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엄마가 모든 걸 다 나에게 이야기하는 집이었다. 엄마는 종종 "애들도 알 건 알아야 해." 같은 말을 했다. 나에게 직접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들리는 그 말은 나의 선택적 조숙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어릴 때 그렇듯 나도 어른들의 세계를 빨리 알고 싶었고, 철 들었다, 어른스럽다, 너 이런 이야기를 다 알아들어? 같은 어른들의 말이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도 모르는 것이 생기면 내게 물었고, 나는 꼴에 좀 으스댔던 것 같다. 거기에 더해서 나는 집안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르는 친구들이 자식으로서의 제 몫을 덜하고 있다고 느꼈다. "애들도 알 건 알아야 해."
엄마와 아빠는 현저히 다른 교육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와 더 가깝고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아빠의 반대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나는 "애들도 알 건 알아야 해." 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만큼이나 어렸던 엄마도 "알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알 것"에 대해 부부 간에 합의가 되었어야 하는 것 아닌지 생각한다. 어쨌든 나에겐 너무나 많은 자극과 간접 경험치가 주어졌다. 엄마가 말 해주는 것 말고도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그랬다. 우리집엔 누구도 숨을 곳이 별로 없었다.
나는 오히려 엄마한테 많은 걸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건 내 성격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때도 지금도 비밀이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집에서만큼은 예외였는데 아마 모든 걸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며 가족에게 내가 너무 알려지는 것이 싫었을 수도 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그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는데, 엄마가 혹은 아빠나 할머니가 나에 대해서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건 너무 싫으니까. 엄마는 종종 나에게 음흉하다, 친가 쪽을 닮았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반대로 이야기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외가와 극단적으로 숨기는 친가 사이에서 (만나도 어떻게 이렇게 만났어...?) 나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다가, 극단적으로 숨기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 아빠만 몰랐을 뿐이다.
만약 엄마가 어른들의 일을 아이들에게 숨겨야한다는 교육관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나는 지금보다 덜 찌든 30대가 될 수 있었을까?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상상이 되지 않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엄마와의 관계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보여주는 것 너머의 엄마라는 사람과 삶을 모르며 자랐을 거고, 커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수 있다. 엄마가 많이 이야기하고 노출해준 덕에 나는 이런 엄마, 저런 엄마, 또 그런 엄마의 모습을 모두 보았고, 통합적으로 엄마를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엄마와 나의 관계에서 의아함을 느꼈던 순간은 20대 중반 쯤이었던 것 같다. (시간은 10대 후반인지, 20대 초반인지 중반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때 엄마는 늘 자리를 지켜야했던 가게를 벗어나 지역 중심으로 조직되는 소위 '관변단체'라는 곳들에서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다시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20몇년 만의, 사실상 첫 사회생활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각자의 환경에서 각자의 방식과 경험으로 50년 이상을 살아온 사람들과의 첫 사회생활이 엄마에게 결코 녹록치 않았던 것 같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질 않지만, 나는 그때 "엄마 그 이유를 모르겠어?" 라고 물었다. 엄마는 너무 초짜 중에 초짜였다.
언제나 무엇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엄마였고, 무엇을 물어보는 사람은 나였는데. 엄마의 속상함 토로에서 시작된 그날의 고민상담은 엄마의 인생에서 내가 새로운 딸의 역할을 갖게 된 순간이었다. 20대 중반의 나라고 사회생활을 얼마나 해봤겠냐만은 4-5년을 빼곡 바깥으로 나돌았던 사람으로서, 엄마가 나와 같은 실수를 하거나 나와 같은 속상함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기억이 난다.
엄마가 나와 엄마의 모습, 딸의 모습으로만 관계를 맺었다면 아마 나는 그때 엄마에게 좋은 고민 파트너가 되어주지 못했을 것 같다. 아마 내가 알고 있는 단편적인 엄마의 모습만으로 엄마를 속단했거나, 혹은 상대방의 입장에 나를 대입해서 이야기하거나, 내가 엄마라면, 같은 납작한 방식으로 고민에 접근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살면서 얻게 된 엄마에 대한 정보값이 엄마가 기억하는 엄마 자신을 넘어설 정도로 많았고, 나는 그 모든 엄마의 모습은 관찰만 했을 뿐 직접 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한걸음 물러나서 상황을 봐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의 이런 모습과 저런 모습을 함께 보면서. 엄마가 좀 더 상황과 관계를 잘 주도할 수 있길 바라면서.
가까운 이들과의 갈등은 우리가 가깝다는 그 사실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너무 가까우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내가 엄마를 통합적으로 인지하고 대하려고 노력하는 요즘도, 엄마는 나를 키우면서 본 단편적인 모습으로 "넌 좀 이런 애잖아." "넌 좀 그런 편이잖아." 라고 속단한다. 어릴 때처럼 발끈하거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다고 버튼이 눌리진 않지만 마음 속 깊은 곳이 꿈틀대는 느낌은 여전하다. 다만 나는 엄마 말대로, 친가를 닮아 음흉해서 나의 정보를 잘 노출하지 않았으니 어느정도는 내 탓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꾹 눌러본다. 전보다는 엄마에게 많은 걸 나누며 살고 있다. 나라는 사람을 엄마가 더 잘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서. 나의 이런 모습과 저런 모습을 통합적으로 인지하고 그런 딸을 발견했으면 좋겠어서.
엄마도 알 건 알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