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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래 Aug 02. 2023

엄마나 그렇게 살아

우리 사이, 새로고침이 필요해 



"그래도 가족은 같이 살아야지."


그 순간 머릿 속에서 뭔가 툭, 끊어졌다. 

그 말은 25살이 되면 독립하라고 학창시절부터 엄마가 내게 해온 말이 아니라, 가출한 나에게 아빠가 보낸 문자 내용과 똑같았다. 나에게 늘 엄마와 아빠는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 순간 그런 구분이 없어졌다. 둘 다 내 인생 말아먹으려고 작정했어? 물론 그럴 리 없었겠지만, 의도와 달리 부모의 어떤 선택은 자식에게 그럴 수도 있는 법이다. 


"나는 엄마, 집을 나온게 아니라 그 시궁창을 탈출한거야. 얼마나 힘들게 탈출했는지 알아? 내가 어떻게 기어나왔는지 알아? 근데 나를 다시 끌어앉히려고해? 엄마나 그렇게 살아. 난 내 힘으로 나올테니까 가족이 그렇게 중요하면 엄마나 그렇게 살아." 


그 날 그 말을 한 건 나였지만 내가 아니었다. 그 말을 쏟아낼 때의 쾌감이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입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쾌감일까? 나는 지금도 그 말을 하는 나의 모습이 낯설다. 준비한 듯이 터져나왔던 그 말은 내가 오랫동안 꼭꼭 눌러삼켰던 그런 마음이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쏟아낸 말 이후에 나도 내 선택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고, 엄마도 그때서야 알게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미안하다. 앞으로 그런 말 안할게." 


그 이후로 엄마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종종 엄마를 만났지만, 엄마가 실제로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지 못한채 오랫만에 만난 친구처럼 가벼운 근황이나 나누고 돌아가려고 노력했다. 엄마와의 대화가 때때로 그렇듯이 알 수 없는 지점에서 어디론가 튀거나, 터지거나, 꺾이는 바람에 서로 본의 아닌 큰소리를 내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엄마는 '그런 말' 안하기로 한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속상한 날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나는 못 본 척하기로 했다. 하나라도 탈출해야 하니까. 


그러다 예상치 못하게 아빠가 세상을 떠났고, 우린 해방되었다. 새로운 삶과 질서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그 사이에 조금 달라진 내가 가족의 세계에 다시 등장했다. 이렇게 저렇게 또 다른 혈연들과 얽혀있던 관계는 어지간히 정리되었다. 나는 이 새로운 가족이 다시 써내려가는 관계가 가끔 감격스러웠다. 가족이 있었는데요, 없었다가 있었습니다. 없다가 있으니까 뭐랄까.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았나보다. 이 경험이 특별한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집이나 자식의 마음은 멀리 멀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떠나기 마련이다. 돌아올 때도 있고, 안 돌아올 때도 있지만. 


1년 전 어느날(탈출한지는 9년째 되던 해) 상담을 받다가 내 안에 있는 이 가족의 개념을, 사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발견한 적이 있다. 


"소민씨는 이 그림의 한 가운데에 가족을 상징하는 인형을 놔뒀어요. 소민씨에게 가족이 어떤 의미인가요?" 


성인 여성이 한 손엔 팔을, 한 손엔 아들을 끌어안고 있는 그 인형을 처음 보았을 때 난 3개나 고를 필요 없이 이거 하나면 우리 가족을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질문을 받고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상담사는 조용히 기다렸다. 호흡이 좀 진정되고서, 내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서 또 처음으로 나에게 그 가출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집을 나오면서, 이젠 나에게 가족이 없다. 이런 선택을 하고 나왔었나봐요. 거처를 옮기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나는 고아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가족에 대한 연결을 끊어내려고 했어요.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땐 그랬어요. 그게 엄마랑 동생한테 너무 미안해요. 그 집에 엄마와 동생을 버리고 왔던게. 그러니까 내가 고아인게 아니라 그 반대인 (어쩌구)"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세상에, 가장 친한 친구였던 딸이 싸늘한 표정으로 떠난 뒤 혼자 남겨진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해서 힘을 내던 사람의 마음은. 사느라 급급해 떠올릴 여유도 없었던 나의 독립생활기는 고군분투 폭풍성장기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는데, 사실은 그 좋은 세상으로 나 혼자 떠난 것이 오랫동안 마음에 빚처럼 남았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한 줄로 정리되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만들었다. 그 감정은 '다시는 절대로 엄마를 혼자 구린 세상에 버리고 가지 않을게' 라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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