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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Nov 18. 2021

0. 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

생각에 머무르는 것들, 이야기는 해볼 수 있으니까

어제는 배급하는 영화의 첫 번째 시사회 날이었다.


같이 일하는 막내 동료가 시사회 현장 업무를 배웠으면 했고, 그렇다고 나랑 둘만 가기에는 여러 모로 역부족일 것 같아 선배한테 "다 같이 가자"고 말했다. 그래서 한 차에 우리 4명이 총출동 했다. 선배 둘, 나, 그리고 막내 동료. 우리는 외근이 있을 때마다 놀러가는 걸로 착각하는 애들 같다. 어제도 그랬다.


차에 타서 별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을 했다. 언제나 하나마나 한 말들을 하니까. 그런데 어젠 자꾸 마음에 남는 한 순간이 있었다.


"만약 능력도 있고 어떤 직업이든 선택할 수 있다면 뭘 할 것 같아요?"

"능력도 있어?"

"네 능력도 있고 아무거나 다 될 수 있어요."

"그럼 난 가수."

"난 목수."

"엥? 목수요? 언니는요?"

"난 작가. 글을 쓰고 싶어."

"소설?"

"아니요. 음... 저는 에세이? 에세이를 쓰고 싶어요."

"너는?"

"저는 의사요. 내과의사."

"최고는 외과의사지. 가장 존경 받는."

"저는 그냥 주변 사람들한테 버팀목이 되고 싶어요."

"난 예술가 중에 가수가 최고 경지라고 생각해...(어쩌고...)" -선배가 늘 하는 레파토리 수백가지 중에 하나라서 한 다섯 번째 듣는 가수 찬양 이야기.


똑같지는 않지만 내 머리에서 편집된 대화들은 대충 이랬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글은 언제든 쓸 수 있었다. 정말 책을 내고 정돈하기에 집중할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소설 작가도 아니고 에세이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 작가가 꿈 꿀 만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에세이란 언제 어디에서든 내 생각을 쓰면 만들어질 수 있는 거였다. 스스로 허언증이거나 게을러터졌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이 글을 쓴다. 이왕이면 규칙적으로 써볼 생각이다. 어차피 아침마다 일어나서 하는 일은 혼자 다양한 생각들을 하고, 계획을 짜거나 감상에 빠지다가, 책을 읽고 그것도 다 하면 운동을 하러 가는 게 일과니까. 그 사이 어딘가에 글쓰기를 추가 하면 된다.


이렇게 쉬운데도 그동안 일상과 단상을 이렇게 간단히 남기지 않았던 이유는 '계획' 때문이다. 올해 안에 내 친구를 생각하며 쓴 원고들을 정리해 책을 내기로 했는데, 지금 그것도 안 하는데 뭘 또 하냐는 자책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항상 이걸 하겠다고 했다가도 저걸 하고 앉아 있는 게 나다.


지금도 너무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다. 사실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인데 말하지 않을 때에도 늘 하고 싶은 말들은 참 많다. 파편적인 내 감상이나 생각들이 내가 있는 곳의 분위기나 맥락에 맞지 않을 것 같아 입을 안 뗄 뿐. 그리고 그런 맥락에 맞는 말들도 잘 생각나지 않기도 한다.


말하지 않을 때마다 하고 싶었거나 생각했던 것들을 남겨야겠다. 그게 곧 에세이가 될 것 같으니. 차근차근, 생각이 날 때마다, 메모 하듯이, 그리고 꾸준히, 정돈된 단어들로 남겨봐야겠다.


지금도 여러 가지 글을 만들어 내지만 그 중에 가장 솔직하고 목적 없는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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