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멜버른, 비행기를 놓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는 하얗게 질렸다. 언제나 왜 불길한 예감은 꼭 들어맞는 것일까. 손은 덜덜 떨렸고 내 손에 들려있던 7킬로짜리 택배 상자 따위는 바닥에 집어던져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나는 온통 초록으로 도배된 멜버른의 86번 트램을 타고 이제 막 클리프턴 힐을 지나가는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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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 멜버른을 떠나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러해야만 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 소지자였던 나에게 법적으로 호주에서의 주어진 시간은 일 년 365일이었고 내가 호주 땅을 밟던 그 날이 2014년의 3월 하고도 5일이었기에 이듬해의 2월이 끝나갈 무렵 나는 아쉬움을 머금고 떠나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나의 호주는 돌이켜 완벽했다. 누군가에게 그 완벽함을 입증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완벽이란 것은 행복과도 닮아 있어 상대적인 것이므로, 나에게 나의 호주는 완벽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떠나기 싫었고 따라서 여행을 계획했다. 설레지 않는 마음으로, 모두가 설레어하는,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베를린 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렇게 엄청난 거창한 여행을 계획하기라도 하면 그 떠남이 쉬울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아주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티켓에 적힌 날짜를 다시 한번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다다음주 목요일이라 굳게 믿었다. 그리곤 다음주 목요일이라 믿었고, 이번주 목요일이라 믿었다. 나의 하우스메이트는 자꾸만 네가 떠나는 날이 4일이었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똑똑히 기억하는 호주 땅을 밟던 날짜로부터 꼭 일 년 뒤는 '3월 5일'이라고 단순하게 믿었다. 지나고 보니 옳은 말을 했던 그에게 나는 오히려 서운함을 느꼈었다. 자꾸 내가 떠나는 날짜를 잊어버렸기에.
그 초록의 트램에서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3월 5일부터 365일이라면 분명 3월 4일이어야 할 것인데 왜 내가 떠나는 날은 또다시 5일이지? 이를 떠올린 것은 내가 그날의 일기에 적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벌써 내가 호주에 처음으로 왔던 날과 꼭 같은 3월 5일이다.'
그럴리는 없었다. 나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그제야 깨달았다. 아뿔싸, 나는 그 불가능함을 3월 5일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나의 비행기는 3월 4일 오후 11시 45분에 출발했었고 나는 멜버른에서의 마지막 날을 조금 더 길게 보내려 선택했던 그 출발 시간 덕택에 내가 이 커다란 실수를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실로 비행기의 출발 시간은 3월 4일 오후 11시 45분이었지만, 그 출발 시간 이외의 모든 날짜들은 단 15분 뒤인 3월 5일로 표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의 1000달러짜리 하루는 폭풍 같았다. 내가 가슴 졸이며 삼십 분을 대기해 겨우 통화한 에어베를린 항공사의 직원은 어떠한 조치도 해줄 수 없다는 말과 그저 티켓을 새로 구매해야 한다는 말을 그 짙은 인도 억양을 머금고 내뱉었다. 나는 트램에서 뛰어내려 길바닥에 서있던 참이었다. 그리곤 꼭 같은 오늘 밤에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끊어보려 휴대폰을 눌러댔지만 최저가 항공들은 내가 내 인적 사항을 입력하는 사이에 매진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또한 어떠한 것들은 내가 들고 나오지 조차 않은 여권에 적힌 번호를 요구했다.
그렇게 모든 일을 해결하고, 원래 오늘 하기로 되어있던 한국으로의 짐 부치기와 환전과 친구들에게의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4시였다. 그 끝날 것 같지 않던 폭풍도 그 이른 저녁에는 모두 끝이나 있었다. 나는 행복한 얼굴로 마지막 인사를 하려 들렀던 나의 두 군데의 옛 일터에서 정다운 옛 동료들의 얼굴을 보고 눈물을 줄줄 흘렸었다. 그들은 당황해 나의 어깨를 토닥였고 나는 연신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 그러나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눈물 젖은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그 오전 동안의 모든 서러움이 반가운 얼굴들을 보자 참을 수 없이 터져나왔던 것이다.
내 방에서 한 시간쯤 휴식을 취하고 퀭한 얼굴로 부엌에 고개를 내미니 나의 하우스메이트가 서 있었다. 실은 내가 터무니없게도 비행기를 놓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막상 그의 얼굴을 마주하니 말을 하지 않고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you know what.. my flight WAS..."
나는 그렇게 나의 비행기에 대해 '과거형'을 서술했고 그의 표정은 놀라움으로 일그러졌다. 내게 짐 정리와 여행 계획을 미리미리 잘 준비한다며 칭찬을 했던 그였다. 그랬다. 그렇게 깔끔하게 처리했던 나의 '멜버른을 떠남'은 이렇게 예상조차 하지 못한 곳에서 너저분해졌다.
나는 그 이외의 다른 하우스메이트들에게는 이를 비밀로 하기로 했다. 정신 놓고 사는 여자애 정도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저녁 여섯 시가 되고 날은 어둑어둑해졌다. 그즈음엔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모든 일이 계획대로 아름답게 돌아가고 있음을 연기했다. 그저 이따금 사실을 아는 하우스메이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눈썹을 씰룩였던 것을 빼고 말이다.
원래의 계획대로 제임스 스트리트의 이탈리안 쉐어 하우스의 2층 식구들은 내게 마지막 따뜻한 저녁을 차려 주었다. 몇 시간 뒤의 떠남을 믿을 수 없게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들을 했고 원래 약속이 있던 나의 하우스메이트는 못내 내가 마음에 걸렸던지 나가지 않고 집에 남았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달쯤 함께 지냈던 가이에게는 그가 너무도 좋아했던 나의 초코칩 쿠키 레시피를 적어 선물했고, 나의 하우스메이트에게는 그와 놀라울 만큼 꼭 같이 생긴 일러스트를 그려 넣은 짤막한 이별의 쪽지를 선물했다.
나의 하우스메이트는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었고 때때로 내게 커피를 내려주곤 했다. 내 스스로 만들지 않은 커피를 마시고 싶어 질 때면 나는 그에게 부탁을 하곤 했다. 이미 저녁 여덟 시가 되어 있었고 나는 그의 피곤해 보임에 부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피곤함을 말했다. 이대로 가다간 잠들어서 비행기를 놓치겠다는 농담을 힘없이 내뱉었다. 그러자 그는 내게 '마지막 커피'를 만들어줄까 물어왔다.
아, 마지막 커피. 마지막 더블샷 커피. 정든 컨테이너에 담긴, 마지막이라 완벽하게 올려진 라테 아트를 얹은 나의 마지막 멜버른에서의 커피.
그 일 년의 무게에 비해 한없이 적은 나의 단출한 짐을 들고 나는 집 근처 기차역으로 향했다. 감기에 걸려 골골대던 가이는 문 앞까지 나의 2.7킬로나 되는 노트북 가방을 들어주었다. 190이 넘는 꺽다리였던 그와 마지막 인사를 하려 '서양식 포옹'을 하려니 아무리 내가 까치발을 들어도 포옹은커녕 그저 그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칠 수 있을 뿐이었다. 역시나 190이 조금 못되던 꺽다리 나의 하우스메이트는 기차역까지 나의 커다란 캐리어를 끌어 주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무릎을 거의 구십 도는 굽히고 나서야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마지막은 마지막 같지 않았다. 나는 그를 실감할 수 없었다.
그 밤 기차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그를 아끼고 아꼈던 만큼이나 멜버른은 나에게 이토록 강렬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구나. 그렇게 평생토록 내가 그를 잊지 못하게 만들고야 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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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계속.)
in 베를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