄었다. 'lingostinos'는 국물이 없는 새우구이 요리였다. 밥보단 안주에 가까웠다. 2시경 첫 식사를 구운 새우 몇점으로 채우려니 만족스러울리 없다. 뷔페가 아쉽지만 결제를 하고 일어났다. 스타벅스를 들렀다. 'simba'를 잘못 들어 'sampi'를 부른다. 마드리드는 파리와 달리 테라스에서 커피를 많이 마시지 않는다. 에스프레소에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서둘러 자리를 떠나는 광경은 일반적이지 않다. 그 테라스들은 식사를 위해 사용된다.


커피를 들고 산 히네스 성당을 다시 찾았다. 같은 안내문이 보였다. 미사 시간에는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문구였다.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저 미사 시간이 아니라면 입장해도 상관없는 모양이다. 들어가니 미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기도를 했다. 바티칸에 가면 미사에 참석을 해볼까. 사실 미사는 참석해본게 손에 꼽을 정도고, 그 마저도 몇년전이라 순서도 기억나지 않는다. 더불어 신부의 말씀도 그 국가의 언어로 진행되니 제대로 따라갈 수 없다. 산 히네스 성당은 아늑하고 편안했다. 화려하지 않고 친근하다. 성당 밖은 버스킹이나 행위예술이 펼쳐지곤 한다. 시민들과 가까이 있는 성당, 그래서 더 좋았다. 오늘도 역시 숙소로 와서 휴식을 취했다. 그림을 그릴까 했지만 여행중 강박적으로 뭔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7시 반경 배가 고파졌다. 점심 때 갔던 식당을 다시 갔다. 뷔페를 시켰다. 먹는 내내 후회를 했다. 아까는 왜 주문을 바꿨을까. 더 싼 가격으로 배터지게 먹었을 텐데. 갈팡질팡 하는 결정 중에 후회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씁쓸함은 두배가 된다. 뭐든지 적당히 생각하고 단순히 결정내리는 게 좋은 것 같다. 뷔페는 좋았다. 밥이 찰져서 더 좋았다. 고기 위주로 식사를 했고, 잘은 모르겠지만 닭, 돼지, 오리 등 각종 고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되어 있었다. 두 접시를 먹고 디저트를 먹었다. 별 기대 없던 디저트도 굉장히 맛있었다. 유럽의 뷔페는 달랐다. 만족스런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평소같으면 씻고 잘 준비를 하겠지만, 오늘은 밋업 모임이 있다. 9시 반경까지 지정된 '바'로 가야한다.


휴식을 취한 후 집을 나섰다. 유럽에서 밤에 숙소를 나선 건 처음이다. 브뤼셀이나 파리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마드리드는 그만큼 밤이 밝은 곳이다. 시내가 늦게까지 밝고, 사람으로 붐빈다. 어딘지 모르게 한국과 닮았다. 오늘 하는 모임은 언어 교환(language exchange)와 파티가 예정되어 있었다. 참석자 명단 중 동양인은 없었다. 무시 받지 않을까 고민도 됐고, 어울리지 못할까 두렵기도 했다. 앞에서 담배를 태우며 지켜봤고, 몇명이 들어갔다. 돌아갈까 했지만 일단 들어갔다. 입구에서 설명을 하니 팔에 팔찌를 채워줬다. 들어가니 몇명이 진행하는 분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었다. 몇명은 자주 오는 지 여유로워 보였다. 이름을 묻기에 simba라고 하고, 별명이라고 소개했다. 다들 관심을 보였고, 가능한 언어를 물었다. 대부분 영어는 기본으로 했고, 출신에 따라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했다. 유럽 사람들은 인접 국가 언어 한두개는 기본적으로 습득하는 듯 했다. 이내 많은 사람이 들어왔고, 조금씩 자연스럽게 그룹이 형성됐다. 11시 무렵까지는 대화를 하며 언어 교환을 하고, 이후에는 새벽까지 파티를 한다고 봐서, 나는 언어 교환시간까지만 머물 예정이었다. 유럽 사람들이라고 특별히 다르지는 않았다. 눈치를 보며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눴고, 나도 한 무리에 들어가 대화를 했다. 스터디 센터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한 경험이 도움이 됐다. 모임을 나온 사람들은 말을 걸어주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내가 어색해하면 상대도 어색해한다. 멕시코, 베네수엘라, 스페인, 독일, 영국, 터키 등 온갖 국가 출신들이 모였지만 아시아인은 내가 유일했다. 여기 저기 그룹을 옮기며 인사를 하고 대화를 했다. 다행히 나를 배려해서 모두들 영어로 대화를 해줬다. 같이 맥주도 마시고, 담배도 피며 개인적인 대화를 많이 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원래 친구였던 듯 편안했다. 한 멤버는 서로의 국가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국은 뉴스 때문에 모두들 안다고 했다. 뭔가 신기했다. 한국을 가봤다는 사람도 있었고, 이스탄불에 간다고 하니 조심하라는 터키 친구도 있었다. 이렇게 고민 중 내린 결정이 좋은 결과로 귀결되는 경우도 있다.


사실 난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한다. 외로워 지기도 하지만, 그러한 감정도 즐긴다. 유럽의 한 카페에 앉아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여유로 느낀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여행 내내 가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가면 사람들의 질문이 뻔하다. 남들의 생각은 신경쓰지 말라고 하지만, 유럽에서 생각만 하다 돌아왔다고 하면 반응이 좋을 리 없다. 살다보니 남들이 좋아할 만할 걸 해야 편하다는 것도 깨닫는다. 남은 국가들에서는 밋업으로 파티 참석을 종종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람들에게 먼저 가야한다고 알렸다. 팔찌를 보여 주면 불샷을 두잔 준다고 했다. 먹어볼까 했지만, 숙소에 너무 늦게 들어가긴 부담이 됐다. 유럽에서는 다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을 공유했다. 페이스북 계정은 해킹당한 이유로, 인스타그램으로 공유했다. 신기하게 남자들은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았다. 'real life'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뭔가 재밌고, 나는 단지 그림을 올리고 있다고 계정을 보여줬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중동(靜中動)하는 성격이 싫다. 여행이 끝나고 변하는 기적이 가능할까. 내일은 숙소에서 휴식을 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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