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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Oct 26. 2020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직부감’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10·26 사건’은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에 위치한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을 말합니다. 이 사건으로 18년간 이어진 박정희 정권은 몰락하게 됩니다.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2005)과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2020)은 모두 10·26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입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박 대통령이 피격당한 당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미국 의회에서 박정희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것을 시작으로, 박 대통령이 피격당하기 직전의 40여일을 두루 조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산의 부장들>은 동명의 원작 논픽션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원작이 박정희 정권을 비호하기 위해 온갖 모략을 펼친 18년 중앙정보부의 흉악한 민낯을 담고 있다면, 영화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방대한 서사 중에서 김재규씨가 박 대통령을 저격하기 직전의 40여 일을 집중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유신시대의 폭정이 가장 극심한 때였던 거죠.


박 대통령이 피격되기 직전에는 동일방직 사건과 YH여공사건, 부마항쟁 등 각종 사건사고와 민주화 운동이 많이 발생했는데요. <남산의 부장들>의 경우 그런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 중심으로 극이 진행된다기보다는 박정희, 김재규, 차지철 이 세 사람의 여러 가지 정치적 갈등과 인간적 고뇌를 중점적으로 묘사합니다.


장르적으로 접근하면, <그때 그 사람들>은 블랙코미디이고, <남산의 부장들>은 필름누아르에 가깝습니다. 블랙코미디는 우리말로 바꾸면 풍자와 해학이죠.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비극적인 사건을 굉장히 냉소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코미디의 하위 장르입니다. 필름누아르는 어둡고 폭력적인, 어떤 타락한 세상을 그린 영화를 말합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대부> 시리즈처럼 암흑적이며 음산한 분위기가 강한 영화입니다.


<그때 그 사람들>의 경우 개봉 당시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외아들인 박지만씨가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하고 역사를 왜곡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법원의 가처분결정으로 영화는 처음과 마지막 부분의 다큐멘터리 장면을 삭제한 후 상영됐습니다. 이후 소송은 3년간의 법적 다툼 끝에, ‘조정’(쌍방의 양보를 통한 합의)으로 종결됐습니다. 개봉 당시 일부 보수 일간지의 기자들은 이 영화가 민감한 역사적 사건을 미진한 블랙코미디로 다뤘다며 혹평했습니다.


임상수 감독,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스틸컷

하지만 <그때 그 사람들>은 미학적으로 뛰어난 부분이 많은 영화입니다. 가령 궁정동 내부를 비추는 직부감(high angle : 높은 위치에서 피사체를 내려다보며 촬영하는 것)의 롱테이크(long take : 컷 없이 길게 찍는 방법) 쇼트는 영화의 태도를 명징하게 나타낸 카메라의 시선이자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영화에는 관객이 자신과 동일시하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쉽게 말해서 관객이 감정이입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 영화의 카메라는 시종일관 스크린 속 캐릭터와 스크린 바깥에 있는 관객의 거리감을 늘리고 증폭하면서 관찰자적 태도를 유지합니다.


특히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세트임을 숨기지 않으면서까지 거사 이후 궁정동 내부를 둘러보는 ‘주 과장’(한석규)의 행적을 직부감의 롱테이크로 유유히 쫓아갑니다. 이러한 카메라의 시선과 움직임은 당시 억압과 폭력의 세상을 살아갔던 일반적인 시민들이 세상을 대하는, 일종의 방관자적 태도를 은유하고 풍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의 장르적 속성을 캐릭터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움직임으로도 녹여낸 것이죠.


두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차이 또한 흥미롭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모든 인물을 희화화한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인물의 내밀한 심리 묘사에 보다 집중합니다. 우 감독은 영화 개봉 당시 ‘정치색 배제’ ‘차갑고 냉정한 시선’ ‘인간의 고뇌’라는 말을 통해 영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곡해되지 않길 당부했는데요. 하지만 <남산의 부장들>은 박 대통령을 저격한 ‘김규평’이라는 캐릭터의 심리 묘사에만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박 대통령을 비롯한 나머지 캐릭터들은 굉장히 납작하고 단선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정치색을 떠나 영화의 캐릭터 활용 측면에서 조금 아쉬운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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