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도상학’(iconography, 圖像學)이란 종교 미술, 특히 기독교나 불교 미술에서 조각이나 그림에 나타난 여러 형상을 분석하고, 거기에 내재한 종교적 의미를 발굴하는 학문을 말합니다. 조금 더 넓은 차원에서 보자면, 도상학은 미술사의 한 분야로 미술 작품의 내용 및 형식 분석을 통해 그것의 상징적인 의미를 해석하고, 서술하는 행위와 궤를 같이 합니다.
도상학은 영화에서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책 『영화 사전 : 이론과 비평』의 저자 수잔 헤이워드에 따르면, 도상학은 “영화의 시각적 모티프와 스타일을 범주화하고 분석하는 수단”입니다. 그는 “도상학은 영화 의미 체계의 최대 단위인 작품의 ‘장르’ 특질뿐만 아니라, 최소 단위인 ‘이미지’를 탐구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도상학은 미장센(mise en scène : 시각적 기호)과 장르에 주목한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도상’(圖像)의 의미가 종교나 신화적 주제를 그린 미술 작품에 나타난 인물과 형상을 말한다면, 영화에서 도상은 스크린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비롯한 각종 시각적 기호, 장르의 공식 및 관습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를 저자는 특정 장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소품들로 설명하는데, 가령 웨스턴의 ‘말’ ‘권총’ ‘부츠’, 갱스터 영화의 ‘질주하는 차’ ‘자동 소총’ ‘번들거리는 옷’ 등이 그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소품들이 각 장르의 표준적인 도상입니다.
영화 장르에 입각해 조금 더 세부적으로 살펴볼까요? 책 『영화 장르의 이해』의 저자 정영권은 “도상은 세팅, 의상, 소품, 조명 등 시각적 요소를 말한다. 회화 등 시각적 이미지를 해석하는 도상학에서 따온 도상은 영화 장르를 직접적으로 식별하게 해준다”며 “한국의 조폭 영화라면 수트 뿐 아니라 조야한 알로하셔츠, 금목걸이, 문신 등이 조폭을 가리키는 도상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어 “조명과 같은 기술적 요소가 뚜렷한 도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특히, 필름누아르나 호러 영화 등은 어두운 ‘로우 키’(low-key) 조명을 사용함으로써 으스스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창출한다. 이에 비해 코미디 영화는 밝고 명랑해 보이는 ‘하이 키’(high-key) 조명을 주로 사용한다”고 말합니다.
도상은 주로 시각적 요소를 말하지만 청각적 요소를 아우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호러 영화에서 삐걱거리는 문소리나 을씨년스러운 바람소리, 충격적인 장면에서 극단적인 하이 톤의 음향 효과가 이런 경우”라며 “멜로드라마의 달달한 로맨스 장면에 등장하는 감상적인 음악도 이에 해당한다”고 설명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도상은 장르뿐만 아니라 영화의 미장센, 특히 소품과도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습니다. 199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이종필 감독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에는 ‘어항 속의 금붕어’라는 소품이 등장합니다. 특히 이 금붕어는 영화 속 주인공인 ‘자영’(고아성)이 냇가에 갔다가 회사 공장의 페놀 유출로 인해 죽은 물고기 떼를 바라보는 장면과 연결되는데요. 그러니까 아직 살아있는 ‘어항 속의 금붕어’가 자영을 상징한다면 ‘죽은 물고기 떼’는 당시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하다가 임신, 육아 등 갖가지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여성노동자 일반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기능합니다.
수잔 헤이워드는 “도상학은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서는 함축적 힘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즉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갖가지 소품은 도상학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 소품의 외면적 의미와 기능을 뛰어넘는 상징적 기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