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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Nov 01. 2020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줌 쇼트’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영화를 영화이게 만드는 물리적인 도구, 바로 ‘카메라’입니다. 그렇습니다. 영화는 카메라의 예술입니다. 카메라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피사체는 전혀 다른 의미로 관객에게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감상할 때, 내가 보고 있는 화면이 카메라에 의해 찍혔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합니다. 그러니까 화면상에서 ‘카메라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거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인물의 행위와 사건의 연속성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연속 편집’(continuity cutting)의 효과 때문입니다. 연속 편집은 영화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장면들을 일련의 기준에 의해 조합하는 편집 기법입니다. 이를 통해 관객은 영화 속 사건을 통일성 있게 체감합니다. 말하자면 연속 편집은 장면과 장면 사이의 틈과 간격을 메우면서 관객에게 영화가 편집으로 구성된 세계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감추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 <타이타닉> 스틸컷
제임스 캐머런 감독, <타이타닉> 스틸컷

다른 요인은 앞서 말한 카메라의 시선, 그러니까 카메라의 각도와 위치, 움직임 때문입니다. 대개의 관객은 카메라의 시선에 동화돼 영화 속 세계를 바라봅니다. 간혹 카메라의 시선이 인간의 시선을 뛰어넘을 때가 있는데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타이타닉>(1997)에서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로즈’(케이트 윈슬렛)가 배 난간에서 팔을 벌리고 있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새처럼 날아다니며 두 인물의 교감을 포착합니다. 이때 관객은 자신의 시각 능력을 초월한 카메라의 시선에 압도됩니다.


‘줌 쇼트’(zoom shot) 역시 인간 시야의 한계를 초월한 카메라의 시선입니다. 줌 쇼트는 고정된 카메라의 줌 렌즈를 사용해 화면을 피사체로부터 가깝게 혹은 멀어지게 조절해 촬영한 쇼트를 말합니다. 줌을 하는 방향에 따라 ‘줌인’(zoom-in)과 ‘줌아웃’(zoom-out)으로 구분합니다. 줌 쇼트는 실질상의 카메라 움직임 없이도 피사체를 향한 이동이 자유자재로 이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장면을 인위적으로 나누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굉장히 경제적인 쇼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보라 감독, 영화 <벌새> 스틸컷

김보라 감독은 영화 <벌새>(2019)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줌아웃을 활용해 영화의 전반적인 지향을 담아냅니다. 이 영화는 1994년을 버티고 견딘 여중생 ‘은희’(박지후)의 기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관객은 은희의 기억을 자신의 기억으로 받아들이는(혹은 착각하게 되는) 기이한 영화적 체험을 합니다. 그것을 감독은 은희의 집 현관문에서 서서히 멀어지며 무수한 익명들의 집을 포착하는 오프닝 시퀀스의 줌아웃으로 표현합니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가 어느 여중생의 지극히 사사로운 기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억일 수도 있다고 은유한 것이죠.


홍상수 감독, 영화 <자유의 언덕> 스틸컷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2014)의 한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권’(서영화)이 ‘모리’(카세 료)에게 받은 편지를 실수로 계단에 떨어뜨리고, 그 편지에 날짜가 적혀있지 않아 결국 순서대로 읽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전제로 한 영화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된 편지처럼, 영화의 진행 역시 선형적 흐름이 아닌 비선형적으로 진행되는 영화입니다. 심지어 흩어진 편지 중 한 장은 권이 영원히 읽지 못하게 되는데, 홍상수 감독은 그 편지를 줌인으로 포착합니다.


사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활용되는 줌 쇼트는 조금 생뚱맞고, 독특한 측면이 있습니다. 논문 「홍상수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 연구」의 저자 김이석은 “홍상수의 영화는 파격적이면서도 불안정한 줌의 사용으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라며 “파격적인 줌인과 줌아웃 기법이 만들어내는 균열은 서사 구조가 만들어내는 균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즉흥적이고 우연적”이라고 설명합니다.


홍상수 감독은 줌 쇼트를 통해 화면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단일한 쇼트 안에서 세계와 인물을 매순간, 새롭게 포착합니다. 가령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상황을 컷으로 나누거나 고정된 롱테이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줌 쇼트로 포착함으로써 영화의 즉흥성과 우연성을 더욱 증폭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아주 독특한 영화적 리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 『영화사전 : 이론과 비평』의 저자 수잔 헤이워드는 “줌 쇼트는 모두 시간과 공간의 급속한 운동을 내포하고 있어 시간과 공간을 이동한 것 같은 환상을 만들어 낸다”며 “줌인은 사람이나 사물을 고립시키고, 줌아웃은 사람이나 사물을 좀 더 넓은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그러므로 줌 쇼트는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상태의 관음증”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줌 쇼트는 관객에게 “영화는 카메라가 찍는 거야”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주입함으로써 일종의 ‘소격 효과’(estrangement effect : 낯설게 하기, 독자의 감정이입이나 몰입을 일부러 방해해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것)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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