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리 에듀케이션>을 봤다
분명 일찍 잠자리에 들 생각이었는데, 새벽 1시까지 영화를 봤다. 오랜만에 2시간이 넘는 영화를 틀었더니, 자꾸 습관적으로 스킵- 스킵- 하며 보게 됐다.
파리의 영화학도들이 잔잔하게 영화에 대해 떠드는 이야기였다. 어제 본 영화 <파리 에듀케이션>은 2019년에 개봉했고,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다루기도 했던 작품이다.
정성일 영화 평론가는 이 영화를 "영화 퀴즈" 같다고 했다. 고전영화와 영화 관련 인물에 대한 수다가 많기 때문에 한 말일 것이다. 아쉽게도 난 얄팍한 영화학도였어서 그저 성장 드라마로만 와 닿았다.
그래도 영화와 예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모여 앉아서 "영화는 이래야 해" 하며 논쟁하는 하이라이트 장면은 두고두고 공감되고 간직하고 싶었다.
난 양쪽으로 대립한 두 주인공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생각도 해봤다. 난 마티아스 쪽인 것 같다.
- 영화는 훌륭한 말을 담으면 정치적이 될 수도 있지.
- 훌륭한 말이 뭔데?
- 공유할 가치가 있는 훌륭한 삶을 담은 거. 기본적인 대상은 사람들이지만 해 뜨는 광경, 나무, 눈, 세상이 될 수도
- 너무 추상적이야. 문제의 일부만 건드리잖아.
- 근데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적들처럼 생각하게 되면 그것도 문제잖아. 훌륭한 삶은 감성을 통해 전해져야 돼. 이념이 아니라고. 영화는 세상이 살 만하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운동권 영화 속 인간과 세상을 보면 살기 싫게 만들어.
- 다 너 같은 예술가는 아니야. 네가 영화나 만들 때 실제로 투쟁하는 운동가는 시인일 수 없다고. 하지만 세상을 바꾸지. 너 어떤 느낌인지 알아? 실제 삶과는 동떨어져 보여. 삶에 대해 떠들지만 그저 영화를 통해 살뿐이야.
- 예술가들이 네가 말한 방식대로 세상을 구할 의무는 없어. 몇 개의 삶이 있다면 모를까. 그들의 진짜 할 일은 만들어 내는 거야. 그렇게 세상을 구하지.
- 너무 속 편한 생각이네.
- 마티스가 참전하려고 하자 마르셀 상바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어. '당신은 계속 그리는 것이 나라에 충성하는 길이오.'
영화에는 정말로 "공유할 가치가 있는 훌륭한 삶"이 가득가득 담겼으면 좋겠다. 윤리적으로 무결한 상태거나 명예로운 삶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삶, 공간과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길 줄 아는 여유로운 삶을 더 많이 보고 싶다. 그 안에서 부단히 최선을 다하는 이들을 나도 만나고 싶다.
그런 영화들을 보고 나도 그들처럼 살아가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