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콩을 탓하지 말아야…
아빠의 외모가 어떤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엄마는 전형적인 서구상이다. (어릴 때 사진을 언뜻 보면 황신혜가 보이는) 그리고 큰 딸은? 아빠를 닮는다. (보통 큰고모 닮는다고 하는데.. 큰고모도 서구상이다. 나에게선 서구? 찾아볼 수 없음) 자기가 예쁜 줄 알았던 엄마는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예쁠까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핏덩이인채로 태어난 나의 모습에 20대 중반의 엄마는 자뭇 놀랬고, 앨범에 “처음엔 그리 예쁘지 않았단다.” 라는 코멘트를 남기기에 이른다. 한글을 일찍 떼었던 나는, 앨범에서 이 코멘트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린 여자아이들의 삶에 ‘이쁨’ 이라는게 얼마나 큰 개념인지.. 지금 생각해도 좀 이상하게 느껴지지않는지? (지금도 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 나에게 나이테가 있다면 상당히 짙게 남겨져있을 실망의 순간 아니었을까? 너무 어릴 땐데도 아스라히 그 감정의 결이 기억나는 걸 보면.
아이들을 보고서 어른들은 수 없이 외모 이야기를 한다. 엄마 닮았다. 아빠 닮았다. 나에겐 왈가왈부의 의견이 없었다. 나에게 ‘엄마 닮았네!’ 라고 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였다.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빠를 모르거나. 아빠를 모르는 엄마 지인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어른들은 내게 거짓말을 하는거였다. 그게 어른들 나름의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엄마도 나를 볼 때마다 “너는 정말 나를 안 닮았어.” 라는 말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남동생이 태어난 이후론 더 했다. 엄마는 둘째는 좀 다를까 헛된 희망을 품었을까? 나의 백일, 돌 사진과 나란히 놓고 보면 누가 누구인지 분간도 할 수 없을 만큼 똑같은 아기가 태어났다. 거기에 아빠 사진까지 놓으면? 엄마들은 속상할 때 “니네 X씨 집안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데, 우리 엄마의 경우엔 정말 외관으로도 확실하게 정씨 종족이 구별되었을 것이다. 모르는 나라에 떠밀려 온 이방인처럼 외로울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처음 보는 어른들이 ”소민이 예쁘네, 누구 닮았니?“ 하며 예의상 하는 질문에 자동반사적으로 “저희 엄마 못보셨구나?! 저는 아빠 닮았어요. 엄마 닮았으면 예뻤을텐데 하하하” 하며 자조적인 개그를 치는 아이로 성장했다. 어른들이 주고받던 말장난을 그대로 학습하고, 어른들이 있는 자리에서 꺼냈다.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겠지만, 당사자인 내가 직접 끄집어내고 희화화할 때 분위기가 좋아지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어른스러운 말, 개그에 어른들은 박장대소를 했고 당시 담임선생님은 어른 흉내낸다고 조금 걱정하셨던 기억이 난다. 또래들보다 가게 직원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어린이에게 알맞은 환경에서, 어린이가 할법한 생각을 키우는데에 시간을 쓰기보단, 20-30대 언니들이 나를 귀찮아하거나, 재미없어 할까봐 어른들과 놀 궁리를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친구들과 노는 건 그보다 재미가 없었다.) 어쨌든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내가 평온히 안주하던 가족이란 세계에도 사건이 생기고 균열이 생겨났다. 균열은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되었고 고부관계, 부부관계, 아빠의 마음, 엄마의 마음, 그리고 사춘기에 접어든 나의 마음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쪼개졌다. 어느집에나 각기 다른 균열이 생겨나지만 그때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가족에게 마음이 붕 떠버린 어느 날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날은 호프집에서 네 가족이 모두 모여 외식을 하던 날이었는데 (우리집은 주로 호프집에서 가족 외식을 했다) 갑자기 엄마와 아빠 사이에 말싸움이 일어났다. 처음엔 장난이었는데, 서로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말이 세졌다. 말싸움의 주제는 “소민이가 누구를 닮았냐” 였다.
“소민이는 완전 당신 닮았어.”
“무슨 소리야, 당신 닮았지.”
“봐바, 얠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당신 닮았어. 우기지마.”
“?????????”
보다못한 내가 “아니, 그만 좀 해!” 라고 소리칠 때까지 티키타카는 계속되었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한다. 승질이 난 나는, 이게 날 앞에 두고 할 얘기냐, 그냥 싫다고 해라, 따박따박 따져댔다. 사랑이 넘치는 집의 부부였다면, 서로에게 좋은 것을 양보하는(?) 내용으로 상상해볼 수 있겠지만 우리집은 그렇지 않았기에, 엄마가 생각하는 아빠가 어떻고 아빠가 생각하는 엄마가 어떤지, 단점과 흉 위주로 잘 알고 있던 나에게 너무나 충격적이고 슬픈 날이었다. 물론 이 에피소드는 그 이후에도 나의 자조개그의 한 레퍼토리가 되어 다수의 관중 앞에 우리 엄마아빠의 너무함을 고발하는데에 사용되긴 했지만. (자조개그는 집안 내력인가보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아빠에게 있었던 마지막 끈 같은게 떨어져버렸다. 아빠가 자상하지 않아도, 아빠를 보면 마음이 쓰이는 그런게 있었는데 이날 이후로 아빠가 나의 든든한 구석이 될 수 있단 일말의 희망같은게 사라졌던 것 같다. 엄마에게도 기대를 접게 된 사건이었다. 나는 아빠를 닮았기 때문에, 엄마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아무렴 상관 없었다. 사춘기를 지나던 시기라 상처는 오기가 되었고, 이 사건의 캐치프레이즈는 “됐네요!! 나도 둘 다 닮기 싫네요!!!!!!” 가 되었다. 내가 훨씬 잘났는데 무슨 소리야.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20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이걸 쓰는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그때야 기분이 나쁘고 말 일이었지만, 누군가와 연애도 해보고, 미래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여러번의 이별을 겪은 지금은 그날의 대화에 내 경험의 레이어가 쌓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단점을 지적하고, 상대를 탓하고, 나의 불행의 원인을 상대에게서 찾는 눈을 나도 가져봤으니까. 그날 그 자리에서 나는 사랑의 결실이라기 보다, 불행의 증거로 존재했던 것 아닌지.
그런데 웃기게도 요즘 나는 유리나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흘깃 지나치다가 깜짝 놀라곤 한다. 눈매, 코, 입 어느 하나 엄마를 닮은게 없는데도 그렇게 문득 마주치는 나에게서 엄마가 보이기 때문이다. 엄마도 내 나이 쯤부터 그렇게 본인이 할머니를 닮아간다고 말했었는데, 나한테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정말 신기할 노릇이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을 때의 무표정,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 심각한 고민 중인 표정처럼 얼굴의 미세한 근육들은 보고 닮는건지 엄마의 얼굴을 따라간다. 이걸 쓰는 지금도 나도 모르게 턱근육을 꽉 다물고 집중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엄마의 대표적인 일하는 얼굴이다. (노트북 화면에 비춘 나를 보고 깜짝 놀라버린 것은..)
또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아빠 대 엄마+나로 구성되었던 내 세계가 지각변동을 한 후 5년. 공공의 적(?) 없이 엄마와 겪는 세상은 내게 또 엄마에게 우리가 몰랐던 아빠의 입장에 대해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생각하는 배경이 된다. 아빠가 우리 가족에게 또 나에게 가했던 폭력, 무책임한 행동, 하지 말아야했던 일들이 사라지거나 용서가 되지는 않지만, 그리고 지금도 종종 ‘굳이’ 이해해 줘야 해? 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젠는 엄마가 “넌 그런 건 아빠 닮아서 그래.” 라고 할 때 그 말이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엄마와 지내보니 확실히 엄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고, 어떤 부분은 엄마를 닮았지만, 어떤 부분은 엄청나게 아빠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지점이 엄마에게 필요한 부분, 엄마를 보완하는 부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결혼했어?”
사춘기 시절 엄마에게 자주 이렇게 물었는데(라고 쓰고 ‘승질냈는데’라고 읽어야 함), 그때는 엄마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의 나를 보면 너무 명확하다. 엄마, 우리는 좋은 팀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