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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석주 영화평론가 Sep 05. 2022

'라디오 스타'와 '쇳밥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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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라디오에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 스타'를 소개했다. 이 영화는 주변부로 밀려난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왕년에 가수왕을 차지할 정도로 잘 나갔지만, 지금은 괴팍한 비인기 가수로 전락한 최곤(박중훈 분)이 주인공이다. 영화는 어쩌다가 유치장 신세를 진 최곤이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의 라디오 방송국 디제이를 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서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지방은 변방이고, 라디오 역시 TV를 비롯한 시각 매체의 인기에 밀려 과거의 영광을 잃었다. 앞선 언급처럼 최곤은 한물 간 연예인이다. 이렇게 중심으로부터 벗어난 존재들의 조합은 드라마의 씨앗을 품고 있다. 그런 점에서 '라디오 스타'는 주변부에 머무르는 것들이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불빛들을 관객의 손에 쥐여 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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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의 OST는 '비와 당신'이다. 이 곡은 이별에 관한 노래다. 영화의 OST에 관한 설명으로 끝을 맺고 싶었다. 아래는 방송 마지막 멘트.


"영화를 보신 분들을 아마 아실 텐데요. 바로 이 영화의 OST가 '비와 당신'이라는 곡입니다. 노브레인이라는 밴드의 곡이고요. 실제로 이 밴드가 영화에 나오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박중훈 씨가 이 노래의 주인공이에요. '비와 당신'이 이별에 관한 곡이거든요.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에 빗대서 말씀드리면, 우리는 모두 왕년의 스타였잖아요. 저마다 찬란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언젠가는 그 시절로부터 이별해야 하는데 그것을 너무 서운하거나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과거에 비해 보잘것없어 보이는 지금이지만, 그것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 순간이 또 찬란한 시절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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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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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우 작가의 '쇳밥일지'를 이제 막 완독했다. 발췌독 후에 내용이 흥미로워서 출판사에 연락해 작가와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근데 다음 날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책을 추천 도서로 소개했다. 참으로 묘한 타이밍이다. 문 전 대통령은 “서둘러 소개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이 책은 한숨과 희망이 교차하는 청년 용접공의 힘겨운 삶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진짜 들어야 할 이 시대 청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장언어를 적절히 구사하는 글솜씨가 놀랍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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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밥일지'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창작자의 당사자성에 관해 생각했다.  책은 에세이지만, 소설처럼 느껴진다. 거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다. 우선 창작자가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없는 현장의 언어와 풍경들이 너무 사실적으로 나열되어 다. 너무 현실적이면 그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종국에는 소설처럼 읽힌다. 원래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천현우 작가의 욕망도 약간은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재기 발랄한 비유법이 많다. 목차의 구성과 분량, 호흡 자체가 에세이보다는 소설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실력 좋은 소설가가 청년 용접공을 밀착 취재해서 써도 이렇게 쓰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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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작가의 꿈이 없었고, 작문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타고난 재능으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의 책에는 작가 특유의 자의식이 없다. 현실과 유리된 설교나 훈계 따위가 없다. 그래서 굉장히 신선하다. 이 말을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가 해줬는데, 100%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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