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맛있게 먹이고 싶어서 내 손으로 만든 첫번째 요리
처음은 김치김밥이었다. 소풍 가는 날, 엄마의 손 끝에서 돌돌 말렸다 주르륵 풀리면서 김밥이 만들어지는 것에 놀라 김발의 사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왜인지 모르지만, 집에는 언제나 벽돌만큼이나 두꺼운 김 묶음이 있었는데 네모난 정사각형의 김을 펼치고, 밥솥에 있는 밥을 참기름에 살짝 비벼 펴바른 뒤 냉장고에 있던 총각김치를 넣으면 금세 김밥을 만들 수 있었다. 엄마, 아빠 주려고 만드는 김밥. 누군가를 맛있게 먹이고 싶어서 내 손으로 만든 첫번째 요리다.
90년대에는 흔히 상점 안에 가겟방이라는 공간이 있었고, 일터에서는 사장 혹은 사모가 직접 차린 밥으로 직원들이 다 함께 식사를 하곤 했는데 우리 집도 그랬다. 가끔 너무 바쁜 날은 내가 우리 꽃집의 언니, 오빠들 점심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 메뉴도 김치김밥이었다. 잘 익은 총각무와 참기름 섞은 밥, 김의 조합이니 8살짜리가 했어도 맛은 보장되어있었을 것이다. 손을 닦았는지는 그때의 나만 알겠지만. 전기밥솥을 활용해 밥을 안치는 것도 그때 배웠다.
달리기 대회에서 꼴찌를 해도, 아무렇게나 음을 틀리며 노래를 불러도 칭찬을 받는 나이니 음식을 했던 나는 얼마나 칭찬을 들었을까? 김치김밥으로 요리를 시작한 나에게, 요리란 처음부터 누군가를 먹이기 위한 일이었고, 또 가장 쉽게 칭찬을 받거나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의 생신이나 결혼기념일 등 소소하게 챙겨야하는 가족 행사도 요리를 직접 해서 파티를 하곤 했다. 엄마 친구가 엄마에게 선물한 요리책은 늘 내 방에 있었고, 나는 외식을 하고 싶은 마음보다 그 요리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욕망이 훨씬 컸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 쯤엔, 스스로를 꼬마요리사라고 칭했다. 아빠의 아이디로 온 가족이 PC통신 나우누리를 썼는데 요리동호회 TUBE에는 꼬마요리사(정철규)라는 회원이 있었다. 신문이나 잡지에 나온 요리 레시피를 회원들에게 공유하고, 자게에서 오늘 해먹은 점심이나 저녁의 이야기를 나눴다. 누가 봐도 초딩이었겠지만 나는 꽤 진지했다. 학교에서 집에 오자마자 부리나케 PC통신을 켜고 전문성을 쌓아갔는데 계정주가 나우누리 서비스를 자기마음대로 탈퇴하고 인터넷을 설치하며 내 모든 기록도 날아갔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쉽다.
칼질을 하거나, 불을 사용해서 요리를 하고, PC통신을 하며 레시피를 배우는 나는 같은 또래의 친구들에게 언제나 신기한 세상을 먼저 접하는 아이였다. 덕분에 요리에 있어서는 늘 우쭐댔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5학년 생일 때는 친구들을 불러 요리를 가르쳐주고, 요리를 직접 해보는 참여형 생일파티를 기획했다. 그 특별한 생일파티에 올려면 무려 <요리 필기 시험>을 봐야했다. 내가 낸 10개의 문제를 많이 맞춘 순서대로 생일파티에 올 수 있었다. 그날 내 생일파티에 온 5명의 친구들은 직접 파운드케익을 구워 친구의 생일케익을 만들고, 돼지고기와 야채를 썰어 바베큐폭찹을 만들고, 양상추를 씻고, 참치캔을 따서 참치 샐러드를 만들었다. 아마 그 친구들 부모님이 미리 아셨으면 생일파티가 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애들끼리 위험하다고.
친구들이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같은 순정만화로 잘못된 연애관을 확립하고 있을 때, 혹은 <세일러 문>을 보며 언젠가의 변신을 꿈꿀 때 나를 미치게 한 콘텐츠는 <미스터 초밥왕>, <맛의 달인>같은 일본 만화였다. 그림체도, 내용도 꼬마와는 거리가 먼 요리 만화책을 외우듯이 보며 그림을 따라 그리고 일기장에 레시피를 배꼈다. 특히 미스터 초밥왕은 전어, 전갱이, 보리새우 같은 먹어본 적 없는 재료들이 너무 궁금했다.
그때 내게 초밥이란 ‘00수산'같은 한국식 횟집에서 광어를 시키면 딸려오던 4pcs의 주먹밥 같은 초밥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초밥도 생선살 아래 비치는 초록 와사비가 분명 푸른 곰팡이일 것이라고 생각해 절대 안먹다가, 먹은지 얼마 안되었을 때다. 투니버스에서 짱구가 상영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짱구가 “초밥은 마이쪙~” 하며 먹는 모습에 따라 먹어본거였다. 지금도 가장 먹고 싶은 요리의 상위에는 늘 해산물이 위치하는데, 이때 미스터 초밥왕의 심사위원들의 화려한 맛 평가에 세뇌당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늘 없어서 못 먹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보리새우를 먹고 입안에 태평양이 있다던 심사위원 컷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처음 만난 어른들은 무턱대고 “소민이는 장래희망이 뭐니?” 하고 묻는 시기에 미스터 초밥왕을 봤던 나는 점점 더 요리에 대해 교조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수행평가나 방학숙제를 할 때면 무조건 요리와 관련된 것으로 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 방학숙제로 냈던 요리 스크랩북의 제목은 <요리는 종합예술이다> 였다. 비장한 제목의 그 스크랩북은, 여름방학 두 달 동안 3권을 넘어섰다.
머릿말도 썼는데, - 요리를 단순이 미각을 만족시키는 것이라 보면 곤란하다. 후각이 없인 미각을 제대로 느낄 수 없으며, 씹는 맛, 바삭한 맛 등은 촉각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음식은 보는 것 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한다. 청각은 요리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요리 중 하나인 누룽지탕은 소스를 누룽지에 끼얹는 순간의 맛있는 소리가 요리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청각도 요리의 중요한 감각 중 하나이다. - 라며 사뭇 진지한 내용이었다. 이 글의 포인트는 바로 나는 누룽지탕을 한번도 본적도 없었다는 거다. 이 누룽지탕 이야기는, 나를 또 미치게했던 <요리왕 비룡>의 누룽지탕 에피소드를 보고 썼다. 그리고 사실 친구들에게 우쭐대며 했던 많은 이야기도 미친듯이 스크랩하고, 배껴썼던 기사들에서 본게 대부분이었다.
나는 굉장히 행복했다. 경쟁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누군가 “소민이는 잘 하는게 뭐야?”라고 묻는다면, 전교 어린이 중에 요리를 제일 잘하는 어린이라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노희지에 대한 질투는 있었지만, 역할일 뿐 요리를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에 당당했다.) 그런데 6학년의 어느날, 서점에 놀러갔다가 <꼬마 요리사의 행복한 요리>라는 얇은 요리책을 발견하고야 만다. 얼어붙은 나를 보고선 엄마가 그 요리책을 사주었다.
책의 내용은 뭐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미역국이나 오뎅볶음같은 일상적인 메뉴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대단치도 않은 것 같은 메뉴들인데, 도대체 얼마나 요리를 잘하길래 책까지 내는 걸까!!?? 내 자신감은 상당히 쪼그라들었다. 책을 기획해서 출판하는 일이 아주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엄마는 친하던 잡지사 편집장님까지 데리고 와서(우리집이 마지막으로 잘살던 시절이었다) 소민이도 요리책하나 내자고 내게 달콤한 말을 속삭였지만, 이미 마음이 쪼그라붙은 나는 그런 모든게 너무 두려웠다. 함박스테이크나, 파운드 케익이나, 바베큐 폭찹은 할 줄 알았어도 콩나물국을 끓이는 법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의 자신감을 다시 키워줄 교육적 목적이었던 건지, 엄마가 기세좋게 도와줘서 소년조선일보에 바베큐폭찹 레시피로 나올 수 있었지만 (하필이면 개교기념일에 나와 아무도 몰랐고..) 그 이후로 나는 스스로 기본이 안되어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꼬마요리사 심신행씨, 어디서 뭐하고 사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