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공이 구체적으로 뭔지도 모르는 채로 대학에 입학하고 들어간 첫 수업에서 교수님이 칠판에 "아랍, 중동, 이슬람" 이 세 단어를 적으셨다. 그리곤 각각의 차이점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손 들어보라고 하셨다. 그 수업부터 엄청 공부가 재밌었어요! 같은 드라마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날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나는 지리 과목을 한번도 선택하거나 배워본적이 없었는데, 나중에서야 지리과목에서 지역문화도 배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쓰리사를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적성은 지리였는데 말이지. 그래서 학과 첫수업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지금도 그 수업이 내 삶을 여기까지 이끌어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란어를 전공했고, 터키어를 2전공했고, 졸업할 땐 문화콘텐츠 2전공으로 졸업했다. 이 모든 학적의 기록도 그날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조금씩 하고 머리가 커지면서는 무엇이 아랍과 중동, 이슬람을 혼돈하여 이해하게 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세상은 어찌나 모든걸 편리하게 만들고 싶어하는지 거기에서 얼마나 많은 차이들이 균질화되고 있는지, 그 균질이 나에게 얼마나 강요되는지 알게되면서 관심은 지리적 차이나 문화적 차이를 넘어 내가 살고 있는 사회로 돌아왔다. 당장 내 앞에 놓인 편리함, 효율, 경제성 등을 이유로 획일,균질하게 펼쳐진 선택지를 가장한 강요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가 제시한, 강요한 편리함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편리함과 효율만이 삶의 이치인 것처럼,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누군가가 중요하다고 정한 몇가지 이외에는 '없어져도 될 것'들 처럼 세상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아주 오랫동안, 발언권을 가지고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이들에 의해 정돈되고 정리되어 학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학문을 반박하는 학문들도 엄청났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타인이 혹은 세상이 결정하게 두고 싶지 않아. 여러분 정신차려!! 다들 각자의 속도로 살았으면 좋겠어. 눈앞에 보이는 건 다 뻥이야. 사실은 민들레 꽃 안에도 우주가 있는거야. 굳이 먼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는거야. 추상적인 이야기를 외치던 나의 하고싶은 일은, 지방도시와 광역시, 서울의 격차를 좁히는 일이었고(어디에서 어떤 속도로 무엇을 하건 괜찮은 사회), 혹은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만의 덕질 하나쯤은 가지는 것이었고(수천억가지의 취향 안에, 수천억가지의 우주가 있다는게 당연한 사회에 살고 싶어서), 어떤 색깔로 모습으로 살아도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도시를 공부했기 때문에, 여러가지 지역 정책 등을 실행하거나 기획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되도록이면 미시적으로, 되도록이면 개별적인 삶 하나 하나가, 특정 요소 안에 뭉틍그려지는 일 없는 영역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영역에서 힘을 내고 일을 할때 나도 좋았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 같은 물길을 끊어낼, 샛강을 파는 일들이라고 생각했다. 글쓰기 모임을 하고, 끝없이 독서모임을 만들고, 독립출판물과 작은 가게들을 응원하고, 우리마을 옥상영화제를 개최하고, 새로 생기는 공공공간에 공간을 쓸 사람들의 목소리가 직접 개입되게 하고, 직접 활용하게 하고, 직접 권한을 행사하게 하고,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발언권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하고, 메인스트림의 취향이나 기준 같은 것은 아무렴, 내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결정권자들이 말을 번복하지 못하도록 공론화의 장을 만들고, 때로는 싸움을 붙이고, 때로는 어르고 달래면서 샛강을 파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어떤 지점에서 시작했는데, 십몇년이 흐르고 나니 시작지점이 아스라히 끝에 있어 보이지도 않는 곳에 와있다. 지금의 삶과 지금의 일에 만족하고, 보람을 느끼고, 열심히 하고 싶지만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지나온 길이 이어져있기는 한지 더듬어보고 싶어서였다. 옛날엔 나의 현장과 문제의식과 나의 기획이 함께 있었다. "앗, 이동네엔 구 전체를 통틀어서 영화관이 하나 뿐이네? 어머, 이 영화관엔 관은 11개인데 영화는 3편뿐이네. 다 때려부시는 영화네? 이럴수가 올해 좋은 영화가 얼마나 많았는데. 영화제를 해야겠다." 이런 일을 할 땐 일이 손에 잡히고, 사람들의 반응과 만족도도 즉각적이니까 보람이 컸던 것 같다. 앰프와 스크린을 직접 나르고, 의자를 깔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현수막을 걸고 하는일도 싫지 않았다.
ㅎㅎ.. 입사한지 얼마 안된 울 회사 후배들은 저런 일을 하고 싶어한다. 자기가 문제라고 느꼈던 것을 바로 건들고 싶어한다. 이런 저런 절차는 다 명분을 위한 것이니, 당장 필요한 일을 하고 싶어한다. 두팔을 걷어올리고 사다리를 타고 현수막을 걸거나, 의자를 까는 일부터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들이 자신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동기부여를 어려워한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그중 꽤 큰 이유가 더이상 사다리를 직접 타지 않아도 되서일지도 모른다. 과거엔 영화가 문제면 영화제를 하고, 책이 문제면 독서모임을 했지만, 지금은 영화의 문제와 책의 문제를 만드는 상위의 문제를 다루는 일을 하니까, 내 관점이나 기획이 국지적이지 않아서 좋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그게 실제로 어떠한지 만날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영화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그래서 책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내게는 이제 그런것들은 누군가가 해줘야 할 일이다.
...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내가 이렇게 하는 일들이 아랍과 중동과 이슬람이란 단어를 당연히 다르게 받아들이고, 명확하게 이해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 헷갈린다. 내가 하는 일이 국지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그 일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을 돕는데 일조하고 있나? 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에 일조하고 있나? 나의 세계로 타인의 세계를 넘나들고 이해하는 것을 돕고 있나? 아니면 적어도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자신의 속도를 확인하게 하는데라도 돕고 있나... 그런건 차라리 영화를 틀고 현수막을 걸어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작년 어느날 이런 이야기를 한참 하며 넋두리를 하고 있는데 남자친구가 묻는다. "너는 돈 같은거 아무렴 신경 안써도 된다고 하면 무슨 일을 하고 싶어?" "음... 나는.... 구술 채록 같은거 하면서 사람들 이야기 듣고 돌아다니고 싶어. 그런거 기록하고, 책내고." "그럼 그걸로 해볼만한 일은 없을까?" "돈버는거?" "응" "...누군가에 의해 기록될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을만한 사람의 기록이나, 혹은 누군가를 꼭 기록하고 싶은 사람의 기록을 하는거나 하면 되겠지." 이런 일을 하면, 아랍과 중동 이슬람이란 단어를 당연히 다르게 인식하게는 하지 못하더라도, 각각의 이야기를 오롯이 적고 담아낼 수 는 있겠지. 하고 생각한다. 적을만한 중요한 것은 당신의 이야기라고. 그렇게 서로의 우주를 나눌 수 있다면.
요새는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서 고민이 많다. 새로운 일은 역시, 아랍과 중동 이슬람이란 단어를 만났을 때 그걸 당연히 다르게 받아들이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자 하는 일이고, 만나서 하고 싶은 일이다. 그 세 단어가 아니더라도 낯설고 모르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 자체로 존중하고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말이지. 망곃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왜 그런일을 하고 싶은지, 만나고 싶은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 일로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그 일을 같이 할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동기는 무엇일지 궁금한 것들은 많아지기만 하고, 잘 모르겠다. 어렵사리 꺼내놓은 문장이 10개라면, 10000개 정도는 되는 "모르겠어!"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얼마전에 이런 내 고민들을 자신의 언어로 편안하게, 논리적으로 적어내려간 책을 만났었다. 나도 내 언어로 고민을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결론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