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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Oct 19. 2020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노동영화’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노동영화란 문자 그대로 노동 혹은 노동자의 삶을 다룬 영화를 말합니다. 논문 「노동영화에서 나타난 헤게모니적 갑을관계」의 저자 이아람찬은 “노동영화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평가, 그리고 노동자의 자기 인식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며 “이러한 영화들은 노동자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면이나 사회 갈등 등도 함께 그리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지가 베르토프,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 스틸컷

잠깐 스크린 밖으로 나와서, 노동과 영화의 관계성은 영화의 제작 과정을 통해 탐구할 수도 있습니다. 논문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 영화에 나타난 자본과 노동」의 저자 정영권은 “지가 베르토프가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카메라맨의 모습이나 편집 작업을 하고 있는 편집 기사를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은 영화가 진공 속에서 탄생하는 신비한 예술이 아니라 부단한 인간 노동의 산물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노동과 영화는 스크린 안팎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뤼미에르 형제, 영화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스틸컷

흥미로운 것은 영화의 탄생 자체가 이미 ‘노동’이라는 주제와 함께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아람찬은 “대중 유료 상영이라는 점에서 세계 최초의 영화는 뤼미에르 형제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1895)”이라며 “이 영화는 공장에서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시네마토그라프(Cinmatographe)라는 카메라로 담아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저자의 논의처럼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은 노동영화로서의 장르적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세계 최초의 영화는 노동영화가 되는 셈이지요.


노동영화는 ▲노동조합의 얘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노동조합영화’ ▲이주노동자들의 상처와 차별을 그리고 있는 ‘이주노동자영화’ ▲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여성노동자영화’ 등의 하위 장르로 세분화할 수 있습니다.


육상효 감독, 영화 <방가방가> 스틸컷

저자는 노동조합영화로 탄광 노동자들과 그들의 조직을 그린 <몰리 맥과이어스>(1970)를, 이주노동자영화로 각각 한국과 미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아픈 삶을 그린 <방가방가>(2010)와 <빵과 장미>(2000)를, 여성노동자영화로 미국 남부의 한 방직공장 노사분규와 노조를 이끄는 여성 노동운동가의 저항과 희망을 그리고 있는 <노마 레이>(1979)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노동영화는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촉발한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이라는 영화 운동과도 긴밀히 연관돼 있습니다. 네오리얼리즘은 2차 세계대전 전후 현실에 눈을 뜬 감독들이 이탈리아의 비참한 현실과 민중의 삶을 진실한 시각으로 꾸밈없이 그려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출발한 일련의 사실주의적 영화 운동입니다. 네오리얼리즘 기반의 영화는 노동자, 농민, 서민, 빈민 등의 하층계급을 소재로 취하고 파시즘의 폐단, 전쟁의 황폐함, 가난, 실업, 매춘 등의 사회적 실상을 폭로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 영화 <빌리 엘리어트> 스틸컷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2000)는 마거릿 대처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 시기의 ‘광부 대파업’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영국 북부에 위치한 ‘더럼’이라는 탄광촌에서 발레를 사랑하는 ‘빌리’라는 소년이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아주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는 청춘영화이자 성장영화입니다.


<빌리 엘리어트>를 노동영화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빌리의 아빠는 왜 하필 탄광촌 노동자이며, 빌리는 왜 하필 그 많은 직업 중에 발레리노를 꿈꿨을까요? 발레를 하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발레는 여자나 하는 것”이라고 반대했던 아빠가 끝내 아들의 꿈을 응원하는 서사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영화는 정치와 젠더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파업의 대열에서 이탈한 아빠의 선택은 정치의 문제이며 아빠가 발레리노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을 허무는 일은 젠더의 문제니까요.


투박하게 정리하자면, 사실 모든 영화는 노동영화입니다. 영화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고, 사람은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어떤 직업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영화에서 주인공이 무슨 직업을 갖고 있느냐는 상당히 정치적인 문제이며 때에 따라 영화의 주제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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