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그 세 번째 이야기
"밥 자리 한 번 하시지예(<범죄와의 전쟁>)"
각주_부산에서는 흔히 식사자리를 '밥 자리'라고 하기도 한다
최근 부산에서 아버지를 따라 밥 자리에 간 적이 있었다. 간만에 내려간 고향에서 외식을 하자던 아버지를 따라간 자리가 알고 보니 아버지 지인 분들 식사자리였는데, 난 마치 불청객이 된 듯 함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식당은 초밥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라 맛있게 먹었는데, 밥을 먹다 말고 별안간 주위를 둘러보니 그 자리는 내가 16년 전 알바를 했던 서면의 그 패밀리마트 자리였다.
세월이 흘러 편의점은 흔적을 감춰 버렸고, 그 자리엔 어느덧 초밥 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내 20살이 스쳐 지나갔다.
인간의 기억이란 참 무섭다. 전혀 다른 인테리어와 사람들, 그 시공간 속에서 여전히 16년 전 패밀리마트가 눈에 보였다. 서면 패밀리마트는 지금 생각하면 참 특이한 부분이 많았다. 우선 점장님(여기서는 점장이라 하겠다)의 아버지부터가 그랬다. 새파랗게 어린 나에게는 할아버지였는데, 호칭을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질 않는다(아마도 사장님이라 불렀던 것 같다).
사장님은 아들 편의점에서 일을 거들어 주시곤 했는데, 꽤나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라서 자신의 정해진 루틴에 알바생이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호령과 잔소리 그 중간 어디쯤의 짜증을 내시곤 했다. 그 탓에 알바생 혹은 젊은 손님과 싸우는 것을 여러 차례 보곤 했는데, 심지어 점장인 당신 아들과도 다투곤 하셨다. 나도 소신이 아주 강한 사람이지만, 왜인지 사장님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싫지 않아 시키시는 대로 곧잘 하곤 했다. 할아버지의 루틴이라는 것은 종종 20살의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를 테면 편의점에선 2리터 짜리 생수의 포장 비닐이 한가득 나오곤 했는데, 할아버지는 반드시 그 비닐 뭉치를 돌돌 말아 '꽉' 압축시키곤 테이프로 다시 돌돌 말아 단단한 방망이처럼 만들곤 했다. 그것이 재활용이 된다고 굳게 믿으셨는데, 그 진위와 관계없이 자신이 옳다 여기는 행동을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분하곤 하셨다는 게 중요하다.
난 지금도 비닐류는 돌돌 말아 플라스틱으로 분류하곤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특전사(사실인 지 알 수 없으나, 그 얼굴과 말투는 특전사가 확실했다) 출신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크셨고, 해병대를 가겠다는 나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시기도 했다. 하루는 내 눈에서 빛이 나지 않는다며 핀잔을 주셨는데, 일 년 여의 알바가 끝나고 군 입대를 이유로 그만둘 때는 눈에서 빛이 난다는 덕담을 해주시기도 했다. 눈에서 빛이 난다는 말은 정말이지 주관적인 기준인 평가이지만, 난 지금도 총명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면 패밀리마트는 영광도서 맞은 편에 자리한 위치도 위치거니와, 뒷골목 특유의 정이 넘치는 곳이라 인근 가게와의 교류도 많았다. 예전에는 번화가 안쪽으로 포장마차가 많았는데, 우리 패밀리마트 앞 도로변에도 대여섯 점의 포장마차가 있었다. 그중 두 점포 정도의 이모님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가장 가까운 이모님은 할아버지와도 친하고 알바생들과도 격 없이 지내셨다. 특히 신기하게도 해외축구(이하 해축)를 좋아하셔서 종종 손님이 없는 새벽에 편의점에서 담소를 나누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영표가 토트넘 훗스퍼에 뛰며 해축의 전성기를 여는 참이었기에, 박지성이 골이라도 넣는 날이면 이모님(당시에도 나이가 상당히 많으셨다)께서는 열변을 토하셨고, 난 그런 이모님을 보는 게 좋아서 할 말이 있더라도 잠자코 듣고 있곤 했다. 패밀리마트에는 혜택도 많았다. 포장마차 이모님과 지금도 영업 중인 'ㅎ국수집'에서는 종종 국수, 김밥 같은 음식을 주시곤 했는데, 허구한 날 폐기(이때쯤이면 폐기가 물릴 때도 됐다)만 먹던 알바생에게 새벽의 음식들은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가끔은 손님이 먹지 않고 갔다며 '골뱅이 무침'같은 요리를 주시기도 했는데, 삼십이 넘은 지금 생각해보면 손님이 포장마차에서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간 음식이 있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싶다. 아마도 이모님께서는 손자같은 알바생에게 뭐라도 하나 주시려고 농을 치셨으리라.
다른 편의점들도 그런 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오래 일한 직원들이 많았다. 직원들 이래 봐야 알바로 시작해 각자 회사와 학교로 떠나간 분들이지만, 3~6개월 정도였던 알바생 수명을 생각해보면 1년 이상 일했던 알바생들, 그리고 그 형, 누나들이 지나는 길에 먹을거리를 싸들고 들렀던 날들로 추정컨대 특전사 점장이 인복은 있는 분이었던 것 같다.
난 해병대 출신 사수와 잠시 함께 일하기도 했는데, 편하게 형이라 불렀던 사수는 해병대 출신 답지 않게(?) 하얀 피부에 성격이 유한 편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당시 해병대 입대를 생각하고 있어서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했었는데, 형은 그럴 때마다 딱 잘라 말하곤 했다. "망설이는 건 해병대 정신이 아니지". 지금 생각하면 뭔가 오글거리지만, 20살의 나는 그 말이 무척이나 멋있다고 생각했고, 유한 강함에 매료되었다.
해병대 언급이 많아 마치 내가 해병대에 입대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당당히 해군에 입대했다. 그 사정에는 여러 에피소드가 있는데, 어쨌든 군에 입대한 나는 잊지 않고 휴가 동안 패밀리마트를 찾아왔다. 아마 그 당시 알바생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 별 관심이 없었고, 우리 이모님 포장마차에 친구들과 손님으로 가서 소주를 마신 기억이 난다. 이모님은 내 이름을 기억하시고, 마치 멀리서 온 손자 보듯 반겨주시며 끝끝내 음식 값을 받지 않으려 하셨다. 시간이 흘러 이모님 안부를 알 방법이 없지만, 부디 지금도 해축을 보며 건강하게 지내시길.
4화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