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밥 한끼에 몇 만원씩 주고 먹어..?”
“무슨 밥 한끼에 몇 만원씩 주고 먹어..?”
파인다이닝을 가는 사람과 가지 않는 사람을 나누는 이 질문에서,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하는 사람인지 궁금하다. 나의 경우,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조금씩 조금씩 변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야금야금 한번의 다이닝에 소비하는 비용도 높아졌다. 가산 탕진하는 10대 취미에 다이닝이 들어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과연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며 간담이 서늘해진다. 파인다이닝을 시도하기까지에는 너무나 높은 문턱이 있었고 아주 오랜 시간 망설였는데, 문턱을 넘고 보니 신세계가 펼쳐져있었다. 매일 매일 프렌치 레스토랑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한달에 두번만 가자고 다짐해놓곤, 일주일에 두번씩 예약을 잡기도 했었다. 다행히 남들 다 좋아하는 것에 열정이 사그러드는 이상한 심보가 있어, 세상이 파인다이닝에 열광하자 갑자기 내 속도를 멈추고 그동안 왜 그렇게 파인다이닝이 좋았는지 생각해보게 된거다.
파인다이닝에 갈까, 말까하는 마음의 가장 큰 두려움은 뭘까? 큰 비용을 쓰는 일이니, 돈 날렸다,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소비 실패'의 감각일 것이다. 비쌀만하다고 납득이 될만한 소비를 하고 싶지만, 너무 돈이 아깝다면? 돈 쓰고 후회하는 기분 정말 별로니까. 그리고 그 판단의 기준이 매우 주관적이라는 것도 문제다. 비싼건 다 비싼 이유가 있다고, 그러니까 다들 그렇게 돈쓰고 즐기는 것일텐데 이게 도대체 나의 입맛엔 내 평소에 먹는 음식과 뭐가 다른건지, 뭐가 더 맛있다는건지, 그러니까 이게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는게…. 내 입맛이 싸구려라 그런건지 찝찝한 생각을 남기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나라는 사람, 커피는 산미가 있는 커피를 선호하더라도 원두별 차이를 느끼는 예민한 혀 끝을 가지진 못한 사람, 와인도 맛있다와 맛없다만 있고, 요리를 좋아하면서도 낯설지만 익숙한 음식을 먹었을 때 들어간 재료나 비슷한 향, 맛을 떠올리는 일엔 영 젬병인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학교 앞의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리조또와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은 리조또가 그렇게 다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다르다.) 동네 횟집에서 먹은 회와 어쩌구 저쩌구한 경력을 가진 스시야에서 한점씩 내어주는 회가 내게 주는 만족감이 다를까? 어쨌든 비싼 무언가를 즐기려면, 그걸 즐길만한 안목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파인다이닝의 세계는 아주 멀리에 있는 곳이었다.
왜 이런걸 물어볼 언니도, 같이 경험 해보고 싶어하는 친구도 없었을까? 실패할지도 모르는 경험을 하자고, 친구를 꼬득여 큰 돈을 쓰게 할 용기는 없는데 사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혼자 가도 되는건지도 모르겠는 마음. 어쨌든 그런 곳은 특별한 날 커플들이 가는 곳이니까 후기를 찾기도 힘들었고. 혼자 가는 것이 나는 잘 모르는 그런 “예의"에 어긋나는 일은 아닐지 엄청 걱정이 됐다. 지금이라면 그 때의 나에게 “전화해서 물어봐.” 라고 충고해줄 것 같은데, 아마 그런 충고를 들었어도 그때의 나는 전화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전화예약을 고수하는 레스토랑이 있지만, 전화를 할 때 괜시리 마음이 긴장되고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도쿄 여행을 가게 되었다. 한창 다이닝에 관심만 많을 때여서 도쿄여행의 코스가 요리와 재료, 식도락에 관한 장소들로 꽉꽉 찼다. 이때다 싶은 마음으로, 도쿄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들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이때도 제대로 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다. 내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가서, 엄청난 식사를 먹고 감동받을만한 식견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혹시나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레스토랑이 있다면 방문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조엘로부숑이라는 레스토랑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셰프인 조엘로부숑이 도쿄에 굉장히 여러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선택한 곳은 그중에서도 ‘라틀리에 조엘로부숑'이란 곳이었다. 현대적인 프렌치 퀴진을 파는 곳인데 레스토랑 조엘로부숑보다는 더 캐주얼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다소 딱딱하거나 격식을 차리지는 않는 곳이란 소개를 보았다. 가격대도 캐쥬얼했다. 아마 지금도 그럴텐데, 각자의 선택에 따라서 런치기준 최소 3만원 정도에서 10만원대까지의 예산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 그렇듯, 나는 6만원대의 4코스를 예약했다. 웰컴디쉬 한입거리인 아뮤즈가 나오고, 디저트 이후의 차와 곁들일 다과 쁘띠프루가 나오니 굳이 서빙횟수를 따지자면 6코스였으니 적당한 경험에 적당한 가격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의 식사는 지금도 종종 생각이 난다. 분명히 아는 재료들로 만든 요리이지만, 익숙하고도 낯설어 새로운 느낌. 건들기가 아깝고, 줄어드는게 아쉬운 메뉴들. 그동안은 혀의 미각세포를 20% 정도만 사용해도 식사에 무리가 없었다면, 혀 구석구석의 세포를 깨워, 적어도 60%의 미각세포가 열일하며 입 안에서의 축제를 즐기는 맛. 달고 시고 짠 맛, 향긋하고 고소하고 풍성한 향이 입안을, 입과 코가 연결된 기도를 채웠고, 즐거움이 몸 안을 채우는 느낌이었다. 사유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오장육부가 다 반가워하는 맛. 반가워! 반가워! 반가워! 반가워!반가워! 식사는 정말 최고였는데, 식사의 경험은 새롭진 않았다. 자유롭고 캐쥬얼한 분위기라는 말처럼, 나는 쇼파나 식탁이 아닌 오픈키친의 바체어에 앉아 주방을 바라보며 식사했고, 밥먹는 내내 셰프와 서버들이 수시로 음식은 괜찮냐고 말을 걸어왔다. 나의 상태를 정중히 살피며 말을 거는 서비스라기보다, 무슨 펍에 온 것 같은 분위기. 그러자 캐쥬얼하지 않은 식당이 너무 궁금해졌다. 캐주얼하지 않은 레스토랑에서, 오장육부가 반가워하는 음식을 먹으면 어떨까?
그렇게 두번째 파인다이닝은 아주 격조높은 곳에서, 이왕이면 미슐랭 스타도 받은 곳에서 하고싶었다. (조엘로부숑도 미슐랭 스타를 받은 셰프이기는 하다) 미슐랭 스타는 프랑스의 타이어 회사인 미쉐린타이어에서 발간하는 미식 가이드북 미쉐린 가이드에서 식당에 등급을 매기는 방식이다. 별이 하나면 맛있는 식당이라는 뜻이고 두개면 그 식당을 굳이 찾아가볼만하다는 뜻이고, 세개면 그 식당을 찾아가기 위해 먼 여행을 떠나볼만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마침 나는 미식의 성지라고 불리는 파리 여행을 예정하고 있었다. 원조 미슐랭 레스토랑의 나라에서 격조높은 파인다이닝을 경험하고 싶어서 폭풍 검색을 했고 루카스 칼든이라는 레스토랑을 선택했다. 클래식한 음식을 내고, 해산물을 잘 다루기로 유명한 곳이라는 전문가의 말을 참고했고 무엇보다 과거에 쓰리스타까지 받았었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내부 분위기, 인테리어, 식기 등을 갖추고 있어 쓰리스타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말에 완벽한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달랐다. 비가 오는 날, 비를 맞으며 등장했는데 입구에서부터 직원 두명이 나의 옷을 받아들고 나만을 에스코트하며 널찍한 쇼파로 나를 안내했다. 커다란 식탁과 자리가 나만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메뉴를 설명하기에 앞서, 샴페인을 권하는데 이미 기분에 취해버려 30유로 정도에 샴페인 한잔을 시켜버렸다. 샴페인 맛도 모르던 때인데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그랑크뤼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그걸 청했다. 메뉴를 고르는 과정에도 꼼꼼한 메뉴 소개가 이어졌고, 알러지나 가리는 음식을 체크했다. 음식 하나하나가 주는 정교하고 과한 정성! 그런게 느껴지는 식사였다. (사실일리 없겠지만) 1분 37초 익힌 가리비와 1분 38초 익힌 가리비의 차이를 구별할 수도 있을 것 같이 완벽을 기한 상태의 무언가를 접한다는, 진짜 Fine을 접하는 기분이었달까.
라틀리에 조엘로부숑에서 그렇게 캐쥬얼하게 식사를 하고 이것저것 추가해 점심으로 7만원을 썼는데, 루카스 칼든에서 이 저택의 공주님이 된 것 같은 섬세한 서비스를 풀타임으로 받으며 꽉채운 풀코스 저녁을 먹고, 샴페인도 한잔 하고 낸 돈이 16만원 정도였다. 이때 파인다이닝의 가격을 대하는 나의 기준이나 태도가 조금 달라졌던 것 같다. 그러니까, ‘밥 한 끼'와 이 경험을 비교할 수 있을까? 인거지. 파인다이닝의 가격이 ‘밥 한끼' 가격인 것일까? 이런것들을 따졌을 때, 루카스칼튼에서의 식사는 아직까지 어디에서도 다시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으로 남아있고, 이제까지 경험한 어떤 식당보다 저렴하고 퀄리티높은 식사였다.
사실 그날의 식사 경험은 완벽하게 아름다운 장소, 황홀한 음식에도 불구하고 격조있는 클래식한 레스토랑의 분위기가 묵직하게 가부장적이라(?) 내게 아주 편안하고 즐겁진 않았다.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아가씨 취급을 받는 것을 즐겨도 좋을텐데, 그게 굉장히 낯설고 조금 불편했다. 소비의 주체로서 존중받기 보다, 정말 아가씨 취급을 받는 기분이었는데… 음.. 몇시간씩 식사한다는 프랑스에 온 만큼 식사는 정말 길었고, 첫번째 메인이 끝날 때부터 배가 불러서 더 다른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 긴 시간동안 연극같은 상황에서 아가씨 대접을 받으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한국에서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가볼 용기가 생겼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그동안 생각만 하고, 궁금해만 했던 레스토랑들을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인 예약이 대부분 가능했다. 안 받는 곳은 안 가면 그만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혼자 왔든 둘이 왔든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입증하는 방식으로 서비스가 이루어진다. 때로는 혼자왔기 때문에 더 챙겨주는 소믈리에도 있지만 그게 절대로 불편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원한다면 와인을 시켜도 좋지만, 주문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선택지들은, 매출을 늘리기 위한 영업이기도 하지만 사실 고객에게 주어진 다양한 선택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르는 건 물어보면 되고, 잘 안들리면 확인하면 되고, 문제가 있으면 이야기하면 된다. 마치 호텔에 가서 리셉션에서 제공하는 이런 저런 서비스와 컨시어지를 이용하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그 접시와 인테리어와 서비스와 내 질문에 답하는 서버의 시간과 그 모든 것에 값을 지불하고 있으니 누리면 된다. 나를 위해 준비된 어떤 완벽한 시간을 구석구석. (마음껏 누리고 맘대로 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구!)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엔 내 돈 내고 비싼 음식을 먹는데도 괜히 눈치를 보게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머릿속엔 자꾸 “이래도 되나?” 하는 물음표가 생기고, 이상한 말이지만 혹시나 ‘혼날까봐' 자꾸 긴장이 되고. 그럴땐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는 나의 마음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보고 싶다. 우리는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는 경험을 한다. 식당은 돈을 벌고, 우리는 배가 불러진다. 그런데 파인다이닝의 세계는 거기에 자꾸 다른게 끼어든다. 나는 그게 ‘환대'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집에 오는 손님을 잘 대접해서 돌아가게 하고싶은 마음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서비스의 가장 기본값이라고.
이왕 오늘 이 레스토랑에 고객이 되기로 했다면, 그들은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당신에게 환대를 경험하게 할 것이고 그게 자신들이 레스토랑이 가진 격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환대할 때, 그것을 잘 받는 일도 연습이 필요하다. 뻘쭘하고 쭈뼛대게 되니까. 그런데 환대받는 경험은 우리를 환대할 수 있는 사람으로도 만들어준다. 위축되는 마음이 자꾸 드는 것은 환대받지 못한 순간의 당황스럽고 난처한 기억들이 우리 안에 남아있어서일 것이다. 그런 마음을 환대받고 환대할 줄 아는 마음으로 바꾸어가는 것은 나 자신에게 정말 좋은 선물이 된다. 그러니까 그동안 파인다이닝 세계에 들어서기를 두려워했다면, 나에게 환대를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시도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