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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Feb 13. 2021

오미주, 기선겸 안녕...

드라마 '런 온' 좋아한 이유 7

임시완, 신세경 주연의 드라마 <런 온>이 끝났다.

비록 '사랑의 콜센터'와 '뽕숭아 학당'을 보시는 엄마 덕분에(?) 본상사수는 늘 반쪽에 그쳤지만.


결국 며칠의 고민 끝에 넷플릭스 구독하고 무사히 마지막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1.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


여기서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은 확인한 바 3명이다. 이 영화를 쓴 각본가, 그리고 오미주(신세경)와 이영화(강태오).


<런 온>은 첫 화부터 영화제가 배경이었다. 실제로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거리를 로케이션으로 하고, 영화제 분위기와 실제 행사(오픈 부스로 진행하는 라디오, GV 등)까지 구현했다. 영화제 때 흔히 보이는 술자리와 영화 업계(제작사와 배급사, 촬영 현장 등) 표현도 생생하다.



캐릭터들 이름은 아주 노골적이다. ㅎㅎ 이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오미주는 슬쩍 오마주로도 읽힌다.

*오마주 : 영화에서 존경의 표시로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을 이르는 용어



오미주와 이영화는 나와 내 주변 지인들의 모습과 꼭 닮았다.

'영화 보고 술 마시는 것'이 데이트가 아닌 '뒤풀이'라고 말하고, 본 영화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걸 즐기고, 혼자 일을 할 때 본 영화를 틀어놓고 소리만 들으면서 일하는 사람들.



2. 미모


1번과 2번 온도차 무슨 일인가 싶네. 신세경과 임시완, 강태오와 최수영.

이들의 미모는 뭐, 말모 말모... 요즘 드라마는 피부를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게 찍는 게 기본값인가? 너무 아름답다...



3. 티키타카, 말맛 맛집

신세경과 임시완은 극 중 티키타카가 잘 된다. 사실 둘은 처음에 자꾸 단어 하나에도 말이 안 통해서 대화가 버벅대고 지체되는데, 나중에 신세경은 둘이 너무 잘 통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놀라게 된다. (덩달아 나도 놀람*_* 재밌어서.)


사실 둘의 연기도 꽤나 리얼하고 좋았지만 대사 자체에도 쓸 데 없는 내용이나, 익숙한 클리셰가 많이 없다.



특히 둘이 꽁냥대는 장면은 테이크가 길다. 같이 일하는 선배 말로는 일부러 오케이 컷을 길게 편집한 것 같다고. 덕분에 오케이 사인을 기다리는 두 배우의 실제 케미가 드라마에 낭낭하게 담겼다.


4. 안하무인 CEO, 캔디 캐릭터... 계층 반전시키기


최수영이 연기한 스포츠 에이전시 CEO 서단아. 서얼인지 이단아인지, 아무튼 그런 느낌이 풍기는 이름답게(?) 인사이더이면서도 꽤나 아웃사이더 감성이 낭낭하고, 폭력적이다.


폭력적인 면은 발차기, 거침없는 욕설과 일방적이고 배려 없는 팩트 폭행으로 드러나는데 전례 없는 여성 캐릭터다. 썸남을 이름도 안 부르고 "학생, 학생" 하는 언어습관도 그렇고. 그런데 남자로 바꿔보면 그런 보스는 차고 넘친다.


(히트 친 '비밀의 숲'에서도 안하무인 남자캐는 여전하다. 한여진은 자기 말에 대답 않는 황시목에게 "내 말이 껌이에요? 계속 씹게?"라고 한다구!)


아무튼 서단아는 부하직원이나 애인에게도 배려 없고 사무적인 언행이 눈에 띈다. 하지만 알고 보면 환경보전에 일조하고(텀블러 지참) 사람 안 보이는 데에서 상대방을 기특해 하는 표정을 짓거나(츤데레...) 한다.


착한 사람이라 하기에는 안하무인, 상처를 잘 주는 사람일 뿐 환경보전에 힘쓰거나 뒤에서 예뻐한다고 해서 다정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물론 서단아는 스스로 깨닫고 사과하거나 성찰, 오류를 고쳐나간다. 이는 그동안 단순히 나쁜 남자, 츤데레라며 옹호한 대중문화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로 보인다.


신세경이 연기한 오미주도 색다르다. 고아로 커서 외로운 사람이지만 그런 성장배경이 캐릭터 구축에 신선하게 반영됐다. 고아라서 가난에 찌들고, 피해의식이 있거나, 성격이 어둡다는 설정은 시대착오적이고 고아가 아닌 사람들의 무식한 착각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돈으로 매수되지만 그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위기를 스스로 벗어난다. 그리고 가난을 잘못된 선택의 핑계로 삼지 않고 변명하지 않는다.


성격 또한 밝고 당차지만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는 아니다. 오미주는 스스로를 긍정하고 인정하며 자부한다. 슬프거나 억울하거나 외로우면 잘 운다. 결국 일반화의 오류를 피하고 개인 차원으로 캐릭터를 만들어가며 개성을 부여했다.


5. 성별 반전하기

4번이랑 이어지는 내용이기도 하다.


특히 199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 흔했던 무뚝뚝, 츤데레, 다정다감한 로맨스 가이인 남자 캐릭터들은 주로 상대여성에게 상처를 주거나, 혹은 '공주 대접'을 원하는 여성에게 말하지 않아도 눈치 빠르게 로맨스를 시전 한다. 그 흔한 남주를 오미주와 서단아 두 여성 캐릭터에게 입혔다.



오미주는 눈치 없이 해맑고, 세상 물정 모르는 기선겸 (임시완)을 귀여워한다. 주로 모르는 걸(넷플릭스나 일기 쓰는 방법, 자만추라는 단어 등) 설명해주긴 하지만 때때로 모르는 대로 내버려두고 방치하는 것 같다. 과거 드라마에서 여성캐릭터의 백치미를 방치하는 남자주인공 느낌도 있다.



돈 없고 시간만 많은 대학생 이영화는 돈 많고 시간 없는 사업가 서단아를 졸졸 따라다니는데 그림 그려내는 자판기 취급을 받아도 '일편단심 서단아'다. 그리고 새삼 느낀 신분 격차에 사랑을 포기하기로 결심하며 눈물을 흘린다.


당연히 다양하고 섬세한 성별 반전을 그 자체로 훌륭한 건 아니다. 아무리 역지사지여도 억지가 될 수 있는 설정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잘 그려냈다. '런 온'은 때때로 쾌감을 주면서 무던한 감각을 깨워주며 성찰하게 하는 청량한 드라마다.



6. 휴머니즘

마지막 회는 인간군상을 그린다. 주인공들의 극적인 결심이나 몇 년 후의 새로워진 삶을 그리는 대신, 16화 내내 흘러온 대로 살아가는 주인공들과 그들을 둘러싼 여러 조연 캐릭터들을 한 명 한 명 비춰준다. 이 얼마나 따뜻한 인간애, 인간미인지.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7. 그 외의 다양한 이슈들...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부유층의 모습을 희망하며, LGBTQ의 성적 지향을 겸손하게 응원하고, 모성애와 직업인에 대한 무궁한 존경이 곳곳에 스며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다.


사실 이 모든 이유를 불문하고, 그냥 너무 재밌잖아!!!

이 시대의 아주 바람직한 로맨틱 판타지 드라마입니다.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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