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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sorim May 28. 2016

가만히 문을 두드리는 밤.

_불면의 밤의 노래. #2



나에게의 새벽은 너무나도 길어서 앞에 놓인 모든 문을 두드려 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첫 번째 문을 가만히 두드렸다. 오래된 미련의 끝자락에 흩날리는 누군가의 말끔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 그림자는 너무도 말끔하고 말쑥해서 더 이상 오래된 미련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역시나 그 너무도 말끔하고 말쑥한 모습에 나의 말끔함에는 티가 생겼다.


똑똑하고 두 번째 문을 가만히 두드렸다. 그 문에는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또한 기억할 것임이 분명한 오래된 날의 어느 한 자리가 걸려 있었다. 나는 눈을 세게 비비고 그다음엔 동그랗게 떠내고 그 한 자리를 들여다보았다. 눅눅한 오래된 여름날의 습한 공기가 나를 훅 짓눌러 왔다. 그리곤 그 꼭대기에 올라앉은 풍경 소리가 내 귀에 울렸다. 그 풍경 소리는 너무도 맑아서 나를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바람이 꽤나 부는지 풍경 소리는 끊임없이 울렸지만 그 맑고 아름다운 소리에도 나는 가만히 문을 닫았다. 문의 자리는 옅은 갈색으로 몇 군데 까진 자리만 있을 뿐 엊그제 코팅을 한 것처럼 은은한 광이 났다.


나는 이내 세 번째 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두드리기도 전에 문은 열렸다. 벌컥 열린 문 틈으로 보이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두움뿐이었다. 까만 방이었다. 온통 새카매서 나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어느 것도 식별해 낼 수가 없었다. 한 발걸음을 힘겹게 떼어 문 안으로 들어갔다. 무언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불안이 일었다. 나는 그 안에서 어느 날카로운 것의 어스름한 옆얼굴 만을 볼 수가 있었다. 실은 나는 그것의 어렴풋한 모습을 이미 알고 있던 후였다. 그러나 그 캄캄한 방 안의 날카로운 것은 때로는 포악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좀먹을 만큼이나 지독한 것이어서 나는 애써이고 그것의 옆얼굴을 피했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내어 차마 그것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나는 또다시 그 세 번째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가지 않은 채였다. 나는 그 세 번째 방에 남아 방문을 닫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나는 언제나이고 알고 있었다. 아직은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이었고 대신에 그를 해결해줄 누군가를 찾는 것은 더욱이 어렵게 보였다. 눈을 감으면 캄캄한 방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나 역시도 캄캄하게 문을 닫아내는 것이 되었고 그렇다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나에게의 새벽은 너무나도 길어서 하염없이 눈을 감고 있어도 충분한 것이었다. 눈을 감고 있는 일. 그것도 무언가를 행하는 일이었다.


캄캄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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