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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래 Oct 30. 2022

쭈글해지는 마음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처음 파인다이닝 리뷰를 올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다른 것보다 ‘반응없음'에 깜짝 놀랐다. 왠지 마음속으로는 이런 델 나중에 같이 가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친구나 지인들도 ‘좋아요' 이상의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6개월, 12개월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경험을 기록하는 행위에 있어 누군가의 반응이 큰 동력인 편이라, 리뷰를 올리는 일이 급격히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파인다이닝에 다들 관심이 많을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니었다는 것도 속상한 일이었다.


아주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야 그 무관심이 어려움이라는 두꺼운 갑옷을 입은 호기심으로 꽉 찬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유명한 리뷰어나 미식가가 아닌 친구의 다이닝 리뷰에도 ‘어땠어?’ ‘정말 맛있어?’ 물어보는 일이 어려운 일인 것이다. 친근한 내가 파인다이닝 이야기를 하면 파인다이닝이 만만해보일 줄 알았는데, 도리어 내가 ‘파인다이닝 다니는 취향'을 가진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렸다니. 파인다이닝은 도대체 왜 이런 존재일까?


친구들에게 파인다이닝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답변을 받았다.


“잘 모르는 요리라 내가 만족할지 확신이 없어"

“혼자가도 되는건지 궁금해"

“내가 부족해서 음식을 잘 못즐기면 어쩌지? 비싼돈 내고 후회하면 어쩌지?”

“예약하기가 힘들고, 뭘 먹게 될지? 내가 들이는 비용에 합당한 정보값이 없어"

“순서, 식기 사용법 이런걸 잘 알아야 망신당하지 않을 것 같아”

“식당의 예절을 잘 모르니까, 내가 실수하진 않을까 싶어서"


아무래도 한끼 식사로는 투자비용이 크다보니, 비용 대비 만족도에 대한 의심을 해갈해줄만한 정보값이 없는 것, ‘아는만큼' 즐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리고 ‘교양'의 영역에서 파인다이닝이 다뤄지는 지점이 모두 골고루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막연히 예상은 했지만, 친구들의 목소리로 직접 들으니 또 재미있었다. 가격이나 음식에 대한 지식은 차치하더라도, 왠지 긴장을 하게 만드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먼저 이야기를 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지금은 파인다이닝을 방문하기 전에 이런 긴장감을 느낀다면, 예전에는 그러니까 파인다이닝이 이렇게까지 대중적이지 않았을 때는 무엇에 긴장감을 느꼈을까? 나의 경우에는 오페라나 음악회에 가는 일이 긴장감을 주는 일이었다. 그래서 언제 박수를 쳐야할지, 말아야할지, 일어나야할지, 말아야할지, 이 사람들은 왜 웃는지 등 그 씬의 분위기가 전혀 읽히지 않고 나와 동떨어지게 흘러가는 것을 가장 크게 느낀 경험이었다. 지금도 물론 음악적 교양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지금도 음악회에 갈 때 긴장을 하지는 않는다. 적당한 수준의 상식에서 내가 즐길 수 있는 만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클럽에 처음 갈 때도 이런 마음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잘 즐기지 못하고 뚝딱대면 어떡하지?)


나의 경우 음악적 교양에 특별히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고 한다면, 또 나의 역사에서 가까웠던 남자친구들은 같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자고 하면 그렇게나 긴장하고 뚝딱였다. 만나기 전에 미리 예습하고 온듯한 티가 철철 흐르는 배경 지식을 언급하기도 하고, 상황상 전혀 맥락에 맞지 않는 감상을 읊기도 하면서. 사실 내게 미술관은 쾌적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걸려있고 그래서 할말이 생기거나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지 뭔가서로의 배경지식을 뽐내는 곳은 아니었는데, 동행했던 친구들에겐 그런 곳처럼 느껴졌었나보다. 우리가 파인다이닝에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미술관에 따라왔던 지난 남자친구들의 태도와 비슷한 것 아닐까?


파인다이닝의 ‘fine’은 아주 좋은 것의 의미보다는 순수미술을 뜻할 때 ‘fine art’에 가까운 의미가 아닐까 싶다. 국내 유명 파인다이닝 업장들의 마진률은 5%라고 한다. 아주 일반적으로, 적자를 면하며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업종 관계없이 최소 30%의 마진률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마진률은 공간, 인적관리비용 등등을 다 포함하여 계산하는 것이다. 파인다이닝 매장들은 우선 고객이 있을 곳에 있어야 할테니, 그리고 그 고객들의 미감과 취향을 맞춰야할테니, 셰프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떳떳한 재료를 사용하여 자신을 내세울만한 음식을 만들어야 할테니, 전방위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그래서 TV에 출연하는 유명셰프가 되어야, 겨우 적자를 면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종종 ‘끼니'라고도 불리는 식사는 ‘fine’이라는 단어를 붙일 정도로 예술의 대상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문학, 음악, 미술처럼 우리가 전통적으로 ‘예술'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온 것들과 음식은 좀 다르니까. 하지만 패션도 오트쿠뛰르의 영역이 있고, 건축도 예술과 실용의 어딘가에서 완벽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음식에서도 그런 영역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쉽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시문학이나, 음악이나, 미술이나, 건축과 달리 음식은 기본적으로 맛볼 수 있고, 맛의 감각은 지식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평등하니까, 어찌보면 가장 문턱낮고 쉬운 종류의 fine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패션에서 예술을 즐기려고 한다면, 도대체 이런 옷을 입으라고 .. 만든걸까? 라는 생각이 드는 괴상하고 망측한 작품에 박수를 보내는 셀럽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음식의 영역에서 예술을 즐기려고 한다면 우선은 그냥 돈을 좀 내면 된다. 그조차 한 벌에 1,000만원을 호가하기도 하는 패션의 영역이나, 억대로 넘어가야하는 건축의 영역과 달리, 많이 들어봐야 월급의 일정부분으로 해결해볼 수 있는 금액이니까 오히려 좀 싸게 느껴지지는 않는지..?


그래서 파인다이닝은 여느 예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음식을 좋아하고,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음식을 둘러싼 철학에 함께 관심을 갖고 경도될 때 1차적인 만족감인 ‘맛'을 넘어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생겨난다. 만족도가 훨씬 커지는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맛없음' 자체를 철학으로 놓고 우기는 매장은 크게 성공하거나 영업을 지속하기가 어렵다. 이런 부분을 따져본다면, 밑져야 본전은 되는! 선택이기도 한것이다.


물론 파인다이닝 매장에 가서 기대하는 ‘맛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합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고급진 불고긴데? 고급진 KFC인데? 하는 식으로 감상할 예정이라면 … 나도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 ‘고급진'의 차이를 이해하고,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파인다이닝에 요구되는 약간의 태도 아닐까 싶다. 그 ‘고급진'으로 뭉뚱그려지는 차이를 내기 위해서, 36시간동안 사람이 들여다보고 숙성시키는 과정이 추가되기도 하고, 셰프가 옥상텃밭에서 직접 기르고 수확한 희귀 향신료가 들어가기도 하고, 참깨를 직접 볶아 기름을 뽑아내는 식으로 진심을 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건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래서 fine art에 가깝다고, 그 무모함이 닮았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뭐 피카소도, 세잔도 살아 생전엔 출품한 작품을 두고 “이게 그림이냐!!” 이런 소리를 들었다고 하니까, “이게 음식이냐!” 이런 소리를 듣는게 아니라면 괜찮은 것 아닐까?


"영국 조경 정원의 발전 이면에 자연을 묘사하는 시와 편지가 있다면, 자연 관광업의 발전 이면에는 여행안내서가 있다. 오늘날의 여행안내서나 여행기와 마찬가지로, 어디가서 무엇을 보아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그중에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책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윌리엄 길핀이라는 성직자의 책이다. 자연 감상을 좋아한다는 것은 세련된 취향의 소유자라는 표시였고, 세련된 취향을 원하는 사람은 자연감상법을 배우고자 했다. 길핀이 당대 독자들에게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은, (길핀의) 다음 세대 작가들이 포크의 종류별 사용법과 정찬 손님으로 갔을 때의 인사법 따위를 가르쳐줌으로써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최근에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다. 길핀은 1700년대의 영국 사람이다. 이 글에 따르면 당시 영국사람들은 그저 배경에 불과했던 자연을 감상의 대상으로 여기고 산책하며 사색을 끌어내는 교양의 영역으로 인지하고 수용하는 것을 글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우리가 90년대 여러가지 글로벌한 애티튜드를 글로 익히는 과정에서 보았던 수없는 포크와 나이프 역시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 1800년대의 작가들이 양식을 갖춘 교양으로 만들고, 대중을 학습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말! 완전 뼛속 깊은 영국인들도 1800년대가 되어서야 귀족들이 어떻게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거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는데, ‘자연감상법' 같은 걸 이제와서 우리가 배울 필요가 없는 것처럼 ‘포크와 나이프 사용법'도 얼마나 괴랄한 예의범절인지를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어릴때 글로벌 애티튜드로 배웠던 촤르륵~ 깔린 수저와 포크들은 2022년의 파인다이닝 매장에선 찾아보기가 어렵다. 요새의 기본값은 음식이 나올 때마다 알맞은 커틀러리를 교환해준다는 것. 그리고 음식의 국적과 정체성이 서로 섞이고 영향을 주면서 한국식 수저가 나오기도 하고, 일식 젓가락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1800년대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음식문화가 진화해버렸다. 음식을 먹고 나서 접시를 치워갈 때, 나는 항상 사용한 커틀러리를 접시에 올려놓고 치워달라고 하는 편이다. 만약 그 레스토랑의 정책이 요리마다 커틀러리를 교체해주지 않는 곳이라면, 서버가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커트러리를 내 식탁위에 정리해주고 접시만 가져간다. 하지만 웬만하면 ‘교체를 희망한다'는 나의 제스츄어를 받아주는 편이다. 비싼 돈 내고 먹는 훌륭한 요리니까, 음식 맛 섞이지 않게 먹고싶다는데 어떤 셰프가 “먹던 식기로 드십시오!!” 하겠는가. 다만 ‘한식'을 주요 정체성으로 삼는 곳들은 수저를 교환해주지 않는 경우가 조금 더 많은 것 같다.


어릴때 배우던 어떤 그림에서 본 것처럼 포크와 나이프가 3-4개씩 촤르르 깔린 매장도 없지는 않다. 그건 그거 나름대로 재미있는데, “바깥쪽부터였나?”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어 신경써서 먹다보면 나 말고 누구도 내 포크 나이프가 몇번째인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만약 잘못된 순서로 포크/나이프를 사용했고, 그게 음식먹는데 조금 불편을 끼칠 정도라면 (예를 들어 스테이크용 나이프는 다른 나이프로 대체하기가 어렵다) 서버가 손님이 눈치채거나 당황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커틀러리를 가져다 주는지 안가져다주는지로 그 레스토랑의 서비스를 평가해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잘못한건 내가 아니라, 레스토랑이 되는거다. 8명 정도가 커다란 원형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서로의 교양됨을 평가하고 판단하기 위해 파인다이닝에 간게 아니라면, 왼쪽이 내 빵, 오른쪽이 내 잔도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보통 둘이가거나 넷이가거나 내꺼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는 굉장히 명확하니까.


아, 그리고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 물어봤을 때 직원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여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도록 하자. 나의 긴장을 감추고서, ‘몰라서 물어보는거 맞나?’ 싶은 생각이 들게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한다. 많은 예술 공간들이 ‘친절한 설명'을 생략하는데에 반해 파인다이닝 매장들은 이 예술의 장르가 실생활에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음식'이라는 사실 때문에 설명하고, 안내하는 것을 기본값으로 탑재하고 있다. 만약에 사용하는 단어나, 재료의 종류를 들어도 모르겠다면, 한번 더 질문해도 좋다. 노련한 사람들은 상세히 설명해줄텐데, 또 많은 서버들이 질문을 받으면 자기도 몰라 당황하며 ‘확인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라는 식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러면 서로 피차 모르는게 확인되기 때문에 마음도 더 편해진다.


(때때로 다이닝 리뷰에서는 가르치려는 태도가 짜증났다,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대충 말해주더라- 라는 등의 후기가 올라오기도 한다. 나도 두어번 말도 안되는 경우를 만나긴 했는데 그런 경우는 정말 흔치 않고, 그게 정말 기분나쁠 정도로 문제가 되었다면 매니저나 셰프를 불러서 조근조근 문제 개선을 요구해볼 수 있다. 나는 그 레스토랑의 오너가 해시태그 검색을 굉장히 열심히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해시태그를 잔뜩 달아 그날 있었던 일을 상세히 적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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