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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sorim Mar 08. 2016

여행이란, 끝없는 해프닝의 연속. #2

_베를린, 광란의 밤과 맞바꾼 700달러.


모든 일의 시작은 결국 '나'였다.


_

미니멀 호스텔.

내가 베를린에서의 길었던 26일간의 여정 중 대부분을 머물렀던 호스텔의 이름이 바로 '미니멀 호스텔'이다. 상큼한 단발머리에 이니스프리 립라커를 바른 강렬한 오렌지 빛 입술을 뽐내던 패셔너블한 '앤'이 그 운영자이고 덕분에 그녀의 너무도 귀여운 아들인 '유키'를 덤으로 만날 수 있는 안락한 베를린의 호스텔이다.


나의 방은 저 창문 너머에 있었다. 미니멀 호스텔의 커다란 창과 초록 의자.


나는 그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바로 전날 밤, 단 세 개뿐인 안락한 객실의 가장 커다란 6인실의 2번 침대를 사용하고 있었고 내 아래 오른쪽 침대에는 제이미 올리버를 닮은 금발의 곱슬머리를 한 영국에서 날아온 샘이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오던 밤이었다. 곧 떠났지만 내게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나는 언제나 생활과도 같은 여행을 즐겼고 미리 계획을 짜는 일은 벌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 밤은 지독히도 지루했고 호스텔 바로 옆의 강가를 따라 오분쯤 걷다 들어온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마음먹었다.


호스텔 6인실의 내부.


아래층 침대에 누워있던 샘을 불렀다. 커다란 푸른 눈에 동글동글한 코를 가진, 유기농 농장에서 케이터링을 하는 영국 남자였다. 이미 나는 나의 친구와 그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그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후였다. 딱히 큰 공통점이 없어 약간은 어색했던 우리였지만, 나는 그 비 오는 밤의 '나 홀로와의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맥주나 한 잔 하겠느냐고 물었다.


대충 청바지만 입고 널브러져 있던 그는 마침 심심하던 차라는 듯 좋다는 답을 했다. 그렇게 그는 옷을 꿰어 입고 있었고 나는 이층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막 내려오려 사다리에서 다리를 동동 구르고 있던 참이었다. 나의 양 옆 침대를 차지하고 있던 로렌스와 벤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어젯밤 늦게 도착해 낮동안 돌아다니다 이제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룻밤을 셋이 나란히 보내고 나서야 첫인사를 건넸다.


금발에 알고 보니 댄서라던, 그래서 다부진 몸을 가졌던 로렌스와 미얀마에서 국제 협력에 대한 일을 한다던 벤은 런던에서 날아온 고등학교 동창이라 말했다. 그들의 억양은 약간의 런던의 까불거림이 있었지만 대부분 영국의 젠틀함을 담고 있었다.


그렇게 일은 커졌다. 우리는 으레 당연하게 같이 나가는 것이 되었고 옆의 더블룸에 머물던 각각 캘리포니아와 마드리드에서 날아온 중국계 미국인 자매는 그 특유의 하이톤의 캘리포니아 억양으로 즐겁게 함께 나가자 소리쳤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렸다. 그리고 급 결성된 영국인 셋, 미국인 둘 그리고 까만 머리 나로 구성된 '누이쾰른의 한량 육인조'는 의기양양하게 맥주를 향해 호스텔을 나섰다.


호스텔 바로 옆의 강가. 불빛.


_round 1.

"그래 좋아'라는 말을 미국에서는 'Cool!'이라고 말해. 'Okay cool.'"

"진짜 영화 같다, 영국에서는 쿨은 안 쓰고 'Sweet'인데!"


아마 '하하하 난 호주인은 아니라 호주에선 뭐라고 하는 진 모르겠어' 쯤의 말을 던졌었다. 'Bloody Hell'이라니 정말 영국식이다, 너희들의 억양은 정말 미국 영화 속 그대로다, 영국에서 화장실은 토일렛이 아니라 '루'야 등 정신 차리고 보니 영국인 3, 미국인 2 사이에 끼여 영미 문화 차이를 나도 모르게 학습하고 있었다. 정신이 없던 나는 외국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던 그들의 넌 어때란 물음에 진저리를 치며 답했다. "난 정말 영어로도 충분하니까 다른 외국어는 그만 배울래!" 더 배우다가는 머리가 터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벌써 진토닉 두 잔. 아, 서비스로 망고가 들어간 샷도 마셨었지.


_round 2.

이차는 빨간 즉석 사진 부스를 지나 대각선으로 있던 사람이 미어터지던 바였다. 아주 빨갛고 덥수룩하고 수더분한 느낌의 바였다. 선정적 문구를 지닌 오드리 햅번 사진이 걸려 있었고 바 테이블 너머에는 보디 빌더처럼 핫한 바디를 가진 덥수룩한 수염의 언니 아닌 아저씨들이 미니스커트에 힐을 신고 있었다. 그렇다 여기는 게이바였다. 옆 사람과 코를 부딪힐 만큼 가까운 거리로 버티며 일단 우리는 맥주병 하나씩을 들고 모여 섰다. 결국엔 자리를 잡았고 한 명씩 돌아가며 술을 샀다. 신난 캘리걸 매건이 페이스북 친구를 맺자며 모두다 휴대폰을 꺼내보라 보챘고 우리는 즐겁게 온라인 친구가 되었다. 그다음엔 왜였는지 로렌스인가 매건이 갑자기 나에게 샷을 사주겠다는 말을 해서 진 한잔도 원샷했던 것 같다. 그놈의 '한국인=술 잘 마시는 사람' 루머 때문이었던 듯하다.


_round 3.

빠밤. 바로 앞 포토 부스에서 사진 한번 찍어주고 삼차는 이미 "눈이 맞는다 해도 나를 사랑할 리 없는", 얼마 전 그를 깨달은 브라질에 다녀온 영국인 샘이 제안한 베를린의 게이 클럽! 그 유명하다는 베를린의 클럽에 못 가보고 떠나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의 전날 결국 가게 되는구나. 그렇게 택시를 타고 입장료를 내고 손목에 도장을 찍고 코트를 맡기고 그다음은 엄청난 사람들이 안에 있었던 것 까지. 샘과 다섯 명의 '똑바로'들은 아마도 다음날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호스텔로 돌아왔다.



그래, 그 지치고 지쳤던 새벽 나는 이미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고 있었다.



.

다음날 오전 내내 나는 쾡한 얼굴로 호스텔 라운지에 앉아 멍하니 노트북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나의 700달러짜리 새 아이폰 5s가 사라졌던 것이다.


700달러짜리 밤이었다.


알고 보니 바에서 일해 이런 일에 익숙한 로렌스가 전날 수상한 사람을 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샘은 공허한 나의 얼굴에 보험을 들지 그랬냐는 찬물을 뿌렸고 전날 새로 온 한국인 언니와 친절한 앤이 비빔밥을 먹으러 가자고 나를 잡아끌고 나왔을 때에야 나는 입에 무언가를 넣고 씹었다. 오후 4시였다.


검은 옷의 소녀는 Amerika Haus에서 전시하던 'Lore Kruger' 사진전에서의 작가 본인의 모습이다. 그날 오전의 내 모습이었다.


불안한 그 마지막의 저녁, 결국에는 베를린에 머물던 나의 친구를 불러냈다. 어렵게 불러냈다. 연락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리를 지나는 모든 베를린의 사람들은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지만 내게는 없었다. 공중전화를 찾아 헤매고 두 번쯤 허탕을 치고 난 후에야 나는 물어 물어 찾은 전화 카페에서 그녀와 통화를 했다.

"네가 살아 있고 건강하잖아. 그럼 모든 게 괜찮은 거야."

밤이 되어 친구와 다시 찾은 어젯밤 술집의, 하이힐에 올라탄 건장한 바텐더는 팔을 양쪽으로 구부려 알파벳 더블유의 모양을 만들며 어쩔 수 없다는 제스처를 보였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그 늦은 밤 마지막 베를린의 밤거리에서 친구와 칼바람을 맞으며 먹었던 2.5유로짜리 피자는 우습게도 맛이 좋았고, 나는 또다시 하나의 정든 도시를 떠나며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또 그의 마지막 날에.

Nansenstrasse, 그 밤의 거리명. 알 수 없는 그 독일어를 우리는 그 밤에 걸맞는 '넌센스' 스트릿이라 명명했다.


그렇게 베를린은 낯선 도시였고 내게 소중하던 것을 앗아갔지만,

그 700달러 짜리의 밤만큼이나 여전히 내게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곳은 내게 소중한 새로운 인연들과 잊지 못할 그들과의 이야기를 만들어 주었다.


안녕 아이폰, 안녕 베를린.



덧, 누군가 그 새 아이폰을 지금도 자-알 쓰고 있겠지?


(다음 편에 계속.)

in 파리.


_미니멀 호스텔의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페이지.

http://minimal-hostel.webnode.com

https://www.facebook.com/minimalhos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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