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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sorim Mar 26. 2016

혼자가 아닌 뉴욕의 밤. #1

_뉴욕, 나는 오래된 음악과 함께였다.


뉴 욕 시 티.


그 이름도 찬란한 뉴-욕은 나의 여정의 종착지였다. 아직은 서늘하던 지난 4월의 초입, 나는 홀로 뉴욕의 봄을 만끽하러 그 유명한 존 F. 케네디 공항에 첫발을 디뎠다.


물론 그 거대하고 바쁜 '반짝이는 도시'는 가난한 나홀로 여행자에게는 그의 새침한 면모를 한껏 발휘해 이따금 심술을 부렸고, 나는 그 안의 지치고 바쁜 사람들 틈에 홀로 섞여들어 애써 희미한 미소를 지어내곤 했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머물던 숙소 근처의 지하철 역. 뉴욕의 지하철은 다분히 더럽고 빛이 바랬었다.


_

나에게는 오래된 뮤지션이 있다.

오래된 음악가가 있다. 여기에서의 '오래된'은 더 스미스처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활동했다는 뜻이 아니라, 내 또래의 가수들에게 리메이크되곤 하는 7080 음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의미에서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음악'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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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마주한 것은 통의동의 보안여관 앞에서였다. 스무살 시절의 나는 친구와 함께 무슨 연유였는지 볕 좋은 봄날 그곳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잔잔하고 담담한 목소리와 굵직한 베이스 소리가 거리에 울렸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모여든 사람들 너머의 거리의 밴드 앞에 멈춰 섰다. '고구마야 고구마야 못생긴 네가 좋아. 고구마야 고구마야 평생토록 너만 먹어도 난 살 수 있어'하는 위트 있는 가사의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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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의 오래된 뮤지션과의 첫 만남이었다. 이제 그는 밴드가 아닌 솔로로 활동한다. 그 사이 오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의 음악은 나와 함께 서울, 멜버른, 베를린, 파리, 런던을 거쳐 뉴욕까지 날아들게 된 것이다. 뉴-욕 시티에서의 울림이 더욱 각별했던 것은 한때 뉴욕에 살았던 그에게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소들에 대해 물으려 직접 연락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한 '사이드 워크 카페'에서 두 번의 느긋한 저녁 맥주를 들이켜며 라이브 음악을 들었고, 그가 일러준 G 트레인을 타고 '윌리엄스 버그' 부근에 내려 만국 공통의 힙스터들을 스쳐가며 느긋하게 걸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나의 뉴욕에 가득했던 '뉴욕을 노래한 그의 노래'와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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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의 '꿈꿈다' 수록곡, I miss your lips.

https://youtu.be/pfbKS387XcQ

그릇 - I miss your lips


오래된 음악은 음악 이상의 힘을 가진다. 그는 언제 다시 마주하든 오늘의 나를 그 음악과 함께한 오래된 날의 순간으로 마구 끌어다 놓는다. 어느새 나는 꼼짝없이 잡혀가 그 오래된 날의 한 귀퉁이에 멍하니 서있다. 그 오래된 음악들을 마주하는 그 모든 '오늘의 나'는 어느새 시끌벅적한 커다란 창고의 한 구석에서 손에 든 맥주를 홀짝이고, 푸르른 하늘을 보며 왼쪽으로 걷고 또 걸었던 이유 없이 쓸쓸하던 맑은 오후의 횡단보도 앞에 서고, 밤하늘에 그림과 같이 이어진 건물들의 그림자와 그에 총총히 박힌 별들과도 같은 맨해튼의 야경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섰던 서늘하던 뉴욕의 브루클린 브릿지 위에 올라 여행의 시큰한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뉴욕 여행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고, 지친 나를 말없이 위로했던 브루클린 브릿지 위에서.


그렇게 오래된 음악과 함께. 홀로 날아든 뉴-욕의 눈부신 브루클린 브릿지 위에서,


나는 혼자였으나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 음악과 겹쳐진 수많은 오래된 '나 자신'들과 함께였고 짧게나마 정다운 인사를 나누었던 '그 음악의 뮤지션'과 함께였고 그 오래도록 켜켜이 쌓인 나의 추억들에 덧입힌 '달콤한 사람들'과 함께였다. 나는 그렇게 브로콜리 너마저의 가사에 등장하는 달콤한 나만의 '유자차' 병에 음악이라는 설탕을 켜켜이 쌓아, 오래 두고 혼자인 날 한 수저 푹 떠내 달큰한 한잔의 차로 나를 위로할 나만의 달콤함을 채워가고 있었다.



_달큰한 나의 뉴욕.

말로만 듣던 센트럴 파크. 커다랗게 한바퀴를 다 돌아내기 힘들만큼 커다랬다.
우스웠던 에피소드는, 공원에서 조깅하던 아저씨가 나에게 길을 물어봤다는 것! 잠시 뒤 우리는 함께 빵 터졌다.
안녕, 꼬마.
브루클린 파크 슬로프의 귀여운 주말 길거리 벼룩 시장. 집 앞에 놓아둔 필요없는 물건들을 그저 집어가기만 하면 된다.
파크 슬로프의 프로스펙트 공원. 봄의 공원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그 한 귀퉁이에 걸터 앉았다.
브루클린 브릿지와의 첫 만남. 내가 다리 근처에 도착하니 딱 알맞게도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안녕, 맨하튼.
맨하튼의 '더 빈 커피.' 내가 앉았을 때 나온 음악이 절묘했다. 바로 'Empire State of Mind.' 앨리샤 키스가 끝없이 뉴욕을 외쳤다.
윌리엄스 버그에서 새로운 예술가들의 지역 브쉬윅으로 넘어가는 길의 브루클린. 멈춰는 빨간 손바닥!
브루클린 느낌을 주던 무식한 고가다리. 젠트리피케이션 덕택에 밀려난 예술가들의 지구를 보러 부쉬윅으로 향했다.
다시 윌리엄스 버그로 넘어가는 길의 그래피티와 핑크 걸.
브루클린의 공공 표지판. 그에 걸린 달과 별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우연찮게 귀퉁이에 걸린 항공기 하나.



끝으로 여전한 나의 오래된 음악,

전찬준의 '이 길은 어디로'

https://youtu.be/21Nqw7GsVGs


저기 지나가는 구름, 저기 지나가는 바람

다시 지나가는 사람, 또 지나가는 시간

모두 다 그렇게 지나 결국 어디로 가는지

나에게는 그 누구도 대답해주질 않네

...



(다음 편에 계속..)


아, 끝으로 앞으로도 나의 오래된 음악들이 켜켜이 쌓여가기를 바란다. 부디 달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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