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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Feb 08. 2022

이상하지만 좋았던 '그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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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드라마를 우연히 보게 됐고, 끝까지 봤다. 아마 영화 <마녀>의 탓이 클 것이다. 내 무의식에 김다미와 최우식의 호흡이 인상에 남았던 모양이다. 이왕에 다 봤으니 몇 마디 적어볼까 한다. 캐릭터들에 관한 단상 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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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식은 '최웅'이라는 캐릭터를 맡았는데, 캐릭터가 배우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캐릭터 자체가 워낙 비현실적이라 받아들이기가 쉽진 않았다. 최웅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버려져 남모를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돈 많고 착실한 양부모가 거두어 주어서 아주 잘 자란다. 공부는 못하는데, 어려운 책들을 거침없이 독파한다. 그림을 잘 그려서 이른 나이에 성공하고 돈도 많이 번다. 그런 그를 탑스타가 좋아한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캐릭터다. 그래서 그의 고통이나 트라우마에 감정 이입이 잘 되지 않았다. 쉽게 말해 불쌍한데 불쌍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김다미가 연기한 '국연수'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인 캐릭터와 현실적인 캐릭터의 만남. 그러니까 최우식은 왕자를 살짝 변주한 캐릭터고, 김다미는 그냥 가난한데 똑똑한 콩쥐다. 익숙한 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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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식의 양부모에 대해 좀 말하고 싶다. 박원상과 서정연이 연기한 '최호'와 '이연옥'이라는 캐릭터인데, 동네에서 여러 식당을 운영하는 부자다. 어린 자식을 잃고 살아가다가 고아인 최우식을 양자로 받아들인다. 부부는 최우식은 물론 그의 친구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다(마지막에는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까지 짓는다). 자식을 잃어 모든 아이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과하다. 그러니까 자식(혹은 유사 자식)이 없으면 마치 자신들의 인생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 드라마에서 박원상과 서정연의 집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건 문제적이다(물론 플래시백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죽은 아들의 영정 사진을 안고 우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들은 항상 식당에 있다. 최우식과 그의 친구들이 식당을 방문할 때만 등장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그들만의, 그러니까 부부만의 삶을 묘사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부부가 죽은 자식에게 해마다 찾아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과정을 단 한 컷의 이미지로도 설명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들은 최우식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캐릭터로 형상화된다. 드라마에서 잠깐 서정연이 최우식의 작업실에 혼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그 장면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삶의 단독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장소가 아들의 집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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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캐릭터들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김성철이 연기한 '김지웅'은 좀 많이 불쌍하다. 캐릭터를 지나치게 학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정의가 연기한 '엔제이'와 전혜원이 연기한 '정채란'은 분량이나 활용 면에서 아쉽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빛나는 캐릭터는 박진주다. 그녀는 여자주인공의 친구 역할이라 기능적으로 소비될 법도 한데, 자신만의 인장을 갖고 있다. 최우식이 없으면 별 의미가 없는 박원상과 서정연과 달리 박진주는 김다미가 없어도 스스로 존립 가능한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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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대사가 참 좋다. 이나은이라는 작가가 썼다. 기억에 남는 대사가 너무 많은데, 딱 하나만 꼽으라면 김성철이 최우식에게 엄마의 시한부 소식을 알리는 장면이다. 아마 아마추어의 시나리오 작가가 대본을 썼다면, 최우식은 위로한답시고 김성철에게 온갖 낯간지러운 말들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둘은 부둥켜안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울겠지. 하지만 이나은은 몇 마디 말로 그 상황을 정리하고 봉합한다(드라마를 보시라). 난 그 대사와 상황이 건조하고 담백해서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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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여름을 좋아한다. 이 드라마가 채색한 여름의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동네의 풍경도 좋았고. 주위에 물어보니 전부 "최우식이 귀여워서 봤다"고 말했다. 사실 나도 조금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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