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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sorim Mar 17. 2016

여행이란, 끝없는 해프닝의 연속. #4

_파리, 끝나지 않은 드라마, '굿바이 피에르.'


파리를 떠나기 전전날 밤이었다. 드디어 골머리를 앓던 여행지에서의 치통을 해결했다. 나는 그 많고 많았던 해프닝을 어딘가에 털어버리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함께 웃고 털어내 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파리 치과에서의 신경 치료를 끝마친 나는 피에르를 만나러 갔다. 그는 파리에서 나의 '유일한 믿을 구석'이었다.


_

피에르는 군데군데 짙은 머리칼이 섞인 금발 머리에 같은 색의 수염자국이 있는 하얀 얼굴의 프랑스 남자였다. 대게 평범한 티셔츠를 걸치고 그 아래론 철 지난 찢어진 밝은 색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약간 삐뚠 치아만큼이나 그의 미소도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그 입꼬리는 언제나 기분 좋은 각도로 올라가 있었다. 그는 내가 파리에서 세 번 찾아간 자그마한 식당의 웨이터였다.


그를 만났다. 이번에는 다른 코스 메뉴를 주문해 익숙한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와 바쁘지 않을 때마다 짧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안부도 물었다. 그는 내가 낯선 도시인 파리에서 치과 치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 상태였다. 이제 모든 것을 끝마쳤다 말했다. 우리의 짧은 대화의 사이사이마다 자그마한 비스트로는 바쁘다 한가하다를 반복했다. 근처 호스텔의 여행자들로 보이는 무리들과 그날 처음 만나 서로를 알아가던 남녀가 다녀갔다. 나는 막 피에르에게 나의 긴 여행의 해프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다. 그 찰나 가게는 갑자기 바빠졌지만 그는 '너의 이야기를 꼭 듣고 싶으니 기다렸다가 꼭 말해주고 가'라는 말을 했고 나는 마지막으로 나온 디저트를 아주 천천히 먹었다.



비스트로 근처의 거리. 삼년 전에 찾았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나는 멜버른을 떠날 때에는 비행 날짜를 착각해 비행기를 놓쳤어, 그리고 베를린을 떠날 때에는 술집에서 새로 산 아이폰을 도둑맞았고, 이번 파리에서는 네가 알려주었던 치과에 다녀왔지만 일이 해결되지 않아 치과에 총 3번 다녀오고 무려 신경치료에 약까지 잔뜩 사고 나서야 일이 정리되었어.


이제는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당연히 그럴 일은 없겠지, 안 그래?"


피에르는 놀란 눈을 했다. 이전에는 그저 여행 와서 치통이라니 골치라는 이야기만 해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는 모두를 듣고 짧은 맞장구를 치고 안타까움의 추임새를 넣어준 뒤 네가 치과 치료를 제대로 끝마쳐서 다행이라는 말을 건넸다. 그렇게 나는 그와 모든 나의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그렇게 우리는 내 여행의 어처구니없는 일련의 해프닝들에 대해 함께 웃었다. 그렇게 나는 그들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 저녁 작은 비스트로 창가의 제일 작은 테이블에서. 나는 홀로 앉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이렇게 오래 기억될 인연을 만들 수 있었다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렇게 내가 파리에서 얻어갈 인연의 힘에 대해 곱씹었다.


_

열한 시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식당은 여전히 이따금 북적였고 특별히 나의 접시들을 느리게 치우던 피에르는 일어나려던 나에게 끝으로 커피 한잔을 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 커피잔을 비우고 후식 초콜릿까지 먹고 나서야 나는 나갈 채비를 했고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문 앞에 선 나는 장난기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아주 만약, 아주 만약에 말이야 또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바로 너에게 보고하러 올게!"


그는 답했다.


"알았어, 꼭 말해주도록해! 물론 아주 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말이야."


그런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우리의 목소리는 웃음기가 가득 어려있었다. 마침내 나는 자그마한 비스트로를 나섰다.


맑게 갠 몽마르뜨 언덕의 하늘.


_

나는 그 밤에 꼭 어울리는 선곡을 했다. '오르고 올라 여기까지 왔네, 내일의 문턱 고된 하룰 지나... 그래도 오늘은 왠지 하늘을 나는 꿈 꿀 것 같아, 가슴이 벌써 뛰잖아.' 자정이 다 된 시간의 2호선 Anvers 역의 전광판에는 xxx라는 문구가 떠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곧이어 안내 방송이 나왔고 옆 사람에게 물으니 그는 곧 차가 온다는 알림이었다고 했다.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시끄럽게 전철은 내 앞에 멈췄고 나는 경쾌하게 그에 올라탔다.


'쾅.'

지하철 문은 닫혔고 그다음은 없었다. 내 귀에 선명하게 울리던 그 밤의 배경 음악은 멈춰있었다. 이어폰 리모컨의 재생 버튼을 눌러댔지만 여전히 음악은 없었다. 나는 나의 아이폰을 두 번째로 도둑맞은 것이다.


나의 산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던 새 아이폰은 이미 베를린의 부랑자 손에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나의 옛 아이폰도 이미 파리의 부랑자 손에 있었다. 처음의 나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꿈만 같이 지하철 틈새에 아이폰을 떨어뜨렸다 믿었다. 그 문이 닫히고 지하철이 출발하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종교는 없지만 신이 있다면 이건 장난을 치는 것이라 믿었다. 그것도 아주 고약한 장난이라 믿었다. 이번 여행의 풍랑은 해도 해도 너무 한 것이라 믿었다. 순간이 영원했다.



바로 다음 역에서 미친 듯이 뛰쳐나가 반대편 역사로 달렸다. 환승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직원에게 항의했지만 나의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던 직원은 느릿하게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나는 표도 끊지 않고 개찰구 밑으로 뛰어 들어갔다. 바로 옆에 서있던 한 부랑자가 네 짓을 다 봤다며 으름장을 놓은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오분만에 다시 Anvers 역의 반대편 플랫폼에 내렸다.


조그마한 검은 머리칼의 동양인 여자가 팔짝팔짝 뛰고 있었다. 그 모습에 어느 다정한 파리의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우리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파리지앵 할아버지는 나의 절망적 표정과 손짓을 용케 알아들었고 지하철 직원을 불러 주었다. 그렇게 한밤중 파리, 그 조그마한 동양인 여자 하나 때문에 파리의 지하철은 멈췄다. 다음 열차는 더 이상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후에 알게 되었다. 나는 악명 높은 몽마르뜨 근처의 2호선 Anvers 역에서 하루 평균 25건 발생하는 소매치기의 한 피해자였던 것이다.


홀로 걷던 리퍼블릭 광장의 밤거리. 생마르탱 운하를 가던 길.


새벽 두 시가 다 된 시간, 나는 또다시 나의 유일한 믿을 구석이던 피에르에게로 갔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서 새벽까지 이어진 일에 그의 하얀 얼굴은 더욱 창백했다. 마침내 그가 건넨 '조금 더 조심했어야지'라는 말은 나의 가슴을 후벼 팠고 연이은 두 번의 소매치기로 떨칠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인 나는 어린아이와 같이 그를 졸랐다. 하루 12시간쯤은 일하는 그에게 삼십 분 먼저 출근해서 나와 함께 중고 휴대폰을 사러 가자는 부탁이었다.



_그와의 마지막은 다음날 아침 비스트로 앞에서.

나는 초라한 나의 쪽지를 건넸다. 고맙고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마침내 정신을 차린 다음날 아침 나는 내가 얼마나 어린아이 같이 굴었는가를 깨달았고, 이미 혼자 휴대폰을 사 온 뒤였다. 우리는 아침 10시 30분에 만나기로 했었다. 내가 비스트로 사장님이 일러준 믿을 만한 가게에서 휴대폰을 사고 돌아오던 때가 10시 33분쯤이었다. 멀리서 가게 야외 테이블에 앉은 피에르가 보였다. 그는 태우던 담배를 손에 들고 내게 너 때문에 삼분이나 기다렸다는 말을 했다. 그것은 원망이 아닌 농담이었음을 지친 그의 얼굴에 어린 옅은 미소로 알 수 있었다.


또다시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동안 나의 이야기만을 했을 뿐 그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에 대해 물었다. 그는 나처럼 여행을 가고 싶어 돈을 모으는 것이라 말했다. 일단은 프랑스 내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라 말했다. 이번 주 일요일에야 간신히 쉰다고 말했다.


과연 그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정신을 놓고 다니는 덤벙대는 동양 여자애 정도일까. 아니면 짧게 만났던 일터의 말동무 정도일까.


나에게의 그는 커다랳다. 15년 4월의 파리는 그로 가득했다. 나는 그 불안 속에서도 오래 남게 될 여행에서의 인연에 감사했다. 결국에는 좋은 것만 남게 마련이었다. 결국에는 나에게는 피에르와 아늑했던 자그마한 비스트로와 그가 적어 주었던 '그가 파리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의 이름'만이 남게 마련이었다.


La Halle Saint Pierre


우습게도 그가 파리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의 이름은 그의 이름과 같았다. 생 피에르의 미술관이었다. 불과 그의 가게에서 걸어서 십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지만 언제나 일을 하는 그는 도무지 그곳에 들러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아침 나는 그를 대신해 그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로 향했다. 그와 꼭 같은 이름을 가진 곳으로 향했다.


몽마르뜨 언덕 근처의 레 알 생 피에르. 내가 가본 최고의 미술관이었다. 꼭 알맞게 아담하고 사랑스럽던.



 "만약 네가 저녁식사를 해야 한다면 말이야,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인 내일. 이미 너는 어디로 올지 알고 있잖아, 그렇지?"


떠나는 나의 등 뒤에 건넨 피에르의 마지막 말이었다. 슬프게도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저녁을 먹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서로가 지쳐있던 아침은, 그와 나의 마지막이 되었다.



_

안녕, 피에르.

Au revoir.

너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그 밤의 음악, 밴드 그릇의 '그래도 오늘은'

https://youtu.be/_16fJnNPHqo

그릇/전찬준 - 그래도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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