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멜버른, 음악과 너와 나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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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이었다. 그리고 멜버른의 브런즈윅 지역이었다. 나와 함께 있던 메리는 자그마한 체구의 한국 여자아이였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가진 일명 '워홀러'였던 우리는 한 직장에서 함께 일을 하다 가까워졌다. 나와 겨우 한 살 차이가 나는 그녀는 섹시한 타입의 아이였다, 태닝 된 피부와 낮은 목소리를 가진. 매사에 시원시원한 그녀와 소극적이지만 의외로 개방적인 마음을 가진 나는 어울리지 않는 듯 서로와 잘 맞았고 그렇게 우리는 어울리게 되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호주에서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었고, 우리는 그 하루하루를 무엇이든 특별하게 채우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다 페이스북을 통해 그녀가 멜버른에서 제일 좋아하던 거리의 음악가인 Jasia의 공연 정보를 얻었다. 브런즈윅 지역의 어느 커다란 창고에서 열리는 공연이었다. 공연 당일, 일이 끝나고 다시 모인 우리는 브런즈윅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도 꽤나 인상적이었던 게, 아홉 시에 시작하는 공연이었으므로 하늘에는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아 있었고, 새하얀 얇은 초승달이 이른 저녁부터 하늘에 걸려있었다. 철길을 가로지르는 육교는 낡은 철조망으로 뒤덮여있었는데, 육교 바로 옆의 경찰수련센터와 같은 시설이 있다는 것과는 대조되게 수십 개의 깨진 술병들로 가득했다. 육교에 올라서 깨진 병들과 날카로운 철망을 피해 바라보는 브런즈윅의 전경은 그날의 하늘만큼이나 아름다웠고, 우리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언젠가 여기에서 맥주 한 병씩을 해도 행복하겠다며 깊은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공연장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으레 입장권 대신 주어지는 입장 도장을 손목에 찍어둔 우리는 답답한 창고를 빠져나와 주변 탐방에 나섰다. 그러다 지나가는 길의 대형마트에서 간식거리를 구비했다. 코코넛 향이 가미된 초콜릿을 나는 집어 들었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이라고 했다. 여전히 그 포장지와 맛이 기억난다.
그렇게 맥주 한잔을 들고 바라보는 공연과 사람들과 조명과 음악과 기타 소리와 목소리와 타악기 소리와 우리의 기분과 모든 것이 완벽했다.
두개의 서브 공연을 마치고, 결국 Jasia가 공연을 시작한 것은 11시 무렵이었다. 우리는 이미 마지막 기차가 11시 38분에 조금 떨어진 기차역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득한 공연장에서 귀를 꽉 매우는 음악 소리에 자정이 다 된 시간의 나는 감성적이었고, 시간 따위는 잠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가 아마 11시 33분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손이 내 팔을 잡았다. 메리였다. 그리곤 내게 그녀의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는데, 화면 속의 시계는 11시 3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막 좋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는 참이어서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우리는 그 커다람을 뒤로하고 빠르게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기차역은 육교를 넘어가서 조금 올라가야 있었다. 마지막 기차를 놓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공연장의 사운드 시스템은 충분히 웅장해서 우리가 그곳을 멀어지는 동안에도 내내 우리의 귀에는 그의 음악이 울렸다. 선선한 1월 말 늦여름의 날씨는 완벽했고, 적당히 어두운 하늘에 별들과 하얀 달과 허름한 육교가 완벽하게 걸려있었다, 마치 모두가 그 한순간을 위한 것처럼. 허공에 울리는 '우리의 멜버른을 상징하는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심장이 아플 정도로 숨을 헐떡이며 기차역으로 뛰었다.
육교에서 잠시 뒤를 돌아 완벽한 하늘을 바라보았고, 말이 잘 나오지 않도록 숨이 찼지만,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었다. 그 순간이 너무나 우스웠다. 그 순간이 너무도 완벽하고 행복해서 우스웠다. 그 기차역으로 달리는 길에서 우리는 크게 소리 내어 웃고, 웃고, 또 웃었다. 그리곤 숨이 가빠 벅찬 가슴을 안고 헐떡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왠지 지금의 이 순간이 아주 오래도록, 정말로 아주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고. 정말 정말로 인상적이어서 앞으로 두고두고 떠올리게 될 것 같다고. 그 순간에 '우리는 무한했다.'
지금도 다시금 이야기하는 그 순간이, 앞으로 무한할 우리들의 시간 동안, 그 수많을 날들 동안 곱씹고 또 곱씹어 마음을 따뜻하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그날 밤, 그 무한했던 순간,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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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녀와 나는 그 밤을 이야기한다. 이미 이렇게 이야기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날 기차에 올라 거울과 같이 우리를 비추던 기차의 맞은편 창에 비친 자기 자신과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또 웃었었다. 그런 우리를 나는 사진에 담았었다.
다시 한번 돌아온 9월의 늦여름, 그 완벽한 날씨의 늦은 저녁, 나는 한국의 조깅트랙을 숨이 가쁘게 달리며, 그 무한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_우리들의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