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영화에는 두 가지 사조가 있는데요. 바로 ‘사실주의’(realism)와 ‘형식주의’(formalism)입니다. 사실주의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데 집중한다면, 형식주의는 현실을 고도로 조작하고, 양식화하는 데 집중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사실주의와 형식주의를 동시에 품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감독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자 해도 현실이 카메라에 포착되는 순간, 그 장면에 깃든 모든 것은 관객에게 일종의 ‘기호’와 ‘상징’ 그리고 ‘형식’으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책 『영화의 이해』의 저자 루이스 자네티는 “대체로 사실주의적인 영화는 왜곡을 최소화해 현실세계가 드러나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자한다. 대상과 사건을 촬영할 때, 영화감독은 삶 자체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려고 애를 쓴다”며 “사실주의 감독은 그들의 영화세계가 조작되지 않은 실제세계의 객관적인 거울이라는 환상을 고수하려고 한다”고 설명합니다. 저자의 논의처럼 사실주의 전통을 고수하는 감독은 현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이에 반해 형식주의는 현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보다 집중합니다. 저자는 “형식주의적인 영화는 스타일 면에서 화려하다. 형식주의적인 감독들은 현실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표현하는 데 관심을 기울일 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며 “카메라는 소재를 설명하는 도구로서, 또 객관적인 특성보다는 본질적인 특성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형식주의적인 영화는 스타일 면에서 객관적인 사실보다 사물이나 사건에 의해 야기되는 주관적인 감정과 반응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특히 사실주의는 앙드레 바쟁의 ‘리얼리즘 미학’과 2차 세계대전 전후 형성된 이탈리아 영화운동인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으로 연결됩니다. 바쟁의 리얼리즘 미학은 카메라 기법으로 치자면 ‘롱 테이크’(long take : 하나의 숏을 길게 촬영하는 기법)와 ‘디프 포커스’(deep focus : 원경과 근경 모두가 화면 전체에 선명하게 나오도록 초점을 맞춰 촬영하는 기법)로 수렴하는데, 책 『영화 이론 입문』의 저자 정영권은 “시공간적 리얼리티를 보존하려 하는 바쟁의 미학은 롱 테이크와 디프 포커스가 결합할 때 최고의 조합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합니다.
즉 리얼리즘 미학이 담긴 장면이란, 피사체를 오랫동안 포착하면서 전경과 중경, 후경에 모두 포커스를 맞춰 화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를 관객이 능동적으로 관람하도록 유도하는 장면을 말합니다. 바쟁은 롱 테이크와 디프 포커스를 활용해서 촬영할 때, 비로소 감독의 통제를 벗어난 우연과 진실의 순간이 장면으로 포섭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네오리얼리즘은 바로 이 부분을 겨냥하고 있는데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탈리아의 비참한 현실을 진실한 시각으로 포착하고자 했던 일련의 사실주의적 영화운동이 바로 네오리얼리즘입니다.
최근 개봉해 인기를 끌고 있는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의 <마틴 에덴>(2019)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잔영이 짙게 일렁이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20세기 중반 이탈리아 나폴리를 배경으로, 가난한 선박 노동자인 마틴 에덴이 상류층 여자 엘레나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배움에 골몰하다가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마틴 에덴을 연기한 루카 마리넬리의 연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인데요. 마리넬리는 이 영화로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극영화의 형식으로 전개되면서도 곳곳에 다큐멘터리적인 터치를 가미함으로써 색다른 리얼리즘 영화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에서 다큐멘터리 이미지(사실주의)와 극영화 이미지(형식주의)가 병치된 시퀀스는 현실(실제적 체험)과 환상(주관적 감정)의 혼합을 보여주는데, 실로 경이롭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장면보다 이러한 이질적인 장면들의 충돌과 연쇄가 오히려 우리의 삶을 더 진실하게 사유하는 장을 마련해주고 있다고 느껴지니까요.
여담으로, <마틴 에덴>은 봉준호 감독이 극찬한 영화로도 유명합니다. 언제나 계급의 문제에 천착했던 봉준호 감독이 좋아할 법한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마틴 에덴>은 <기생충>과 닮은 점이 무척 많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거리의 빈자가 풍요롭고 우아한 부자의 세계에 매료되고, 그 세계를 쟁취하고자 할 때 벌어지는 비극을 다룬다는 점에서요. 이것을 <기생충>이 가족영화의 틀을 통해 케이퍼 무비(강탈 행위를 보여주는 영화)와 호러 장르로 뒤섞었다면, <마틴 에덴>은 특유의 다큐멘터리적인 터치를 가미한 비극적인 멜로드라마로 녹여내고 있죠. 두 작품 모두 계급의 문제를 뛰어난 영화적 화법으로 묘사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