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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Jul 19. 2020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딥 포커스 쇼트’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딥 포커스 쇼트’(deep focus shot)는 문자 그대로 화면의 깊은 곳까지 포커스를 맞추는 쇼트를 말합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쇼트이지만, 초기 영화사에서 딥 포커스 기법의 등장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딥 포커스 쇼트는 화면, 즉 공간의 깊이를 창출하는 쇼트로 가까운 거리(전경), 중간 거리(중경), 먼 거리(후경)에 있는 피사체를 동시에 한 화면에 포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딥 포커스 쇼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피사계 심도’(depth of field)라는 용어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직역하면 ‘들판의 깊이’라는 뜻인데, 가령 영화를 촬영할 때 카메라가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면 당연히 초점이 맞는 인물과 그 인물을 감싸고 있는 여러 배경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때 초점이 맞는 인물을 포함한 배경의 면적을 피사계 심도라고 부릅니다. 즉 피사계 심도란 카메라의 특정 렌즈가 제공하는 초점 거리를 의미합니다.


좀 어려우신가요? 가령 여러분이 인물A의 모습을 촬영한다고 했을 때, A의 뒤에 위치하고 있는 벚꽃나무를 A와 함께 명료하게 담을 것인지, 아니면 A에만 초점을 맞추고 벚꽃나무는 흐리게 아웃 포커스(out of focus)로 담을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A와 벚꽃나무 모두에 초점을 맞춘다면 피사계 심도가 ‘깊은’ 것이고, 벚꽃나무를 포함한 여러 배경을 흐리게 하고 A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피사계 심도가 ‘얕은’ 것입니다. 그래서 깊은 피사계 심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감도의 광각 렌즈를 사용해야 합니다.


오손 웰즈 감독, 영화 <시민케인> 스틸컷

딥 포커스 기법의 효과를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은 바로 오손 웰즈 감독의 <시민케인>(1941)입니다. 위 장면에는 총 네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실내에 위치한 세명의 인물은 오른쪽부터 차례대로 화면의 전경, 중경, 후경에 배치돼 있습니다. 그리고 창문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가 이 화면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죠. 감독은 이러한 딥 포커스 쇼트를 통해 화면의 공간감을 구축하고, 롱 테이크(long take : 1~2분 이상의 쇼트가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것) 기법과 함께 사용함으로써 현장감까지 더합니다.


봉준호 감독, 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컷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2003)에서도 다양한 딥 포커스 쇼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위 장면은 형사가 살인 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통제하는 모습입니다. 시신이 손발이 묶인 채로 논두렁에 놓여 있고, 그 모습을 마을 주민들이 웅성거리며 구경하고 있습니다. 이때 감독은 화면의 지배권을 가진 형사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게 아니라 그 주변의 인물들과 배경에도 균등하게 초점을 부여합니다. 동시에 감독은 이 모든 상황을 롱 테이크로 포착합니다. 이처럼 피사계 심도가 높은 딥 포커스 기법은 롱 테이크와 맞물려 살인 현장의 상황을 더욱 사실감 넘치게 표현하는 데 기여합니다.


봉준호 감독, 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컷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 장면은 화면의 전경에 위치한 시골 형사 두명이 용의자에게 진술을 강요하는 모습입니다. 이때 감독은 화면의 오른쪽 제일 깊은 곳에 위치한 서울 형사를 피사계 심도가 얕은, 아웃 포커스에 의한 딥 포커스로 잡아내고 있습니다. 한 공간에 있지만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듯한 공간감을 부여하고 있죠. 동시에 이러한 딥 포커스 기법은 시골 형사의 막무가내식 수사와 감정적인 태도, 서울 형사의 과학적 수사와 이성적인 태도의 차이를 극명하게 부각하는 효과를 일으킵니다.


위의 예처럼 피사계 심도가 얕은 딥 포커스 기법을 ‘쉘로우 포커스’(shallow focu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쉘로우 포커스가 미학적으로 사용된 장면은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2001)와 토드 필드 감독의 <리틀 칠드런>(2006)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허진호 감독, 영화 <봄날은 간다> 스틸컷

<봄날은 간다>에서 두 남녀가 이별하는 순간입니다. 이때 실의에 빠진 모습으로 남자는 전경에 가만히 서 있고, 여자는 후경으로 서서히 멀어집니다. 여자가 후경으로 멀어질수록 화면의 공간감은 깊어지고, 여자가 관객의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면서 동시에 화면의 지배권은 남자에게로 넘어갑니다. 이때 여자를 쉘로우 포커스로 잡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은 남자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경으로 사라지는 여자의 모습에 초점을 두지 않는 것이 남자가 처한 상황적‧심리적 조건과 잘 맞아 떨어지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토드 필드 감독, 영화 <리틀 칠드런> 스틸컷

다음은 <리틀 칠드런>의 한 장면입니다. 보이는 것처럼 이 장면에는 총 네명의 여인이 있습니다. 카메라는 주인공을 전경에, 그 뒤로 세명의 여자를 후경에 배치합니다. 이어 화면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주인공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인물들을 화면 중앙에 놓은 다음 쉘로우 포커스로 잡아냅니다. 주인공이 느끼는 심리적 외로움과 쓸쓸함을 쉘로우 포커스를 통해 표현한 것이죠. 감독은 주인공의 세계와 다른 인물들의 세계가 얼마나 유리돼 있는지를 한 화면으로 표현합니다.


책 『영화란 무엇인가?』의 저자 앙드레 바쟁은 “딥 포커스 쇼트는 영화를 더욱 객관적인 리얼리즘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말했습니다. 화면을 잘게 나누는 빠른 편집 대신, 딥 포커스와 롱 테이크를 가미한 쇼트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더욱 ‘깊게’ 사유하도록 하는 이미지를 제시합니다. 화면의 깊이가 곧 영화의 깊이가 되는 것. 딥 포커스 쇼트의 미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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