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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 영화 <박하사탕>(2000)

‘어떤 영화, 진짜 이야기’ 34


내일 소개할 영화는

이창동 감독 <박하사탕>입니다.


2000년 1월 1일에 개봉한 영화고요. 설경구, 문소리씨 등이 주연으로 활약한 영화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밀양>이라는 영화를 소개해드렸는데,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전반적으로 감독의 개성이 뚜렷하게 투영된, 리얼리즘적인 요소가 있어요. 그래서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불립니다.


<박하사탕>은 1980년에 발생했던 ‘5.18 민주화 운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에피소드는 모두 이창동 감독의 상상에 의한 이야기고요. 5.18이라는 역사의 비극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죠.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영호’(설경구)는 5.18 때 군인이었어요. 당시에 진압군으로 차출됐다가 실수로 여고생을 쏴 죽이게 됩니다. 이때의 트라우마가 영호를 한 평생 괴롭히게 되는 거예요. 결국 영호는 젊은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서 자살하게 됩니다. 이창동 감독은 이 모든 일을 역순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영호가 자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순간부터 플래시백을 통해서 영호가 순수했던 시절로 회귀하는 방식으로 한 인간의 역사를 탐문하고 있는 거죠. 말하자면 ‘박하사탕’이라는 제목은 영호의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하사탕>처럼 5.18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소개한 영화죠. 선동렬 선수의 스카우트를 둘러싼 얘기를 그린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도 5.18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요. 여러분들이 잘 아실만한 영화로는 2017년에 개봉한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80년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기자와 그를 광주까지 데리고 갔던 한 택시운전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예요. 당시에 1,200만명이 관람한 흥행작입니다. 그 외에도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나 장선우 감독의 <꽃잎> 그리고 조근현 감독의 <26>년 등이 5.18을 모티브로 한 대표적인 영화들입니다.


<박하사탕>은 ‘시간을 거꾸로 뒤집는다’는 설정이 중요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영호는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서 자살을 하게 되는데요. 직후에 영화는 기차가 거꾸로 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호의 일생을 역추적합니다. 그런 식으로 영화는 영호가 자신의 첫사랑인 ‘순임’(문소리)이라는 여자를 좋아하게 된 1979년부터,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1999년까지 총 20년간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어요. <박하사탕>이라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5.18과 같은 역사의 비극이 한 개인의 인생을 얼마나 잔혹하게 말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결국은 자기를 경멸하고 파괴할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에 대한 처절한 영화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하사탕>에는 유명한 대사가 있습니다. 아마 영화를 안 보신 분들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바로 영호가 자살하기 직전에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듯이 외치는 장면입니다. 결국에 이 대사는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이자, 이창동 감독의 내면적 목소리라고 할 수 있어요. 어느 강연에서 이창동 감독이 한 말인데요. 문득 세수를 하다가 자기 얼굴을 봤는데, 너무 망가져 있어서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근데 문제는 이런 외면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망가지고 훼손된 게 아닐까 고민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현실에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영화라는 예술을 통해서, 또 5.18이라는 역사를 경유해서 그러한 자신의 내면적인 욕망을 실현시켰다고 할 수 있죠.


사실 <박하사탕>은 영화의 내용도 그렇고, 개봉 시기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합니다. 일단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는 얘기인데, 이 영화가 개봉한 시점은 2000년 1월 1일이에요. 당시 2000년은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굉장히 미래지향적인 시간이었잖아요. 근데 굳이 그 시기에 20년 전 역사의 비극을 되돌아보는 영화가 개봉한 것이 굉장히 아이러니한 겁니다. 굳이 그 의도를 짚어보자면, 미래라는 시간은 과거가 없으면 성립될 수 없는 거고, 결국 미래를 잘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뜨겁게 성찰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새해에는 내가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을 면밀하게 준비하는 시기이지만, 동시에 내가 과거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되돌아보는 시기이기도 한 거죠. 그래서 새해를 맞아서 첫 영화로 <박하사탕>을 구독자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박하사탕>에 관한 제 해설이 조금 더 궁금하시면,


1월 3일(일) 오후 6시 18분, TBN(강원) <달리는 라디오> - ‘어떤 영화, 진짜 이야기’(FM105.9)를 들어주세요.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TBN 교통방송’ 앱을 다운로드하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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